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품은 바다/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내가 품은 바다 김 재 황 마음을 비워내고 파도 소리 껴안으면갈매기 날갯짓에 펼쳐지는 푸른 물빛외로운 무인도 끝에 정든 쉼표 찍는다. 하늘과 맞닿아서 팽팽하게 뜬 수평선퉁기지 않았어도 저녁놀은 붉게 떨고밤이면 작은 별들이 음표 위에 앉는다. 용왕님 이야기야 먼 전설로 남았지만점잖은 고래들은 무리 지어 노니는데물음표 시리게 끌며 빙산 소식 닿는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20
북극 백곰에 관한 생각/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북극 백곰에 관한 생각 김 재 황 얼음뿐인 벌판에서 아름답게 살아가고그 커다란 몸뚱이와 강한 발톱 지녔으니모두가 부러워하는 존재였다, 전에는. 배고프면 먹이 잡고 나른하면 잠을 자고무엇 하나 안 아쉬운 은둔자라 여겼건만모든 게 크나큰 착각, 그 삶 또한 독했다. 물범을 닷새마다 꼭 잡아야 산다는데흔하지도 않거니와 빠르기는 좀 빠른가,번번이 허탕을 치니 허기진다, 꼬르륵. 힘 빠지면 허덕허덕 달리기도 쉽지 않고못 먹으니 그야말로 마주 붙는 뼈와 가죽 다시는 깰 수 없는 잠 깊이 든다, 마침내.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19
어버이날에/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어버이날에 김 재 황 아들딸과 며느리가 밥 한 끼를 사겠다고강남 멋진 뷔페 집에 아내와 날 데려갔네,불현듯 부모님 생각 비워 두는 옆자리 둘. 빈 접시에 이것저것 입맛대로 골라다가우리 식구 마주 보며 젓가락을 들었지만부모님 잘 드신 초밥, 삼키는 게 힘드네. 내 핏줄 땅기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나,함께 있든 같이 없든 눈에 자꾸 밟히는데하늘에 계신 부모님 늦지 않게 예 오실까.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18
전동차 어느 경로석 풍경/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전동차 어느 경로석 풍경 김 재 황 땅거미 깔렸을까, 아무래도 늦은 저녁칠순쯤은 바로 넘긴 할머니들 열댓 명이우르르 긴 소매 끌며 차 안으로 들어섰네. 경로석에 앉아 있던 젊은 사람 비켜나고정말 빨리 몇 명이야 앉을 자리 찾았지만선 채로 깨 볶는 얘기 그칠 줄을 몰랐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척 보아서 아는 풍경여학교 동창인 줄, 모르는 이 없을 텐데까르르 제 배꼽 쥐고 소녀인 양 꽃피우네. 그래요, 후배 분들! 늙은 티를 버리세요.나이 또한 크게 보면 다만 숫자 아니겠소!아셨죠? 맘먹기 따라 떠난 젊음 오는 것을! .. 오늘의 시조 2024.11.17
산 하나를 지닌 당신/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산 하나를 지닌 당신 김 재 황 뜻한 대로 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이제 당신 앙가슴에 산 하나를 쌓고 있다,한여름 더위에서도 녹지 않는 그 설산. 추운 마음 달래면서 홀로 착함 나른 당신저 하늘 끝 치받듯이 산봉우리 솟은 위로채찍에 구부러진 길 기다랗게 나 있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오르고 또 오르지만온통 폭설 내린 날에 산 하나가 지워지면당신은 눈을 안는다, 빙산만큼 차라리-.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16
운현궁의 봄/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운현궁의 봄 김 재 황 열린 대문 들어서니 봄 햇살이 가득한데그 뜰에는 큰 나무가 헛기침을 높게 뱉고수직사 세운 쪽으로 퍼런 서슬 맴돈다. 늘그막을 대원군이 보냈다는 저 사랑채어디선가 바람결에 묵은 묵향 날리는 듯노안당 멋진 글씨에 내 발걸음 멎는다. 여인네가 머물렀던 노락당과 또 이로당두 귀 열고 둘러보면 두런두런 말소리들오죽의 푸른 잎들이 지난 때를 훔친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15
이 아침 산책길은/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이 아침 산책길은 김 재 황 이 아침 산책길은 열려 있는 전시관 뜰제비꽃은 방글방글 목련꽃은 또 배시시멀찍이 까치가 홀로 맑은 목청 틔운다. 언덕으로 오르다가 빈 벤치에 앉아 쉬니산수유와 생강나무 노란 봄에 실린 향기어린이 노랫소리도 꿈결 너머 들린다. 다시 걸음 재촉하게 어디선가 부르는 듯모여 앉아 말문 떼는 미선나무 꽃송이들가만히 귓바퀴 열고 그 속삭임 새긴다. (2012년 4월 10일) 오늘의 시조 2024.11.14
시인의 길/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시인의 길 김 재 황 한창 젊은 그 시절에 나야말로 눈뜬장님깜짝 놀랄 시 한 편을 얻으려고 밤 밝혔다,이름을 날리는 것이 제일인 줄 알았다. 칠순 넘긴 이 나이엔 기웃하면 먹먹한데욕 쏟아도 안 서럽고 남은 내 길 거뭇하다,가슴에 오직 시심뿐, 바람인 양 걷겠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13
봄이 오면/ 김 재 황 [워닝 소리] 편 봄이 오면 김 재 황 가장 먼저 관악산에 바람 타고 올라가서희게 비운 내 가슴을 반듯하게 펼쳐 놓고진달래 붉은 꽃들을 수채화로 그리겠소. 곁에 와서 참견하는 박새 소리 뿌리치고막 번지는 꿈결까지 봄 햇살로 쫓고 나면진달래 아린 꽃들이 내 맘에도 피겠지요.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12
유채 그 꽃 소식에/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유채 그 꽃 소식에 김 재 황 내가 살던 남쪽 섬에 봄이 이제 눈 떴다니겨울 동안 쓰다가 만, 그 편지를 마저 쓰고‘그립다.’ 말 한마디를 마지막에 꼭 붙일래. 봄이야 뭐 편지 받고 나를 알 수 있을까만옳지 그래 짝사랑에 들뜬 마음 띄워 보면‘맡아라!’ 노란 그 향기, 바람결에 답할는지-.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