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어릴 적에 놀던 생각이 난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도 변변치 못하여서 제기차기나 자치기나 구슬치기 등을 하고 놀았다. 그러나 놀이라면 무엇보다도 팽이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삼촌이 낫으로 깎아서 만들어준 팽이를 얼음판에서 돌리며 놀던 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팽이를 돌릴 때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비틀거리는 팽이를 채로 열심히 때려서 일단 일으켜 세우면 그 다음부터는 별로 힘이 안 든다. 채로 착착 때리면 때릴수록 팽이는 더욱 신나게 돌아가는데, 어느 순간에 움직이지 않는 듯이 선다. 이 때에는 이 세상마저 모두 멎고 고요함이 감돈다. 이를 가리켜서 우리는 ‘팽이가 섰다’라고 일컬었다. 팽이가 ‘서는 순간’의 그 아름다움을 어찌 잊겠는가.
나는 오랜 동안 시조를 창작해 오면서 팽이처럼 시조도 설 수 있겠다고 생각해 왔다. 시조도 채로 치듯 갈고 닦으면 어느 순간에 팽이처럼 설 수 있지 않을까를 갈망해 왔다. 아직은 내 역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노력 또한 부족하기에 ‘서는 시조’를 얻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될 앞날을 바라보며 걸어간다는 뜻에서 이 시조의 제목을 ‘서다’라고 정했다. 어차피 시조는 정형시이기에 바른 정형을 내보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내 생각일 뿐이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시’라는 것은, 반드시 이렇게 써야 한다는 법도 없고, 반드시 이렇게 쓰지 말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시조는 3장 6구 12음보(소절)로 되어 있다. 그 짜임이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와룡선생(臥龍先生)의 ‘팔진도(八陣圖)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아무것도 없이 다만 강변에 팔구십 돌무더기가 있을 뿐인데, 적장 육손이 들어섰다가 나오려고 할 때 돌연 일진광풍이 일어나면서 삽시간에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면서 하늘땅이 캄캄해졌다. 그는, 공명의 장인 ’황승언‘의 도움을 받아서 목숨을 간신히 보전하였다. 그 지방 사람의 말을 빌리면 그 내막이 다음과 같다.
“이곳은 어복포(魚腹浦)라는 곳인데 재갈공명이 서천(西川)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돌을 쌓음으로써 진(陣)을 친 곳이올시다. 그 후부터 항상 이상한 기운이 구름 피어오르듯 돌무더기 속에서 일어납니다.”
이렇듯 하찮은 돌무더기 몇 개도 이렇듯 조화를 부리는데, 하물며 시조의 3장 6구 12음보야 말로 얼마나 오묘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물론, 시조의 초장에는 ‘흐름’(流)이 있고 중장에는 굽이(曲)가 있으며 종장의 처음 음보에는 ‘마디’(節)가 있고, 종장의 끝 음보에는 ‘풀림’(解)이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그 외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여기 실린 작품들의 각 음보에 대한 음양관계(陰陽關係)를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초장의 각 음보는 ‘음, 양, 양, 양’으로 되어 있다. 즉, 양 쪽으로 기우러져 있다. 그리고 중장 또한 각 음보가 ‘음, 양, 양, 양’이다. 초장과 같다. 알다시피 시조는 종장의 무게가 초장과 중장을 합친 것과 같다. 그런데 종장의 음보는 ‘음, 음, 양, 음’으로 되어 있다. 일대 반전이고 변화이다. 일진광풍이 일고 모래가 날리는 듯싶다. 이로써 시조는 평형을 유지하며 반듯하게 서게 된다. 우리는 이를 무시하지 않는다. 태극기를 보면 분명해진다.
무엇이든지 구태의연해서는 안 된다. 그 시대에 맞게 변모하여야 한다. 단언컨대 앞으로는 풀어 헤치는 시대가 아니라 더욱 조이는 시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낙성대 산방에서
녹시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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