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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모든 과목을 다 좋아했지만, 특히 ‘산수’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산수’는 우리말로 ‘셈본’입니다. ‘셈’에 관한 법칙을 공부하는 학문이지요. 셈본 공부를 시작하면, 밥 먹는 일도 잊은 채, 서쪽 하늘로 해가 기울어서 땅거미가 지는 것도 모를 만큼 정신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밤참 먹는 맛에 밤공부를 한다는 아이도 있었는데, 나폴레옹은 먹는 데에 큰 욕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밤참’은 ‘밤에 먹는 군음식’을 말합니다. 한자말로는 ‘야찬’(夜餐)이라고 합니다. 원래 ‘참’이란 말은, 옛날에 역말을 타고 가는 곳을 이르는 ‘역참’(驛站)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요즘의 우편제도와 다름없는 옛날의 파발마 제도에서 역말을 갈아타기도 하고 한숨 돌리며 쉬기도 했던 곳이 ‘역참’이었던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확대된 겁니다. 즉, ‘길을 가다가 쉬는 곳’에서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으로, 더 나아가서 ‘일하는 사이에 먹는 음식’까지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밤참’이나 ‘새참’ 등의 중간 중간에 간단히 허기를 끄기 위해 먹는 음식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고 있습니다.
‘밤참’이라고 하니, 길고긴 한겨울 밤에 찹쌀떡 장수의 “찹쌀 떡-”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찹쌀떡’은 ‘찹쌀로 만든 떡’이고, ‘찹쌀’은 ‘찰벼에서 나는 쌀’입니다. ‘찹쌀’을 한문으로는 ‘나미’(糯米) 또는 ‘점미’(粘米)라고 하지요.
그런가 하면 메밀묵 장수의 ‘메밀묵 사려, 메밀묵’하는 구성진 목소리가 들려 오기도 합니다. ‘메밀묵’은 ‘메밀가루로 쑨 묵’을 말합니다. ‘메밀’은,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 키는 80 센티미터 내외입니다. 줄기는 속이 비어 있으며 붉은 빛인데 곧게 섭니다. 초가을에 흰 꽃이 피지요. 메밀꽃을 일명 ‘교화’(蕎花)라고 부르며, 파도가 일 때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泡沫)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메밀꽃 일다.’라고 하면, ‘물보라가 하얗게 부서지면서 파도가 일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 메밀은 아시아 북중부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메밀꽃에 얽힌 한 에피소드(episode)를 소개할까 합니다. 옛날, 한 선비가 출타를 했다가 모처럼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러니 어찌 술 한 잔이 없었겠습니까? 그이 집으로 끌려가서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기울이다가 보니, 어느덧 취기가 도도하게 올랐습니다. 때는 초가을이라, 해는 빨리 저물었습니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 하겠기에, 선비는 친구와 작별하고 집으로 향해서 밤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쯤 갔을까요. 달빛이 교교히 비치는 산허리 길을, 선비가 막 돌아섰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넓은 냇물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선비는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서서 휘적휘적 건너갔습니다. 그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선비는 술이 깨고 나서야 비로소, 어제 옷을 벗고 건넌 게 냇물이 아니라, 꽃이 만개한 메밀밭이었음을 알고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셈본’을 그리 좋아하였다니, 그러면 나폴레옹이 타산적인 사람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고요? 천만에요. ‘타산적’(打算的)이란, ‘이해관계를 따져서 셈하여 보는 것’을 말합니다. 절대로 나폴레옹은 그런 아이가 아니었지요. 오히려 그가 ‘주먹구구’를 싫어했으므로,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말이라면 ‘액면 그대로’ 믿었습니다. ‘주먹구구(-九九)’는, 주먹으로 구구셈을 따지듯이 한 데서 온 말입니다.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하며 구구셈을 하는 일은, 그것을 하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보는 사람도 틀리기 쉽습니다. 그렇듯 헷갈리게 만드니, 도무지 믿음을 줄 수가 없겠지요. 지금은, ‘정확하지 못한 계산이나 계획성 없이 어림짐작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주먹구구 하듯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액면 그대로’에서 ‘액면’(額面)은 ‘화폐나 주식이나 채권 따위에 적힌 일정한 돈의 액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로 겉에 내세운 사물의 가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액면 그대로’는 ‘말 그대로, 글자 그대로 믿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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