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1) 언덕 위의 두 아이들

시조시인 2008. 8. 18. 04:18
 

(1)

어린이들에게는 들과 산이 아주 좋은 놀이터입니다.

“우리, 저 언덕 위에까지 뛰어 보자!”

어린 나폴레옹이 친구를 바라보며 힘차게 말했습니다.

“좋아!”

친구도 맞장구를 쳤고, 두 어린이는 일시에 가파른 언덕 위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맞장구를 치다.’는, ‘남의 말에 호응하거나 동의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다르게 ‘맞장단을 치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칠 때에 둘이 마주 서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치는 장구’를 맞장구라고 하는데, 이를 치려면 서로의 생각이나 호흡까지도 잘 맞아야 장단을 맞출 수 있지요. 그러므로 두 어린이는 언제나 붙어 다니는 단짝이었나 봅니다.

그 언덕은 돌들이 많이 깔려 있는 산길이었지만, 마치 산토끼라도 되는 양, 둘은 미끄러지지도 않고 가볍게 산비탈을 달렸습니다.

두 어린이의 달리기 솜씨는 막상막하였지요. 좀 어려운 말인가요? ‘막상막하’(莫上莫下)란,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하다고 밝혀서 말하기 어려울 만큼 차이가 별로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는, ‘난형난제’(難兄難弟)가 있습니다. 즉, ‘누구를 형이라고 하며 누구를 아우라고 해야 할지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두 가지 것 사이의 우열이나 정도의 차이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에 쓰입니다. 아무튼 두 어린이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달렸는데, 아슬아슬하게 나폴레옹이 먼저 언덕 위로 올랐습니다.

“내가 일등이다!”

나폴레옹은 두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서 크게 외쳤습니다. 이 모습만 보아도 그는 어릴 때부터 남에게 지기 싫어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두 어린이는 언덕 위에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었는데, 어느 사이에 검은 구름이 끼었고, 산으로부터 수상한 바람도 불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물을 동이로 퍼붓듯이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이를 어쩌지?”

 친구는 나폴레옹을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안절부절 못하다.’는, ‘마음이 몹시 초조하여 어쩔 줄 모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원래는 ‘안절부절’이란 말 자체가 ‘마음이 썩 초조하고 불안한 모양’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말에 ‘못하다’가 덧붙어서 강조를 나타내게 되었지요. 말하자면, 부정어와 부정어가 합쳐져서 더욱 큰 강조를 이룹니다.

그런 친구의 모습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아주 침착했습니다. 그는 태연하게 사방을 둘러보더니, “나를 따라와!”하고는 날쌔게 비를 피할 만한 바위틈을 찾아서 기어들어갔습니다. 참으로 그 안은 아늑했습니다. 밖에는 그칠 줄 모르고 비가 계속해서 거세게 내렸습니다. 우르릉 꽝꽝 하늘이 사납게 울었습니다. 그야말로,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은 더욱 무서웠을 겁니다.

 “괜찮을까?”

친구는 자라목을 하고 겁을 잔뜩 먹은 목소리로 말했지요. 그러나 나폴레옹은 무슨 영문인지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었습니다. 만사태평이니, 누가 그 속마음을 알겠습니까. ‘만사태평’(萬事太平)은 ‘모든 일이 잘 이루어져서 편안함’ 또는 ‘모든 일에 근심 걱정이 없이 태연함’을 이릅니다. 친구의 눈에는 그가 뚱딴지처럼 보였겠지요. 뚱딴지같다? 그렇지요. 뚱딴지는 본래 ‘돼지감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생김새나 성품이 돼지감자처럼 ‘완고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을 빗대어서 가리켰던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상황이나 이치에 맞지 않게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할 때’에 쓰입니다.

좀처럼 소나기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레가 또 한 차례 운 다음에 ‘번쩍’ 하고 번개가 치더니 더욱 세차게 물줄기를 쏟았습니다. 정말이지, 우레가 무섭습니다. 이 ‘우레’는, 순우리말인 ‘울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즉, ‘울다’의 어간인 ‘울’에 어미 ‘에’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랍니다. 고어에서도 썼다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종전의 ‘우뢰’(雨雷)라는 한자말은 쓰지 않게 되었다나 봐요. ‘우레’를 다른 말로는 ‘천둥’이라고 합니다. 여름철에 갑작스런 소나기가 올 때에, 먹구름 안에서 순환하는 공기는 강한 운동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위의 차가운 곳에 있는 얼음 결정과 그 아래의 물방울이 사납게 서로 뒤섞이면서 강한 전기를 띠게 되지요. 이 때 얼음 결정은 양극(+)이 되고, 물방울은 음극(-)이 됩니다. 그러다가 그 전압 차가 너무 크면 ‘갈 지’(之) 자 모양의 번개로 방전됩니다. 곧 이어 우레 소리가 들립니다. 그렇게 하늘이 요란하게 울릴 때에 ‘우레가 운다.’라고 하지요.

이윽고, 억수로 쏟아지던 비가 그쳤습니다. 그래요, 억수! ‘억수’란, 몹쓸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악수’(惡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지요. 너무 많이 오는 비는 생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해를 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억수’라고 하니까, ‘수억 개의 빗줄기가 쏟아진다.’의 ‘억수’(億水)라는 한자말인 줄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처럼 비가 쏟아지고 나서 밝은 햇살이 비치자, 사람의 마음까지 산뜻해졌습니다. 나뭇잎에 남아 있는 빗방울들이 빛을 받아서 보석처럼 반짝거렸습니다. 온 세상이 목욕을 하고 난 듯이 맑고 환했습니다.

(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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