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금낭화와 유안진 시인

시조시인 2013. 10. 13. 07:21

금낭화와 유안진 시인

 

김 재 황

 

 

 

 

 

노을빛 그리움을 가득 담은 꽃이여. 가늘한 목숨을 뽑아서 분홍빛 사랑을 가득 채운 주머니 꽃이여.

산으로 오르다 보면, 별별 기화요초(琪花瑤草)를 다 만난다. 그 중에서 금낭화(錦曩花)는 그 아름다움으로 단연코 두각을 나타낸다.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씩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그 모습이 꽤나 신기하고 아름답다.

어렸을 적, 나도 염낭을 찼던 기억이 있다. 염낭은 아가리에 잔주름을 잡고 끈 두 개를 양쪽에 꿰어서 여닫게 만든 주머니로, 원래는 협낭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염낭으로 부르게 되었다. ‘염낭은 일명 두루주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낭화는 그 모양도 모양이려니와, 그 꽃빛깔이 분홍빛이어서, 어느 들꽃보다 서정적이다. 그런데, 가지에 주렁주렁 달려서 바람에 한들거리는 노을빛 물든 그 꽃을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유안진(柳岸津) 시인을 떠올렸다.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생각나게 했을까. 나는 마침내 금낭화의 그 모습과 그 빛깔 모두가 유안진 시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분홍빛 그리움, 그리고 그 그리움이 담겨서 출렁이는 울음주머니…….

 

 

내 참새가슴에는/ 웃음을 잘라내는/ 작두질이 있었습니다// 쇠를 켜는

망치질/ 가죽 패는 무두질도 있었습니다/ 성주터를 다지는/ 달구질까지

있었습니다// 이제/ 마흔 다섯 이 가슴은/ 방짜가슴입니다// 통째로

하나의/ 울음주머니입니다// 이 가슴이 한 번 울면/ 석 달 열흘 비가

옵니다.

---------- 작품 징이 되어, 거기서 누가 우는가.’ 전문

 

유안진 시인은 말한다.

나는 하나를 갖고 싶었어요. 몸서리치며 뼛골 깊숙이 젖어들고 절여들고 스미고 배어드는 그 울림을 듣고 싶었어요. 수풀이 진저리를 치며 바르르 떨고, 그 떨림은 곧장 초목의 뿌리를 타고 산의 살 속 깊숙이 배어들어 가서는 마침내 낮고 높은 산맥들의 뼛골 속까지 울리게 되고, 그런 다음에는 다시 돌아 나오는 그 울림소리는 산마루까지 되돌아나와 비로소 산울림이 되는 징 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분명히 징 소리는 분홍빛이고, 산울림도 분홍빛이다. 머언 산에서 가까운 산으로 요상스런 귀기(鬼氣)를 타고 사람들의 가슴과 척추와 골수까지 파고들어 소리나게 울리는.

유안진 시인은 특히 분홍빛에 민감한 듯이 보인다. 그는 분홍빛 봉숭아 꽃을 보면 손톱에 꽃물을 들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공연히 콧날이 찡해지고, 강물에 떠내려오는 분홍빛 단풍잎을 보면 대상이 없어도 그리움이 피어나 저 홀로 싹이 트던 사랑을 떠올라서 두 볼이 달아오르고, 뜰에 핀 한 송이 분홍빛 장미꽃을 보면 먼 옛날의 우정에 눈시울이 축축해지고, 바닷가에서 분홍빛 해당화를 보면 그 애잔스런 꽃잎이 짙은 향기를 풍기면서 황홀한 어지럼증으로 다가와 가슴이 떨려 오고, 심지어는 한탄강 석벽 절벽에 피어 있는 분홍꽃 싸리꽃을 보고 1950년 전쟁통에 목숨을 잃은 그 떼귀신 무리의 요기를 연상하며 간을 조인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은, 그가 더 늙어서 할머니가 되면 분홍색 구두에 분홍색 핸드백만 들고 다니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유안진 시인이 갖은 붉은 빛에 대한 관심은 그 나름대로 근거를 갖추고 있다. ‘불빛을 연상시키는 붉은 색은 옛부터 벽사(辟邪)의 색이었으니, 인간을 노리는 병귀신 잡귀신 등이 여성의 입술에 바른 루즈만 보고도 도망칠 수밖에…… 그뿐인가. 옛날보다 붉은 색이 흔한 지금은 여성의 의복, 구두, , 발톱에도 붉은 매니큐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붉은 색이 귀했던 옛날엔 귀신이 잘 노리는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금()줄엔 붉은 고추, 아기옷엔 긴 홍(), 돌엔 수수떡으로 붉은 색을 대신했다. 또 이불의 붉은 깃, 처녀의 홍댕기가 있었고, 신부 얼굴에는 붉은 연지곤지로 호사다마(好事多魔)에 대처했다. 또 문설주 위엔 붉은 부적을 붙이고, 팥죽을 쑤어 먹고, 닭피를 뿌리고 일년을 견디었다. 붉은 색은 벽사의 색이면서 길한 색이었다. 박혁거세나 고주몽이 붉은 알 또는 자줏빛 알에서 나왔다고 했고, 임금과 왕족은 홍색(紅色) 옷을 입었다. 대신들의 관복도 붉은 계통일수록 높았다.’

