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어린이는 바위틈에서 재빠르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때, 먼 하늘을 바라보니, 아주 커다랗게 아름다운 무지개가 섰습니다. 바깥쪽으로부터 빨강, 주홍,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등의 일곱 가지 색깔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모두 알고 있듯이, 무지개는 대기 중에 떠 있는 아주 많은 물방울들에 햇빛이 꺾이거나 부딪쳐 되돌아옴으로써 태양의 반대방향에 활등 모양으로 길게 나타나는 일곱 가지 빛의 줄을 가리킵니다. 흔히 비가 멎은 뒤에 나타나지요.
그 모습이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운지,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넋을 잃고 무지개를 바라보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때, 나폴레옹은 자신의 몸이 조금씩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습니다.
‘무지개를 갖고 싶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나폴레옹은 부리나케 무지개를 향하여 뛰었습니다. 얼마나 무지개를 갖고 싶었으면, ‘부리나케’ 달렸을까요? ‘부리나케’는, ‘불이 나게’에서 나온 말이지요. 옛날에는 불을 만들기 위해 움푹 파인 돌에 나뭇가지를 세우고 빠르게 돌려서 불꽃을 만들었는가 하면, 부싯돌 두 개를 맞부딪쳐서 불을 일으키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돌리는 경우에는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빠르게 돌려야 겨우 불꽃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러므로 ‘불이 나게’란, 원래 ‘불이 날 정도로’ 급하고 빠르게 몸을 놀린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은 ‘급하게, 서두르듯 빠르게’의 뜻으로 쓰이는 부사입니다.
“이봐, 어디로 가는 거야?”
친구는 도무지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서 나폴레옹을 뒤따라 뛰었습니다. 참으로 ‘도무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도무지’는, ‘도모지’(塗貌紙)에서 왔답니다. ‘도모지’는, 옛날 조선시대에 사사로이 행해졌던 형벌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물을 묻힌 한지를 얼굴에 몇 겹으로 착착 발라놓으면 종이의 물기가 말라 감에 따라 서서히 숨이 막히게 된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잃게 되는 형벌입니다. 현재는 그 형벌만큼이나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요.
나폴레옹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바라보며 달려갔습니다. 언덕길을 내려오자, 그 앞을 개울물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신발마저 벗지 않은 채로 첨벙첨벙 건너서 달려갔습니다. 다만 한 곳, 무지개에 눈길을 멈추고 계속해서 뛰었습니다. 친구는, 엔간하면 쉴 만도 하다고 여겼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엔간하면’ 쉬곤 하니까요. ‘엔간하다’는 ‘어여간하다.’의 준말입니다. 흔히 쓰는 ‘어지간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지요. 이는, ‘어떤 표준에 가깝다든지 정도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알맞다든지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웬만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린 나폴레옹의 그 모습은 분명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그를 ‘천둥벌거숭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천둥벌거숭이’는, ‘천둥이 치는데도 무서운 줄 모르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빨간 잠자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천둥벌거숭이 잠자리처럼 무서운 줄도 무르고 함부로 날뛰거나 어떤 일에 앞뒤 생각 없이 나서는 사람’을 빗대어서 ‘천둥벌거숭이’라고도 합니다.
나폴레옹은 ‘앞뒤 생각 없이’와는 경우가 맞지 않습니다. 그는 ‘무지개를 갖고 싶다.’는 확실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으니까요.
산기슭까지 다다르게 되었을 때, 저 먼 산등성이에서 무지개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반드시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고 달려서 그 산등성이에 가까이 왔지만, 무지개는 더욱 저쪽 산모롱이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분하다, 반드시 잡고 말 테다!”
나폴레옹은 부아가 났습니다. ‘부아’는 ‘폐’를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화가 나면 숨이 가빠지고 그렇게 되면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런 말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나 분한 마음’을 가리키지요. 그럴수록 더욱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겁니다. 그는 가파른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이제 앞으로 한 고비만 더 넘기면 된다는 생각에서였겠지요.
