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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지중해에 있는, ‘코르시카’라고 부르는 섬에서 ‘고고의 소리’를 냈습니다. ‘고고의 소리’란 한문으로 ‘고고지성’이라고 합니다. ‘고고지성’(呱呱之聲)은,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우는 소리’를 일컫습니다. 또, ‘사물이 처음으로 이룩되는 기척’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코르시카는, 이탈리아 서부 제노바 만의 남쪽에 있는 섬입니다. 면적은 8천7백 평방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일명 ‘코르스 섬’이라고도 부르지요.
이 섬에 살고 있는 코르시카 사람들은 옛날부터 아주 살림이 구차했습니다. 여기에서 ‘살림’이란, ‘한 집안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 말은 원래 불교용어인 ‘산림’(山林)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산림’은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절의 재산관리뿐만 아니라, 일반 여염집의 재산을 관리하고 삶을 이어가는 일까지 가리키게 되었지요. 그리고 ‘구차하다.’는, ‘몹시 가난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구차’(苟且)는, ‘정당하거나 어엿하지 못하고 구구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몹시 가난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구구함’은 무슨 뜻이냐고요? ‘구구’(區區)는, ‘내세우는 의견 따위가 제각기 다름’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고, ‘버젓하지 못하여 구차하고 창피스러움’을 뜻하는 경우도 있지요. 여기에서는 뒤의 경우입니다.
코르시카는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약간 큰 섬입니다. 하지만 산이 많고 밭이 적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연명을 했습니다. ‘연명’(延命)이란, ‘겨우 목숨을 이어서 살아감’을 뜻합니다. 한 마디로 ‘목숨 잇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옛날 제도에서 ‘감사나 원이 부임할 때에 궐패(闕牌, 즉 ‘闕’ 자를 새겨놓은 나뭇조각) 앞에서 왕명을 전하여 널리 퍼뜨리던 의식’을 ‘연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군요.
게다가 코르시카 섬은 ‘제노바’라고 하는 조그만 나라의 영토였기 때문에, 제노바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영지는 핍박을 받기 마련입니다. ‘핍박’(逼迫)이란, ‘바싹 제쳐서 괴롭게 굶’을 말합니다. 우리 또한 과거에 일제 35년 동안(1910년~1945년)의 핍박을 받은 적이 있지요. 어찌 그 분한 일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노바는 언제나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여서 코르시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좀더 유식하게 말한다면, ‘가렴주구’했지요. ‘가렴주구’(苛斂誅求)란,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이며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코르시카 사람들은 제노바로부터 벗어나서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당연하지요. ‘당연’(當然)은, ‘도리로 보아 마땅히 그러할 것임’을 가리킵니다.
1736년의 일입니다. 마침내 코르시카 사람들은 독립하기 위해 제노바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독립이라니, 내 피도 끓습니다. 우리도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전쟁을 치렀으니까요. 우리는 결코 과거의 이 일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을 거울삼아서 항상 힘을 길러 놓아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전화위복’은, ‘언짢은 일이 원인이 되어 오히려 다른 좋은 일을 보게 됨’을 말합니다.
코르시카 사람들은 모두들 용감하게 나서서 싸웠습니다. 변변한 무기가 있을 리 없었겠지요. 사냥꾼은 낡은 총으로, 그리고 농어민들은 낫과 도끼로, 제노바 군대와 맞섰습니다. 용기 있는 그들은 그야말로 ‘노도’(怒濤)와 같았을 겁니다. 그래요, ‘무섭게 밀려드는 큰 물결’이었을 터입니다. 그 무서운 힘을 당해낼 수 없었던 제노바는, 부랴부랴 프랑스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부랴부랴’였겠어요. ‘부랴부랴’는, ‘불이야 불이야’가 줄어서 된 말입니다. 불이 났다고 소리치며 급하게 내달리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지금은 ‘아주 급히 부산하게 서두르는 모양’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코르시카 사람들은 제노바와 프랑스의 연합 군대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코르시카 사람들은 괄괄한 성미여서 그대로 당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괄괄하다’는 ‘풀기가 빳빳한 것같이 급하고 억센 성품이나 목소리가 크고 거센 것’을 이르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원래의 본뜻은 ‘이불 호청이나 옷 등에 풀을 먹일 때, 풀기가 너무 세어서 빳빳하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용감하게 그 많은 적들을 맞아서 싸웠습니다. 백병전도 여기저기에서 벌어졌지요. ‘백병전’(白兵戰)이란, ‘혼자 몸으로 자기 무기만을 가지고 싸우는 육박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백병’이란, 본래 ‘혼자 쓸 수 있는 창과 칼 따위의 기본 무기’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럿이 얽혀서 싸우는 게 아니라, 혼자 몸으로 맞붙어서 싸우는 전투’를 백병전이라고 합니다. 흔히 ‘어떤 일에 혼자 몸으로 죽을힘을 다하여 덤벼드는 것’에 비유됩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말하자면, ‘이판사판’입니다. ‘이판사판’(理判事判)은, ‘마지막 궁지에 몰린 상황’을 말합니다. 이는, 이판과 사판의 합성어이지요. 한말의 국학자인 이능화(李能和)가 집필한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권 ‘이판사판사찰내정’(理判事判寺刹內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사찰에는 이판승과 사판승의 구별이 있다. ‘이판’이란, 참선하고 경전을 강론하며 수행하는 홍법 포교의 스님인데, 속칭 공부승(工夫僧)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사판’이란, 생산에 종사하고 절의 업무를 꾸려 나가며 사무행정을 보는 스님인데, 속칭 산림승(山林僧)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이판과 사판은 어느 한쪽이 없어도 안 되는 상호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조선조가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국교로 세우면서 이판이 되었든지 사판이 되었든지 그 모두가 절박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코르시카 사람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습니다. ‘중과부적’이란, ‘적은 수효는 많은 수효를 대적하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그럴 수밖에요. 코르시카 사람들은 적군과 비교해서 턱도 없이 그 수효가 모자랍니다. 그리고 거의가 사냥꾼과 농사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기라고는 낡은 총과 칼이 고작입니다. 어쩔 수 없이, 코르시카 사람들은 제노바와 프랑스의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그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쳤습니다.
“정말 분하다. 이보다 더 분한 일은 없을 거야.”
“우리에게 새로운 총과 대포가 있었다면….”
“어디 두고 보자. 언제인가는 제노바 군대를 코르시카에서 반드시 몰아내고 말 테다.”
모두들 주먹을 쥐고 ‘이구동성’으로 다짐했습니다. ‘이구동성’(異口同聲)은, ‘백이면 백이고 천이면 천인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음성을 냄’을 뜻합니다. 지금은 ‘여러 사람의 말이 한결같이 같음’을 나타냅니다. 다른 말로는 ‘여출일구’(如出一口)라고도 한답니다. (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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