학기 18-15, 잘 배우는 사람은 스승이 느슨해도 학업을 2배로 이루고
學記(학기) 第十八(제십팔)
18- 15 善學者師逸而功倍 又從而庸之 不善學者師勤而功半 又從而怨之 善問者如攻堅木 先其易者 後其節目 及其久也 相說以解 不善問者反此 善待問者如撞鐘 叩之以小者則小鳴 叩之以大者則大鳴 待其從容然後盡其聲 不善答問者反此 此皆進學之道也(선학자사일이공배 우종이용지 불선학자사근이공반 우종이원지 선문자여공견목 선기이자 후기절목 급기구야 상설이해 불선문자반차 선대문자여당종 고지이소자즉소명 고지이대자즉대명 대기종용연후진기성 불선답문자반차 차개진학지도야).
잘 배우는 사람은 스승이 느슨해도 학업을 2배로 이루고 스승을 따르며 모두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 잘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스승이 열심히 가르쳐도 학업 이룸은 절반에 그친다. 또 스승을 따르기는 하나 원망하기도 한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단단한 나무를 가공하는 것처럼 먼저 쉬운 부분부터 다듬고 나중에 옹이처럼 어려운 부분을 처리한다. 그것이 오래 걸려도 서로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 질문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반대로 한다. 질문에 대답을 잘하는 사람은 종 치는 것처럼 한다. 작은 것으로 두드리면 작게 울리고 큰 것으로 두들기면 크게 울린다. 좋은 울림이 끝나기를 종용히 기다려야 그 울림을 다한다. 그렇게 기다렸다가 최선의 응답을 한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와 반대이다. 이 모든 것이 학문의 나아갈 길이다. 즉, 잘 배우는 자는 발분 면려하므로 그 스승으로서는 가르치기가 쉽지만 그 성적은 남보다 갑절이나 우수할(사일이공배: ‘일’은 ‘편안한’ 것으로서 ‘쉽다.’라는 의미. 스승이 가르치기 쉬워 그 공이 갑절이 된다는 뜻) 뿐 아니라 또한 그 공을 스승에 돌리고(종이이용지: ‘용’은 ‘功’을 말함. ‘옹지’란 스승의 공으로 돌린다는 뜻) 존경 및 사모를 한다. 그러나 잘 배우지 않는 자는 스승이 가르치는 데 있어 매우 수고한다고 해도 그 성적이 남의 반에 지나지 않을(시근이공반: ‘근’은 ‘수고한다.’라는 의미. 스승이 가르치는 데에 수고를 한다고 해도 그 공이 반에 불과하다는 뜻) 뿐 아니라 또한 스승의 가르침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하여 도리어 이를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종이원지: 따라서 원망하게 된다는 뜻) 또 잘 묻는 자는 단단한 나무를 다스리는 자가 그 부드럽고 다루기(攻) 쉬운 곳을 먼저 손대고 그 마디마디의 다루기 어려운 곳(절목: 마디마디의 단단한 곳을 말함)을 뒤로 돌릴 때 시간이 흐르면 어려운 것도 저절로 이탈하여 풀리는 것(상세이해: ‘說’는 ‘脫’과 통함. 서로 풀어서 해답을 얻는다는 뜻.)처럼, 쉬운 것부터 물어 점진하므로 어려운 곳을 묻지 않고도 자연히 알게 되어 지덕이 크게 진보하는 것이다. 잘 묻지 않는 자는 이와 반대로 아무런 얻는 바가 없는 것이다. 또 물음을 잘 기다리는 자는, 예컨대 종을 치는 데 있어 이를 작은 걸로 칠 때에는 작게 울리고 이를 큰 걸로 칠 때에는 크게 울린다. 그러므로 ‘종용’(자연스럽고 태연한 모양)하여 허둥대지 않고 천천히 이를 친 연후에야 그 소리를 다 알 수 있는 것(신기성: 그 소리가 다한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속속들이 다 알 수 있다는 뜻)처럼 유유히 여유를 갖고서 서서히 스승에게 물을 때 충분히 그 도리의 이치를 다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잘 문답하지 못하는 자는 이것의 반대가 된다. 따라서 묻는 자는 마땅히 이에 유의해야 하는데 이것이 모두 학문에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시조 한 수]
잘 배우는 사람
김 재 황
스승이 느슨해도 그 학업을 잘 이루고
스승을 늘 따르며 배움 기회 삼는다네,
그 공을 스승께 돌려 존경심을 표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