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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황 시집 '못생긴 모과'

시조시인 2005. 9. 1. 22:53


 

 김재황 시집 '못생긴 모과' 시와 산문사 1997년 출간.

 

 차 례

 

 1. 위대한 화음

     사랑놀이/ 혈서/ 지휘자/ 위대한 화음/ 따스한 안개/ 춤추며 노래하며/

     숫된 새벽/ 눈 내리는 날/ 밤에 쓴 일기/ 개펄 앞에 서서/ 지지 않는 달/

     서둘러 숲으로 가면/

 

 2. 내면의 밭

     그분에게로 가는 길/ 소나기 연가/ 미루나무야, 너는/ 내면의 밭/ 가난한 기도/

     풍향계/ 못생긴 모과/ 줄지은 저 철새는/ 숨기신 손/ 풀꽃으로 살다가/

     겨울 산을 오르면/ 고개 숙인 산/ 즐거운 숲/ 여기 물은 흐르는데/ 공중 목욕탕에서/

 

 3. 서러운 성좌

     노고지리/ 입술 붉은 꽃/ 아름다운 동박새/ 자벌레 따르기/ 서러운 성좌/

     작은 이파리/ 나무에게 켜 놓은 촛불/ 어름치/ 가시/ 돌아온 물범/

     왔다가 가는 길은/ 저물녘에 종소리 들리니/

 

 

     지휘자

 

     김 재 황

 

     교회에서 관현악단을

     지휘하는 모습이 그분을 보는 것 같다

     이 쪽을 깨우고

     저 쪽을 다독거리고

     구름을 타고 너울너울 날다가

     갑자기 성난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부드럽기가 솜털인 양하고

     기운차기가 말갈기를 세운 듯하다

     음악을 이끄는 손짓

     우주를 날아다니는 신명

     바람이 불고 안개가 내리고

     천둥과 번개까지 어울려서

     이 세상이 창조되는 순간을 재연한다

     그토록 팔놀림이 아름다운 것은

     그 몸 안에 그분이 머무시기 때문이리

     그분의 팔이 춤추기 때문이리.

 

 

                                                  못생긴 모과


                                                  김 재 황 시집



 ‘우리의 시는 전통적인 정서와 자연을 중심으로 표현되어 왔다. 대다수의 현대시를 살펴보면 전통적인 상상력과 구체적으로 그리움의 정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서 김재황 시인이 자연에 친화하여 생명의 언어로 쓰는 시는 다른 시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해설자의 말이다. 사실, ‘못생긴 모과’에 담긴 시편들은 신앙시들이다. 말하자면, 기독교적 찬양시가 아니면서 뛰어난 언어형성으로 신앙심을 나타내고 있다.

 시인은 말한다. 그가 ‘왜 사는가?’ 하는 질문에 해답을 얻은 것은 ‘성경’에서였다고. 태초에 그분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까닭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함이셨다고. 그렇기에 피조물인 우리는 아름답게 사는 게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 사실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쉬운 언어로 명쾌한 울림을 전해 준다.


 휠체어를 탄 소녀 앞에/ 산은 묵묵 입다물고 서 있다/ 바람이 숲을 줄곧

흔들어도/ 방향 표시기를 꺼내 들지 않는다/ 다만, 어둠 속에서 솟아올라

/ 밝은 세상으로 줄달음하는 산골 물/ 그 어깨 위에 올라앉은/ 햇빛 한 줌이

요란하게 반짝인다/ 누군가 휠체어를 밀 때/ 절벽은 무너져 내리고/ 굳어진

고사목 사이사이를 지나/ 눈감은 길이 와서 엎드린다.

                                     ---------‘그분에게 가는 길’ 전문


 시집 전체를 흐르는 정감이 자연에 닿아 있음은 또 하나의 특색이다. 자연이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자연은 신앙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삶의 순수한 상징성이 돋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라 여겨진다.


 따사로운 눈길 주시니/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아지랑이 타고 하늘 가까이로 올라가/ 한껏 운다/ 그 가슴에 얼굴 파묻고 운다/ 겨우내 올린 기도가/ 얼마나 밤하늘을 수놓았던가/ 마침내 그분이 눈길 여시니/ 골짜기마다 얼음 풀리고/

비었던 들판마다 가득한 숨결 소리/ 마냥 즐거워서/ 온 세상 모든 얼굴이

달꽃처럼 정다워서/ 하늘 높이 올라가서 노래한다/ 냇가 자갈밭, 그 보금자리

위로/ 고운 햇살이 봄비처럼 내린다.

                                            ----------‘노고지리’ 전문


 ‘이 시집에는 자연을 향한 작품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전부터 그 쪽에 관심이 닿아 있었지만, 날이 지남에 따라 더욱, 우리의 가장 큰 이웃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렇다. 자연을 아끼는 것이야말로, 그 분의 말씀에 따르는 일이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다.’

 시인의 이 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자연이 살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도 존재하지 못한다. 진정한 삶의 길이 이 시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