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4)코르시카가 독립하다

시조시인 2008. 8. 23. 08:00

(4)

 그리고 다시 20년이 흘렀습니다. 코르시카 사람들은 벼르고 또 별러서 독립을 얻기 위해 다시 제노바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전과 같이 고된 싸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각오를 단단히 다졌기에, 무기와 식량을 가지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굳게 버티었습니다. 젊은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늙은이와 여자들까지 모두 나서서 죽기를 다하여 악착같이 제노바 군대와 싸웠습니다. 그럼요, ‘악착’(齷齪)같이 싸우고말고요. ‘악착’에서 ‘악’은 ‘작은 이’를 뜻하고 ‘착’은 ‘이가 마주 붙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악착’은 ‘조그만 이가 맞물린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는, 바로 ‘이를 앙다문 상태’이지요. 지금은, ‘어떤 일에 기를 쓰고 덤벼들거나 끈기 있고 모질게 달려들어서 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제노바도 별수 없었겠지요. 마침내 그들은 코르시카 섬에서 모두 자기 나라로 쫓기어가고 말았습니다.

“코르시카 만세!”

“코르시카 독립 만세!”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몰려나와서 ‘환호성’을 쳤습니다. ‘환호성’(歡呼聲)이란, ‘기쁘고 반가워서 지르는 소리’입니다. 어찌 안 그렇겠어요? 독립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모두들 ‘환호작약’하였겠지요. ‘환호작약’(歡呼雀躍)은, ‘기뻐서 소리치며 날뜀’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감격의 도가니로 화했을 겁니다. ‘도가니’는, ‘주로 쇠붙이를 녹이는 데 쓰는, 자기나 흑연 따위로 만든 우묵한 그릇’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강한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여러 사람이 들끓는 상태를 비유하여 쓰는 말’이 되었지요.

이제는 코르시카의 모든 사람들이 잔뜩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정정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요. ‘정정당당(正正堂堂)하다.’는 그 말 그대로, 그들의 모습은 꿀림이 없이 바르고 떳떳하게 보였을 겁니다.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다니요. 너무나 장하고 멋집니다. ‘쟁취’(爭取)는 ‘싸워서 얻음’을 이르는 말이고, ‘장(壯)하다.’는 ‘한 일이 매우 대단하고 훌륭하다.’는 뜻이며, ‘멋지다’는 ‘아주 멋있다.’를 의미합니다. ‘독립’이라는 말만 들어도, 나는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우리의 ‘팔일오’가 생각나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용감한 ‘광복군’도 독립을 이룩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광복군(光復軍)은 중화민국의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입니다. 공식적인 이름은 ‘한국광복군’이었지요. 1937년에 창설 계획을 세웠으나, 안타깝게도 중일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늦어져서, 1940년에야 비로소 광복군 총사령부의 창설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한 이듬해인 1941년 11월에 ‘건국강령’을 발표함으로써 ‘스스로의 힘으로 이민족의 전제를 전복한다.’는 자주독립 노선을 내외에 천명했습니다. ‘강령’(綱領)이란 ‘정당이나 단체 등에서 그 기본목표와 정책 및 운동규범 등을 정한 것’을 가리키고, ‘천명’(闡明)이란 어떤 진리나 사실 따위를 ‘드러내서 밝힌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강령을 실천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광복군의 본토 진격작전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실현 직전에 그만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말았지요. 그로 인해서 전후의 우리나라 독립문제에 대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발언권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광복군은 광복 후에 미군정 당국의 요구로 무장을 해제한 채로 귀국하였으며, 1946년에는 억울하게 해체되었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코르시카 사람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독립을 얻었습니다.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파오리’(Paoli)를 통치권자로 뽑았습니다. 그로써 어엿이 코르시카 나라를 코르시카 사람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