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김 재 황
총성이 머문 기슭에 귀울음이 길을 열고
애달파 우러르면 침묵으로 검은 하늘
위령탑 그 앞에 서서 매운 향불 사릅니다.
비 오듯 포탄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도
끝까지 뿌린 피로 지킨 조국 그 한 뼘 땅
전적비 세운 뜻 새겨 충혼 길이 기립니다.
앞길을 가로막아 엎드린 휴전선 넘어
떠가는 기러기 떼 날갯짓이 가벼운데
상승각 울린 종소리가 오직 통일 부릅니다.
(2002년)
(시작 노트)
백마고지 전적지는 철원군 산명리 삼봉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즉, 6.25전쟁 당시에 백마고지를 지키려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90년 5월 3일, 이곳에 높이 22.5m의 대형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여기에는 위령비와 돌무덤, 그리고 전투상황과 전리품 등을 전시한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전망대로 오르면 백마고지와 철원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백마고지 쪽으로 발을 옮기면 통일의 염원을 담은 ‘자유의 종’이 ‘상승각’ 안에 매달려 있다. 정작으로 백마고지는 휴전선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일명 ‘395고지’라고도 부르는데, 철원읍 북서쪽 약 12㎞ 지점이다. 상승각이 있는 전적지 정상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이 야트막한 야산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가 395m에 불과한 이 야산이 백마고지이다. 그러나 그 산 위에서는 그 일대의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래서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백마고지는 ‘철의 삼각지대’의 한 부분을 감시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52년 10월 6일에서 15일까지 국군의 보병 제9사단은 이 백마고지에서 중공군 제38군을 맞아서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뀔 정도로 뺏고 뺏기는 혈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이 전투에 1개 군단의 병력을 투입하여 1개 사단 병력을 잃었다. 아군의 피해도 커서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효성산 언저리의 무명고지였던 이곳은, 그때의 집중적인 포격으로 산 모양이 바뀌었고, 그 변한 모습이 ‘백마’와 같은 형상이 되었다고 하여 ‘백마고지’라는 별칭을 얻었다. 전사자는 중공군 8,234명에 아군 634명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