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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집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출간

시조시인 2009. 8. 9. 08:12

 

 

 

책 머리에





  1

그 동안 聖人들의 삶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려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로, 이미 ‘숫시인 싯다르타’를 산문집으로 펴냈고, 또 한 산문집 ‘신쿠러 콩쯔’(辛苦了 孔子)의 원고를 탈고하였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깨끗하게 또 뜨겁게 살고 떠난, 그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을 사랑한다. 이제 나는, 눈을 감으면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게 바로 내 눈에는 모두 꽃이다. 외로운 밤이면 그 향기가 더욱 나를 감미롭게 이끈다. 그들과 함께 있는 한,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다.



2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목숨들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작은 목숨일수록 그 순수함이 별처럼 반짝거린다. 어쩌면 안타까움 때문에 더 그러할 터이지만, 그 작은 얼굴들이 나에게 눈부심을 안겨 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잠자리며, 냇물 속에서 멋진 춤을 내보이는 민물고기며, 숲속을 신나게 휘젓고 다니는 개미며, 심지어는 땅속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까지, 그 한 마리 한 마리가 성스럽기 이를 데 없다.

내 가슴을 맑게 비우고 내 눈길을 낮은 자리로 향하면, 그들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니, 그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음악이 흐른다. 그들이 가는 곳으로 항상 음악이 따라다닌다. 풀과 나무가 그들과 함께 그 음악 속으로 깊게 빠진다.

그들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땀 흘리며 열심히 살 뿐이다. 그러니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해가 밝으면 기쁨으로 그 날을 노래하고, 해가 저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날을 곱게 접는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삶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잘못 때문에 여러 목숨들이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 특산민물고기인 ‘서호납줄갱이’이다. 이 물고기는 수원 서호에 살았다. 1913년, 이 서호납줄갱이는 조던 박사와 메츠 박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35년 당시, 일본 사람들이 관리하던 권업모범시험장 측에서 서호를 개수한답시고 그 둑을 허물어서 물을 모두 빼 버렸단다. 그 후로 서호납줄갱이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찌 이 물고기뿐이겠는가. 앞으로 우리가 자연을 우리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더욱 많은 목숨들이 이 땅을 떠나 버리고 말게 된다. 정말이지, 세계 곳곳에서 많은 목숨들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3

나의 신앙은 시조이다. 나는 시조를 지팡이 삼아서 힘든 삶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 물론, 지팡이와 마찬 가지로 신앙은 삶의 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아무리 시조를 내세운다고 하여도 시조가 내 삶의 목표는 될 수 없다. 그렇다. 시조는 내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話頭’이다.

이제 나는, 멋진 시조를 갈망하지 않는다. 다만, 참된 시조를 붙들게 됨으로써 깨끗한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비틀거리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 주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이 밤을 밝히고 있다.

하기는, 말 한 마디나 몸짓 하나를 모두 시조(詩)에 어긋나지 않게 나타내는 일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는, 저절로 그리 되어야 한다. 이게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단언하건대, 시인이 되기는 쉬워도 시인으로 살아가기는 어렵다.

                                                                                              2009년 낙성대에서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