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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2005. 9. 16. 08:48


 

                                           긴 명상에 잠겨 있는 주목

 

 

 김 재 황


 나는 태백산 천제단 근처에서 천년 세월을 몸에 두르고 긴 명상에 잠겨 있는 한 주목을 만났다. 태고의 신비를 은은히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 숨기고 말없이 모진 세월을 견디어 온, 주목 앞에서 나는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다.

 다가가서 풍상에 깊이 팬 주름살을 쓸어 보면 그 숨결이 손바닥을 통하여 감지되는 듯 정겹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 줄기에서는 금방이라도 간지러운 속삭임이 들려 올 듯 다정함을 느낀다.

 어디, 주목이 사는 곳이 태백산맥뿐이겠는가. 오대산에도 천년 넘은 주목이 속세를 떠나서 조용히 살고 있으며, 강원도 향로봉에도 늙은 주목이 긴 세월의 깊은 상처를 높이 들어올리고 하늘 가까이 다가서 있다.

 ‘주목’(朱木)이라는 이름이, 굵은 가지와 줄기가 붉은 갈색을 띠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보다도 주목의 심재(心材)가 유난히 붉은 빛을 띠고 있기에 그 이름을 얻게 되었다.

 주목은, 주목과에 딸린 늘푸른큰키나무로, 표고 7백 미터로부터 2천5백 미터에 이르는 고산에 자생하며, 수고 17 미터에 직경 1 미터나 되는 거목으로 자란다. 잎은 선형(線形)인데, 나선상(螺旋狀)으로 조밀하게 어긋매껴 나며, 끝이 날카롭다. 앞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푸른빛을 띤 흰빛이며,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옆으로 뻗은 가지를 보면,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받으려고 잎이 수평으로 자리를 바꾸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깃털을 닮았기에 퍽 인상적이다. 게다가 잎이 부드럽고 녹색 또한 짙어서 그 가슴에 지닌 무한한 꿈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꽃은 4월에 핀다. 즉, 갈색의 수꽃은 가지 끝에 있는 잎의 아귀에서 자잘하게 피고, 녹색의 암꽃은 잎의 아귀에서 홀로 핀다. 암꽃과 수꽃 모두가 꽃잎을 가지지 않는다. 수꽃은 10개 정도의 수술을 비늘잎으로 감싸고 있다.

 주목은 자웅이주(雌雄異株)로, 수나무와 암나무가 따로 있다. 겉으로 보아서 가지가 잘 서면 수나무이고 옆으로 퍼지면 암나무이지만, 노목이 되면 그러한 구별이 어렵게 된다. 그렇기에 열매는 당연히 암나무에만 달린다. 9월경이 되어서 가지에 붉은 컵과 흡사한 열매가 달리면 어찌나 아름다운지 살짝 깨물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자세히 보면 가지 끝에 달리는 한 개씩의 배주(胚珠)가 배병(胚柄)이라는 자루에 매달려 있는데, 씨가 점차 익게 되면 배병이 발달해서 씨의 아랫부분을 감싸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가종피(假種皮)라고 부른다.

 어쨌든 이 가종피는 투명한 붉은 빛을 띠고 탄력을 지니고 있기에 아름다운 여인의 입술을 생각하게 한다. 이 열매는 독이 있어서 먹으면 일으킨다고 하지만, 그 맛이 달콤해서 어렸을 적에 따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늘이 닿을 산정 그 정기를 뽑아 들고

 거센 바람 마다 않고 어울려서 사는 심성

 구름을 허리에 둘러 꿈꾸는 듯 천년이여.


 늘 푸른 잎사귀엔 목마르게 정도 깊어

 이슬이 구를 때면 단심으로 타는 입술

 불러도 멀어만 가는 메아리를 안고 산다.


 고요를 앞세우고 서두르지 않는 걸음

 아직도 힘든 고개 지는 해가 걸렸는데

 이 시대 외로운 선비가 헛기침을 뱉는다.

                                     --졸시 ‘주목’


 일명 ‘수송’(水松)이라 부르는 화솔나무는 주목의 변종으로 잎의 폭이 주목보다 넓으며 울릉도에 분포한다. 또 일명 ‘가라목’(伽羅木)이라 부르는 눈주목은, 원줄기가 옆으로 퍼지고 가지에서는 기근(氣根)을 내린다. 눈이 많이 내리는 설악산에 분포하기 때문에 ‘설악눈주목’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주목은 목재의 질이 부드럽기 때문에 조각재와 공예재로 좋으며, 기구재와 건축재로도 사용된다. 또 여기에서 붉은 물감을 얻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가지와 잎은 약재로도 쓰인다. 즉, ‘이뇨’ ‘지갈’ ‘통경’ 등의 효능을 비롯하여 혈당을 낮추는 구실을 하므로, 오줌이 잘 나오지 않는 증세나 신장염 및 ‘부종’ ‘월경불순’ ‘당뇨병’ 등의 치료제가 된다.

 주목은 음수이므로 햇빛이 부족한 장소에서도 잘 자라지만, 양지에서도 산다. 자람이 극히 느리다. 내한성과 맹아력, 그리고 내화성(耐火性)과 내염성 등이 강한 반면에 공해에는 그리 잘 견디지 못한다. 토심이 깊고 습윤하며 비옥한 곳을 좋아한다. 중점토질에서는 생육이 나쁘다.

 주목이 자생하는 곳을 가 보면, 신갈나무와 가문비나무 및 분비나무들과 어울려 살고 있다. 추운 곳이지만 혼생하여 정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에 아름답다.

 주목은 정원수로서 활용가치가 큰 나무이다. 한식이나 양식을 막론하고어디에서나 잘 어울리므로 오히려 향나무보다 쓰임새가 많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추운 지방에서 가꾸기가 적당하며, 정원은 물론이고 공원이나 유원지 및 학교 등의 풍치목으로 독립하여 심도록 한다. 자연적인 수형이 아름답기에 연못가나 암석원의 자연석 옆에 심으면 운치가 있다. 또한, 고속도로의 분리대에 생울타리로도 적합하다. 서양 정원에서는 형상수(形象樹)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큰나무는 이식이 곤란하고, 가을에 이식하면 한풍해(寒風害)의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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