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조

그때 그 친구/ 김 재 황

시조시인 2024. 1. 26. 06:11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그때 그 친구

 

                                            김 재 황

 

빛 바랜 사진첩에 어린 티로 머문 친구

머리는 박박 깎고 검은 교복 맞춰 입고

그리운 그 모습 그대로 의젓하게 앉아 있다.

 

지금은 손자 두고 주름도 깊었을 친구

공부는 키를 재고 싫은 청소 서로 돕고

아직도 그 이름 석 자 생생하게 외고 있다.

 

그 때를 떠올리면 더욱 보고 싶은 친구

눈빛은 너무 맑고 고운 입술 굳게 닫고

잘생긴 그 얼굴 그대로 따뜻하게 웃고 있다.

 

 

(시작 노트)

 

  전쟁이 끝나고 상경하여, 흑석동의 은로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선린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농학과를 차례대로 마쳤다. 그러니까, 피난 시절의 몇 년 동안을 빼고, 나는 모든 학창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서울에서도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 흑석동에서 신문로로, 신문로에서 불광동으로, 그리고 갈현동과 대조동과 홍은동으로 자주 거처를 옮겼다. 그 때는 누구나 먹고 살기가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좋은 친구들이 많았고, 한강도 맑았다. 여름이면 한강 인도교 밑의 강가에서 수영을 즐겼다. 한강 상류인 팔당은 그 당시에 손꼽는 유원지였다. 잠수하여 강바닥을 손으로 훑으면 조개가 한 웅큼씩 잡히곤 했다. 겨울에도 우리는 한강으로 달려갔다. 두껍게 얼은 빙판 위에서 우리는 썰매도 타고 팽이도 돌렸다. 그 때의 그 그리운 친구들을, 지금은 낡은 사진첩에서나 만날 수 있다.

  나는 서울보다는 시골이 좋았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한 1958년에는, 시골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서울사범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1차 필기시험에는 합격했으나, 2차 실기시험은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심훈의 소설인 상록수를 읽고 감동하여 그러한 삶을 살고자 했다. 대학을 진학할 때, 나는 국문학과농학과를 놓고 고심하다가 농학과로 진로를 결정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그 당시에 고려대학교 교수인 조지훈 시인을 스승으로 삼고 문학의 꿈을 키웠다.

 

'오늘의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불산에서/ 김 재 황  (1) 2024.01.28
신병훈련소에서/ 김 재 황  (2) 2024.01.27
한라산에서/ 김 재 황  (1) 2024.01.25
임진강에서/ 김 재 황  (0) 2024.01.24
추사 고택/ 김 재 황  (0) 2024.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