그러나 바위 위로 오른 나폴레옹은, 큰 실망에 잠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지개가 더 먼 벼랑 위에서 ‘날 잡아 봐라!’라는 듯이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무지개는 전보다 더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무지개야말로 ‘화중지병’이지요. ‘화중지병’(畵中之餠)을 모르세요? ‘그림의 떡’이란 말입니다. 이는, ‘그림 속의 떡을 먹을 수가 없다는 뜻에서 실용이 되지 못함’을 가리키지요. 이 말을 줄여서 그냥 ‘화병’(畵餠)이라고도 한답니다.
나폴레옹의 옷은 진흙투성이가 되었고, 손과 발은 여기저기 찢어져서 피가 흘렀습니다. 한 마디로 그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요. ‘만신창이’(滿身瘡痍)란, ‘전신에 성한 데가 없이 여러 군데 다친 상처투성이임’을 말합니다. 또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결함이 많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원래 ‘만신창’(滿身瘡)은, ‘온몸에 퍼진 부스럼’을 뜻합니다.
그래도 나폴레옹은 이를 악물고, 무지개를 향하여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참으로 ‘막무가내’(莫無可奈)입니다. 이 말은 ‘한 번 정한 대로 고집하여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 또는 ‘어찌할 수 없음’을 뜻하지요.
벼랑 앞에 다다랐습니다. 이제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손을 뻗어서 무지개를 잡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뒤에서 따라오던 친구가 그를 보고 “조심해!”라고 외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제는 속수무책입니다. ‘속수무책’(束手無策)이란, 원래는 ‘손이 묶여서 도무지 일할 방도가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어찌할 도리가 없이 꼼짝 못할 상황일 때에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몸이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지자, 친구는 서둘러서 벼랑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멀리 돌아서 마음을 졸이며 허겁지겁 달려 내려갔는데, 놀랍게도 그 아래에 그가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친구는 곁으로 가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나폴레옹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졌으므로 귀가 ‘절벽’이 되었나 보다고 친구는 생각했겠지요. ‘절벽’이란, ‘바위가 바람벽처럼 깎아 세운 듯이 솟아 있는 험한 낭떠러지’를 뜻하는 반면, ‘귀가 어두워서 잘 듣지 못하는 상태나 그러한 귀’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나폴레옹은 조그만 주먹을 힘껏 쥐고 있었지요. 그 모습으로 미루어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있는 듯했습니다. 맞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고, 저 멀리 바다로 달아나 버린 무지개를 노려볼 뿐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막간을 이용하여 ‘눈물’ 이야기를 더해 볼까 합니다. ‘막간을 이용하다.’(幕間-)가 무슨 말이냐고요? 이는, ‘연극 상연 도중의 막(幕)과 막(幕) 사이에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하다.’를 뜻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일을 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다른 일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게 되었지요.
사람은 기쁘거나 슬프거나 또는 억울할 때에 눈물을 흘립니다. ‘억울(抑鬱)하다.’란, ‘애먼 일이나 불공평한 일을 당하여 속상하고 분하다.’는 뜻입니다. 아, 그런데 눈물이 왜 나오는 걸까요? 눈물의 역할은 ‘늘 조금씩 분비되어 각막이나 결막을 추기어 줌으로써 먼지 따위를 씻는 데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눈물은 각종 자극이나 정신적인 감동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분비가 촉진된다고 합니다. 성분은 거의가 물이며, 아주 적은 양의 염분이나 단백질 및 당류 외에도 살균작용을 하는 ‘라이소자임’이라고 하는 효소가 약간 들어 있다고 하는군요.
어린 나폴레옹은, 정신을 가다듬은 듯, 땅에 있는 돌을 주워서 무지개를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한 번으로는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몇 번이고 돌을 주워서 자꾸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나쁜 무지개’라고 크게 소리치며 눈을 부릅떴습니다. 그러자 눈물이 다시 주룩주룩 흘러내렸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요.
무지개를 잡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던 나폴레옹의 모습에서 우리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백절불굴’은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다른 말로, ‘백절불요’(百折不撓)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이 정신으로써 나폴레옹은 그 후에 황제가 되어 프랑스를 다스렸고, 유럽에 군림하면서 찬란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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