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시인의 녹색 시조1)
매화가 피고 지다
김 재 황
귀 시린 산바람이 먼 고개를 넘어가고
얼었던 저 냇물은 긴 숨결이 풀리는데
참 오래 기다림인 듯 꽃망울을 부린다.
드디어 만났을 때 반갑다고 고운 눈빛
볼 붉은 수줍음이 온 마음을 흔드느니
살며시 입 끝을 물고 꽃송이가 열린다.
두고 간 마음결을 동그랗게 굴려 가면
어느새 봄 자락이 줄타기에 오른 한낮
너무 큰 아쉬움 안에 꽃잎들이 내린다.
[시작 메모]
봄에 피는 꽃으로는 ‘매화’가 으뜸이 아닐까 한다. 매화나무는 이른 봄에 서둘러서 꽃을 피운다. 게다가 그 꽃은 산뜻하고 은은한 향기까지 풍긴다. 일찍 꽃을 피우기 때문에 ‘조매(早梅)’라고 부르기도 하며, 추울 때에 꽃을 피운다고 하여 ‘동매(冬梅)’라고도 부른다. 그런가 하면,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라고도 하며, 봄 냄새를 서둘러서 전한다고 하여 ‘춘매(春梅)’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매(梅)’라는 이름은 어떻게 하여 생겼을까? 원래 이 글자는 ‘어머니가 자녀를 많이 낳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신맛’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아마도 나무에 매실이 많이 달리고 신맛을 지니기 때문일 것 같다. 그러나 특히 내가 좋아하는 꽃은, 오래 묵은 가지에서 피어나는 ‘고매(古梅)’이다. 오랜 경륜에서 풍기는 고고한 아름다움과 투박하지 않고 여윈 순결함, 그리고 띄엄띄엄 맺혀 있는 꽃봉오리가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김 재 황 약력
1987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시조집 [묵혀 놓은 가을엽서]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나무 천연기념물 탐방] [워낭 소리] [서다] [서다2] [지혜의 숲에서] 외. 동시조집 [넙치와 가자미]. 시조선집 [내 사랑 녹색 세상] 당시와 시조 [마주하고 다가앉기] 시집과 평론집 다수. 세계한민족문학상 대상 수상 및 제36회 최우수예술가상 수상.
[녹색신문 제257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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