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에서/ 김 재 황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동학사에서
김 재 황
정토로 향한 숲에 머문 새는 잠이 들고
꿈결에 뒤척이면 솔 내음이 이는 바람
천수경 외는 소리가 홀로 밤을 새깁니다.
어둠을 밝혀 가는 믿음이 곧 하늘이라
구름은 문을 열어 저승까지 환한 달빛
관세음 고운 눈길이 미소 한 점 남깁니다.
산바람 돌던 탑이 정적 속에 묻혀들면
버려서 얻은 뜻은 산 마음을 닮아 가고
숙모전 적막한 뜰도 자비 안에 안깁니다.
(시작 노트)
계룡산에는 동서남북의 4대 사찰이 있다. 즉, 동쪽에는 ‘동학사’요, 서쪽에는 ‘갑사’요, 남쪽에는 ‘신원사’요, 그리고 북쪽에는 ‘구룡사’다. 물론, 구룡사는 지금 그 모습이 사라져 버렸고, 그 터만 남아 있다.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23년에 회의화상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그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고 하여 ‘청량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에 ‘원당’이라고 하다가 순조 14년에 금봉화상이 개칭하여 ‘동학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큰 특징을 지닌다. 바로 유(儒)와 불(佛)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절로 들어갈 때, ‘사천왕문’이나 ‘인왕문’ 대신에 ‘홍살문’을 만나게 된다. 이 절 안에는 유신(儒臣)의 사당인 ‘삼은각’(三隱閣)과 ‘숙모전’(肅慕殿)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박제상의 충절을 기리는 ‘동계사’(東鷄祠)도 있다. 누구나 숙모전 앞에 오면 슬픔에 젖게 된다. 세조에게 단종이 왕위를 찬탈당하고 여러 충신들은 목숨을 잃었을 때, 그 소식을 들은 매월당 김시습이 동학사에 ‘초혼각’(招魂閣)을 짓고 통곡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동학사는 또 하나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절은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자 옛부터 비구니들의 전문강원이었다. 고려조에 와서 도선국사가 증수했고, 그 뒤에 순조 때와 고종 원년에 크게 중건 개수되었다. 이 절은 주로 비구니들에 의해 지켜져 왔고, 경내에 비구니 승가대학이 세워져 있으므로 요사와 강원의 비중이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