하지만 유안진 시인이 붉은 빛에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 것만은 아닌 성싶다. 아마도 그는 붉은 빛, 그 중에서도 분홍빛에서 옛 시절의 고향과 정든 얼굴들의 그리움을 만나기 때문일 게다. 정든 얼굴들의 목소리, 고향의 산울림을 듣기 때문일 게다.

금낭화는 양귀비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굵은 뿌리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곧게 서는데, 온 몸에 흰 가루를 뒤집어쓴 듯하다. 순결함을 지키려는 시인의 모습을 닮았다. 키는 60cm로 자라지만, 줄기가 매우 연해서 꺾어지기 쉽다. 여리디 여린 시인의 심성과 같다. 긴 자루를 지닌 잎은, 서로 어긋나게 자리하며, 23출 복엽이다. 잎몸은 깃털처럼 갈라졌다. 이 또한 하늘로 오르려는 시인의 몸짓을 생각하게 한다. 잎가장자리가 밋밋하여 정감이 있다.

이 금낭화는 중국이 원산인 것처럼 알려져 왔으나, 우리나라 금강산과 지리산은 물론, 설악산과 그밖에 우리나라 중부와 남부의 높은 산 바위 틈에서 자생하고 있는 우리의 꽃이다. 그러니 우리의 시인과 어찌 닮지 않았으랴.

유안진 시인은 1941424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우리 동네는 산촌치고는 제법 큰 200호 남짓한 씨족마을이었는데, 타족 몇 집만 빼고는 모두 우리 일가 친척들뿐이었어요. 그래서 내 또래들도 촌수로 치면 12촌 안팎의 친척집 아이들이었지요. 어릴 적, 집에서 부르던 내 아명은 차야였는데, 매사에 앞장을 서는 위치는 손()타기 쉬운 위험스런 자리이니, 귀신이 잡아간다 하여, 먼저를 앞에 둔 희망적이고도 겸양 어린 이름으로 증조할머님이 처음 부르시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려서도 나는 약질에 병골이라 잔병이 잦았지요. 그래서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지 못했는데, 젊은 엄마는 층층시하에서 나를 늦잠 자게 내버려두면 흉나는 짓이라 여겨, 날마다 날 깨우는 데 성화셨어요.”

그는 고향을 늘 그리워한다. 베어 온 쑥대로 모깃불을 피워 놓고 멍석 가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식사 후에 집집마다 뒤뜰에서 목물을 하고 대평상에 모여앉아 수박이나 옥수수를 먹으며 나누던 식구들의 이야기가 쑥이 타는 내음처럼 향기롭던 고향.

밤에는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와 고모 등이 모인 안방에서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옛이야기를 듣는가 하면, 젊은 엄마가 낭랑한 목청으로 편지를 읽거나 가사를 외울 적에는 그는 그 가락에 젖어 들어서 고모의 수틀 속에서 날아가는 봉황새가 되곤 했다.

그는 아래로 두 동생을 잃었다. 젖먹이 적에 죽은 두 동생은, 아기천사가 되었거나 참꽃이 되었을 거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가사(歌辭)와 이야기를 잘 외웠고, 바느질을 하거나 빨래를 밟거나 베틀에 올라서 베를 짤 때에도 구성진 가락을 늘 중얼거렸다 한다.

그는 월곡(月谷)으로 넘어가는 금당이 재고개 뒷산길을 걸어서 임동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곳에서 625전쟁을 겪고 14년 동안이나 살다가 고향을 떠나 대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전으로 이사를 오자, 외가댁과 가까이 살게 되면서 그의 어머니의 슬픈 가락은 없어지고 그 대신에 어머니의 노래는 교회의 찬송가로 바뀌어 갔다.

사랑방에서는 할아버지의 노래인 시조가 흘러나왔고, 증조할머님과 할머님, 그리고 고모가 쓰시던 안방에서는 약간 쉰 목청의 구성진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기억됩니다. 내가 듣고 자란 이 노래들은, 내 혼과 내 정서를 키워 온 좋은 영양제였다고 느껴집니다.”

그 노래들은 금낭화 주머니마다 지금도 들어 있는가. 그렇게 되어, 금낭화를 닮은 시인이 태어났는가.

 

 

잠자면서도 황홀히 웃는/ 꽃으로 살고 싶었습니다만// 울음조차 노래가 되는/

새로 살고 싶었습니다만// 짖궂어라, 운명의 별이/ 심술부려 휘저어 버린

내 손금.

---------- 작품 손금전문

 

5월부터 8월에 걸쳐, 금낭화는 가지 끝에서 비스듬히 꽃대가 자라나 한 줄로 늘어지면서 꽃이 핀다. 이른바, 총상(總狀) 꽃차례. 꽃은 심장꼴로 사랑을 나타내고, 그 한가운데에 흰 암술이 돌출하여 순수성을 밝힌다. 수술은 6, 꽃잎은 4개인데, 안쪽 2개는 서로 붙어서 끝이 길게 돌기처럼 되어 있고, 바깥쪽 2개는 밑부분이 부풀어서 넓은 주머니 모양을 이룬다. 이 꽃을 일명 며느리주머니라고도 부른다. 양지바른 풀밭에 난다.

