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한 시조

연재를 시작하며

시조시인 2018. 12. 2. 10:23

연재를 시작하며

 

 

 

 

어릴 적에 놀던 생각이 난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도 변변치 못하여서 제기차기나 자치기나 구슬치기 등을 하고 놀았다. 그러나 놀이라면 무엇보다도 팽이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삼촌이 낫으로 깎아서 만들어준 팽이를 얼음판에서 돌리며 놀던 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팽이를 돌릴 때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비틀거리는 팽이를 채로 열심히 때려서 일단 일으켜 세우면 그 다음부터는 별로 힘이 안 든다. 채로 착착 때리면 때릴수록 팽이는 더욱 신나게 돌아가는데, 어느 순간에 움직이지 않는 듯이 선다. 이 때에는 이 세상마저 모두 멎고 고요함이 감돈다. 이를 가리켜서 우리는 팽이가 섰다라고 일컬었다. 팽이가 서는 순간의 그 아름다움을 어찌 잊겠는가.

나는 오랜 동안 시조를 창작해 오면서 팽이처럼 시조도 설 수 있겠다고 생각해 왔다. 시조도 채로 치듯 갈고 닦으면 어느 순간에 팽이처럼 설 수 있지 않을까를 갈망해 왔다. 아직은 내 역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노력 또한 부족하기에 서는 시조를 얻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될 앞날을 바라보며 걸어간다는 뜻에서 이 시조의 제목을 서다라고 정했다. 어차피 시조는 정형시이기에 바른 정형을 내보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내 생각일 뿐이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라는 것은, 반드시 이렇게 써야 한다는 법도 없고, 반드시 이렇게 쓰지 말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시조는 3612음보(소절)로 되어 있다. 그 짜임이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와룡선생(臥龍先生)팔진도(八陣圖)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아무것도 없이 다만 강변에 팔구십 돌무더기가 있을 뿐인데, 적장 육손이 들어섰다가 나오려고 할 때 돌연 일진광풍이 일어나면서 삽시간에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면서 하늘땅이 캄캄해졌다. 그는, 공명의 장인 황승언의 도움을 받아서 목숨을 간신히 보전하였다. 그 지방 사람의 말을 빌리면 그 내막이 다음과 같다.

이곳은 어복포(魚腹浦)라는 곳인데 재갈공명이 서천(西川)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돌을 쌓음으로써 진()을 친 곳이올시다. 그 후부터 항상 이상한 기운이 구름 피어오르듯 돌무더기 속에서 일어납니다.”

이렇듯 하찮은 돌무더기 몇 개도 이렇듯 조화를 부리는데, 하물며 시조의 3612음보야 말로 얼마나 오묘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물론, 시조의 초장에는 흐름’()이 있고 중장에는 굽이()가 있으며 종장의 처음 음보에는 마디’()가 있고, 종장의 끝 음보에는 풀림’()이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그 외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여기 실린 작품들의 각 음보에 대한 음양관계(陰陽關係)를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초장의 각 음보는 , , , 으로 되어 있다. , 양 쪽으로 기우러져 있다. 그리고 중장 또한 각 음보가 , , , 이다. 초장과 같다. 알다시피 시조는 종장의 무게가 초장과 중장을 합친 것과 같다. 그런데 종장의 음보는 , , , 으로 되어 있다. 일대 반전이고 변화이다. 일진광풍이 일고 모래가 날리는 듯싶다. 이로써 시조는 평형을 유지하며 반듯하게 서게 된다. 우리는 이를 무시하지 않는다. 태극기를 보면 분명해진다.

무엇이든지 구태의연해서는 안 된다. 그 시대에 맞게 변모하여야 한다. 단언컨대 앞으로는 풀어 헤치는 시대가 아니라 더욱 조이는 시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낙성대 산방에서

녹시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