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대하여/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손에 대하여 김 재 황 내뻗은 다섯 가락 그 길이는 다 달라도오순도순 뜻 모으면 모든 것이 죄 잡히고굳세게 주먹을 쥐니 뜨거운 힘 솟구친다. 만나서 서로 잡고 수줍어서 낯 감싸며이리저리 흔드는 건 속마음을 펴 뵈는 뜻베풂의 푸른 깃발을 높이 들고 살아간다. 세상에 고된 일은 그게 모두 자기 차지어두운 곳 숨긴 것들 더듬더듬 잘 찾는데날마다 깨끗이 씻고 새 아침을 맞이한다. (2014년) 오늘의 시조 05:21:26
거미를 보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거미를 보며 김 재 황 그물은 바다에만 치는 것이 아니기에으슥한 길목이면 이마 위를 더듬는데숨어서 숨을 죽여도 스치는 건 바람뿐. 갈수록 길어지는 걸음걸이 엮어 보면매듭이 낡았는지 은빛 꿈은 도망치고날마다 날을 세워도 그림자만 걸릴 뿐.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2.01
미선나무 개화/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미선나무 개화 김 재 황 봄날이 자리 잡고 ‘이제 됐다.’ 하기 전에무엇이든 알고 싶나, 무엇이든 하고 싶나,와르르 잔 말마디들 가득 숲에 쏟았다. 봄날이 둥근 가슴 ‘열어 놨다.’ 하기 전에서러운 게 무엇인지, 차가운 게 무엇인지사르르 흰 마음조차 풀고 모두 보였다. 뭐 그리 서둔 건지, 뭐 그리 바쁜 건지그 봄날 귀 세우고 달려 보자 하기 전에까르르 헤픈 웃음만 남겨 두고 떠났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30
수우재를 그리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수우재를 그리며 김 재 황 실바람 안고 있는 사랑채가 지닌 공간별이 총총 깊은 밤에 대숲 소리 불을 켜고날 밝자 땅을 울리며 모과 하나 떨어진다. 아직도 서려 있는 창호지의 푸른 기운난초 훌훌 향기 따라 탱자 열매 또 익는데우리글 쓰인 하늘이 빈 마당에 내려선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29
가을 잎의 이야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가을 잎의 이야기 김 재 황 할 일 모두 끝냈으니 갈길 이제 걸어야지여린 가지 질긴 사이 아예 모두 끊어 내고두텁게 실뿌리 덮는 그 흙으로 가야지. 묵은 먼지 탁탁 털고 마음 연 채 떠나야지욕심 없이 푸른 하늘 다만 가슴 마주 닿게춤추듯 날개를 펴고 나비처럼 떠나야지. 이리 이왕 된 바에야 멋진 무게 잡아야지마냥 가는 구름인 양, 쉬지 않는 바람인 양누구도 깨울 수 없는 그 꿈 괴고 자야지.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28
단풍 이미지/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단풍 이미지 김 재 황 뭣 때문에 그러하게 서두르며 살았는지왜 그리도 사는 일이 바쁘기만 하였는지물으면 어느 잎들은 붉은 물이 듭니다. 푸른 하늘 바라보기 부끄럽지 않았는지주먹 쥐고 걷는 길에 베풀기는 잘했는지제풀에 어떤 잎들은 붉게 젖고 맙니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26
덕수궁 분수대/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덕수궁 분수대 김 재 황 긴 세월이 흘렀건만 결코 잊지 못하는 일매우 더운 날이었고 바람조차 안 불었지우리의 첫 데이트는 이 자리에 딱 멈췄어. 그 당시도 지금처럼 물을 뿜고 있었나 봐눈길 서로 마주칠까 짐짓 거길 보았는데우리의 풋 만남처럼 먼 색동이 팍 피었데.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25
춘천 야경/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춘천 야경 김 재 황 눈을 뜬 불빛들은 어둠 밖을 노니는데잘 닦인 물거울에 간지럼이 돋는 밤중오히려 곱게 뜬 달이 얼굴 반쯤 가린다. 선율이 흐르는지 마음 떨림 전해 오고무작정 꼬리 무는 초여름 꿈 이야기들어딘지 길게 튼 길도 은빛 비늘 돋겠다. (2012년 6월 1일) 오늘의 시조 2024.11.24
통도사 장경각/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통도사 장경각 김 재 황 가볍게 실바람이 마음 풀고 오가는 곳꼭꼭 적어 불에 구운 말씀들이 여기 있네,맘 비운 이들에게야 껴안을 게 이것뿐! 이따금 구름장이 가슴 펴고 감싸는 곳오랜 세월 갈고 닦은 말씀들이 빛을 내네,몸 가둔 이들에게야 그 외에 더 무엇을?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23
통도사 극락암/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통도사 극락암 김 재 황 바람이 따로 없이 산길 따라 올라가니잘생긴 소나무들 보란 듯이 둘러서고어쩐지 추운 느낌에 가슴 도로 여민다. 천수를 누린 듯이 벚나무가 멈춰 있고쉬었다 다시 가라 이르며 선 반월 다리여천문 바로 그 앞에 그림자를 누인다. 안으로 들어서면 말은 없고 글만 가득높직이 합장하고 고개 깊이 숙이고서영취산 넓은 품속에 내 기쁨을 맡긴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