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14) 나폴레옹의 형설지공

시조시인 2008. 9. 6. 06:51

(14)

 나폴레옹의 아버지인 샤를 보나파르트는, 전에는 코르시카의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프랑스에게 져서 그 나라로부터 압제를 받게 된 후에는 법률 공부를 하여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변호사’라는 말이 나왔으니, 그에 대해 잠시 더듬어 볼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변호사’란 말이 생기기는 1905년경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거래와 소송 등은 모두 문서를 작성하여 행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문서와 형식이 예나 지금이나 복잡합니다. 그러므로 소송 당사자는 관아주변에서 소송을 유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고용하여 대리소송을 하였습니다. 그 고용된 사람을 가리켜서 ‘고용대송’(雇傭代訟)이라고 불렀답니다. 하지만 성종 9년인 1478년 8월에 이 제도를 금지하였다는군요.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흐른, 1903년 5월에 편찬하여 공포된 ‘형법대전’(刑法大全)에 의하여 그 금지가 완화되었고요. 이로써 정식으로 소송을 교도하거나 소장을 작성하는 직업이 생기게 되었지요. 이게 바로 ‘변호사 제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1905년 11월 8일의 ‘변호사법’을 비롯하여 당년 11월 17일의 ‘변호사시험규칙’에 의하여 비로소 우리나라에 ‘변호사’라는 명칭이 소개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집에는 변호사인 그 아버지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늘 많았습니다. 많은 손님들의 북새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북새통’이란 ‘북새놓은 바람’을 이르는 말이고, ‘북새’란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부산을 떨며 법석이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 처지이니, 집안에서 조용히 공부하기는 영 틀린 일입니다. 하는 수 없이, 나폴레옹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조용한 뜰로 나간 다음에 나무 상자를 놓고 홀로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숙제는 물론이고, 예습과 복습까지 그 곳에서 모두 마쳤을 겁니다. ‘숙제’(宿題)는 ‘학생에게 내어주는 과제’ 또는 ‘앞으로 두고 해결해야 될 문제’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숙제’는 본래 ‘옛날에 서당이나 학당에서 시회(詩會)를 열기 며칠 전에 미리 내주어서 돌리는 ‘시나 글의 제목’이었답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서 서당의 자리를 학교가 대신하게 되면서부터 그 뜻도 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부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불평 없이 공부에 매진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를 ‘형설지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형설지공’(螢雪之功)은 ‘열심히 공부하여 보람 있는 결과를 얻음’이나, ‘근면한 생활을 하며 면학함’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 춘추시대입니다. 12열국 중의 하나인 ‘동진’(東晋)은, 어느 나라나 어느 때보다도, 귀족문화를 활짝 꽃피웠습니다. 특히 시(詩)에서는 연명(淵明)이라는 사람이, 회화에서는 고개지(顧愷之)라는 사람이, 그리고 서(書)에서는 왕희지(王羲之)라는 사람이 훌륭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차윤’(車胤)이라는 선비가 살았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태도가 공손하고 부지런하였으며, 온갖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주 가난하였지요. 얼마나 가난하였는가 하면, 밤에 등불을 밝힐 기름을 구하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그렇다고 밤에 책을 읽지 않을 수야 없었겠지요. 그래서 그는 여름이 되면 깨끗한 비단 주머니를 만들어서 그 속에다가 수십 마리의 개똥벌레를 잡아넣고 그 빛으로 책을 비추어 가며 글을 읽었고, 그 결과로 벼슬에 올라서 상서랑(尙書郞)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똥벌레는 애벌레이지요. ‘반딧불이’가 그 어른벌레입니다. 이들을 일컬어서 한문으로는 ‘형’(螢)이라고 부릅니다. 개똥벌레의 몸길이는 15밀리미터 안팎입니다. 등판은 검고 앞가슴은 붉으며 많은 발을 지녔어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성충의 반딧불이 중에 ‘애반딧불이’를 살펴보면, 그 크기가 13밀리미터 내외입니다. 수컷보다 암컷이 약간 큽니다. 수컷은 배의 5마디와 6마디에, 그리고 암컷은 배의 5마디에 황백색 발광기가 있습니다. 그 세포 속에서 만들어진 발광물질의 산화현상에 의하여 빛이 납니다. 그 불빛이 깜박거리는 횟수는 1분 동안에 70여 번 정도라고 합니다.

또, 같은 시대에 ‘손강’(孫康)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그 마음 씀씀이가 맑고 깨끗하여 세상 사람들과 어울림에 잡스러운 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도 역시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밤에 등불을 밝힐 기름이 있을 리가 없었지요. 앞의 ‘차윤’은 ‘개똥벌레’의 불빛으로 책을 읽었으나, 그는 겨울에 내린 흰 눈의 빛으로 책을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질 리가 없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벼슬에 올랐는데, 어사대부(御史大夫)라는 높은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그 두 사람들로 인해서 ‘형창’이나 ‘설안’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형창’(螢窓)은 ‘개똥벌레의 빛으로 책을 읽는 방의 창문’을 가리키고, ‘설안’(雪案)은 ‘흰 눈의 빛으로 글을 읽는 책상’을 나타냅니다. 참으로 멋진 말들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명월위촉’(明月爲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밝은 달빛으로 촛불을 대신함’을 이릅니다. ‘명정월색’을 촛불 삼아 책을 읽으면 글의 내용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갈 겁니다. ‘명정월색’(明淨月色)은 ‘밝고 맑은 달빛’을 가리킵니다.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