그러면 유안진 시인이 지녔던 젊은 시절의 주머니 속에는 대체 어떤 사연이 담겼을까.

내 젊은 날의 고독은 기막힌 야망과 굳게 결속된 것이었지요. 남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고, 남별난 무엇을 갈구하며 이룩한 성취를 과시하고 싶었고, 불변의 진리를 찾아내어 남기고 싶었어요. 기막힌 울림소리로 세상을 감동시켜 울려 주고 싶었던 꿈과 야망, 포부와 욕망, 희망 같은 탈을 쓴 정체 모를 좌절과 갈등, 절망과 슬픔 때문에 나는 언제나 추웠어요. 때로 그것은 애인의 모습으로, 친구의 모습으로, 종교의 모습으로, 황금의 모습으로 착각되기도 했었지요.”

그는 대학 4, 대학원 2, 조교 2년의 긴 세월을 용두동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지내고서, 유학을 했고 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유안진 시인은 1965현대문학에 시 ’, ‘위로’, ‘이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의 작품은 우리 시대에서 버림받은 삶의 편린들을 한국인 정서(情緖)의 핵심으로 인정하며 음악성을 존중하는 한국적 가락을 시의 호흡으로 하여 언어를 절제하는 간명한 형식의 노래라는 평을 듣는다.

사실, 알고 보면, 유안진 시인은 화려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꽃보다 잎을 좋아한다. 따라서 사랑보다 우정을 더 소중하게 느끼곤 한다. 만약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대상이 있게 된다면, 애써 여름날 녹음처럼 청정한 우정으로 늘 푸르게 푸르게 키워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무엇이 그를 기분 좋게 하고 감동시켜 주는지 알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을 좋아한다.

여럿이 웃고 떠들 때, 그저 조용히 앉아서 웃으며 듣기만 하는 사람. 비웃는다는 기색이 전혀 없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잔잔하고 평화롭게 웃기만 하는 사람. 그래서 한창들 떠드느라 그의 존재는 완전히 무시되었으나, 어지간히 떠들고 나면 그 사람만 돋보이게 마련인 사람. 열심히 자기 주장을 얘기한 사람들이 모두 그의 들러리같이 보이게 하는 사람. 없는 듯 호젓이 있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이 그립습니다.”

유안진 시인은 젊었던 시절에 가장 보람을 얻었던 것으로 종교에 심취했던 일을 꼽는다.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 없다면 남과 다르기라도 해야겠기에, 문학과 학문이 인간에 관한 것이므로 그는 인간 탐구를 신과의 관계에서 설정하려 했다. 따라서 지금까지도 인간 존재의 불가사의를 절감하게 되고, 그럴수록 신의 불가사의를 느끼는 것만 같다고 술회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말없는 기도를 하고 있어요. 내 형편, 내 소원, 내 억울함이야 굳이 내가 기도하지 않아도 전능하신 분이 다 아시는 바,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신의 뜻대로 되어야 할 것이며, 그래서 결국은 합동하여 모든 이들에게 유익 되게 하실 줄을 믿고만 싶어요. 지금 당장은 나에게 불운과 불행과 손해가 되어도, 나중에는 결국 나와 내 주변과 모든 이들에게 행운과 행복과 이익이 되게 하실 것을 확신하고 싶어요. 그렇게 확신하게 해 주시기를 말없이 간절히 빌고만 싶을 뿐입니다.”

 

 

가려주고/ 숨겨주던/ 이 살을 태우면// 그 이름만 남을 거야/ 온 몸에

옹이 맺힌/ 그대 이름만// 차마/ 소리쳐 못 불렀고/ 또 못 삭여 낸//

조갯살에 깊이 박힌/ 흑진주처럼// 아아 고승(高僧)/ 사리(舍利)처럼

남을 거야/ 내 죽은 다음에는.

----------- 작품 사리(舍利)’ 전문

 

금낭화는 이웃을 위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 금낭화는 그 뿌리를 약재로 쓰는데, 한방에서는 금낭근(錦曩根)’, 또는 토당귀(土當歸)’라고 한다. 그 안에 프로토핀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피를 맑게 하고 종기를 가시게 하는 효능을 지녔다.

금낭화와 같은 들꽃 시인 유안진은, 물가 외딴 집에서 전설처럼 살기를 희망한다. 진종일 물가 모래펄에서 놀다가 저녁나절 집으로 돌아오면 뒷문밖 갈대숲에서는 강바람에 갈잎들 서걱이는 외딴 집. 저녁 연기 피어오르고, 그 연기 잦아든 감청색 하늘에는 무수한 잔별들이 돋아나 반짝이는 곳. 그런 물가에서 조용히 늙어 가고 싶어한다. 유안진 시인의 그 많은 주머니 속에는, 돈이 아니라, 서정이 가득 들어 있는 게 틀림없다. 저 금낭화처럼.(평론집 '들꽃과 시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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