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짓궂게도 “왜 시조가 민족시(民族詩)인가?”라고 묻는 이가 있다. 시조가 이 땅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고 오랜 뿌리가 있다는 점 등을 제쳐 두고라도, 그 이유는 많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윤재근 교수의 글을 빌린다. “현대시는 예유기(銳唯己), 즉 나만(唯己)을 날카롭게 하여(銳) 남달리 의식(意識)하라고 하지만, 본래 시조는 너와 나를 하나로 묶는 흥(興)을 누리게 하여 ‘너와 나’를 ‘우리’가 되게 한다.” 그렇다. 우리 민족은 흥이 많다. 이미 월드컵의 그 흥을 보지 않았는가. 시조 분야에도 전업 시인과 부업 시인이 있다. 전업 시인이라면 어찌 하루인들 시를 짓지 않고 견디겠는가? 그래서 다작(多作)이다. 부업 시인은 절대로 많은 시를 쓸 수 없다. 그래서 과작(寡作)이다. ‘개 꼬리 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