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나무3

시조시인 2005. 9. 19. 11:38


 

                                        부끄러움에 볼 붉히는 무화과나무

 

 

 김 재 황


 서귀포에서 10년이나 살다가 보니까 무화과나무와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자라고 학교를 다닌 서울을 떠나서 서귀포로 이사를 간 지 달포나 되었을까, 나는 바닷가에서 조그만 농장을 가꾸고 있는 강 노인을 알게 되었다. 그분은 10년 전에 자갈밭이던 그 땅을 손수 흙을 퍼 날라서 지금의 기름진 과수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과수원에는 그때 심었다는 무화과나무가 열댓 그루나 있었다. 나무들은 잘 자라서 그 모습이 미끈하였다. 그 때가 8월쯤으로 기억되는데, 강 노인은 서너 개의 익은 열매를 따서 나에게 내밀었다. 고맙게 받아서 반을 쪼개었더니, 붉게 익은 과육이 참으로 먹음직스러웠다. 향기도 짙고 단맛도 높았다. 나는 강 노인에게 이처럼 좋은 과수를 왜 많이 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나무가 약해서 바람에 가지가 잘 찢어지고 열매 또한 무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비바람이 많은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화과나무는 그늘을 많이 만든다. 그러므로 여름에는 그 밑에 앉아 더위를 피하기에 십상이다. 나는 무화과나무의 그늘 밑에 앉아서 먼 바다를 바라보기를 좋아하였다. 거울처럼 맑고 잔잔한 바다는, 평화로운 꿈에 잠겨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무화과나무의 줄기에 몸을 기대었다. 매미 소리가 찬물을 끼얹듯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를 슬픔이 가슴 속으로 밀려들곤 했다.

 바람이 불어와서 나무를 흔들었다. 잎들은 나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고, 나는 무화과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꽃을 품고 있으면서도 결코 밖으로 드러내 보이려고 하지 않는 그 마음이 홍조 띤 수줍음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요즘같이 잘난 체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아름다움을 속으로 소중히 가꾸는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이를 두고 ‘겸양의 미덕’이라고 하는 것 같다. 이는, 냉정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노을빛처럼 고운 사랑을 가슴 가득 담고 있는, ‘규중의 아가씨’와 아주 닮았다.


 적막한 청자 빛에 고향의 문이 열리면

 강물을 실어다가 바다에 흘리는 소리

 날아와 내 가슴 쪼는 부리 넓은 물새여.


 잠옷을 걸쳐 입고 은밀한 꿈을 엿보면

 안으로 켜는 불빛 붉은 놀로 물드는데

 말없이 아픔을 삼켜 믿음처럼 굴린 사랑.


 태초에 받은 알몸 부끄러워 가린 잎새

 저주의 말 한 마디 잎맥 속을 흘러가도

 팔 벌린 하늘 가슴엔 은혜만이 다사롭다.

               ---졸시 ‘무화과나무’


 무화과나무는 뽕나무과에 딸린 갈잎떨기나무이다. 키는 3m 가량으로 자라고, 회록색의 나무껍질은 매끈매끈하여 부드러운 감촉을 준다.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다는, 넓은 잎사귀. 이는, 손바닥 모양으로 생겼으며, 셋이나 다섯 갈래로 찢어져 있다.

 그 이름이 ‘무화과’(無花果)나무이니까, 정말로 꽃이 없는 줄 여기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지만 봄이나 여름에 연붉은 단성화(單性花)가 핀다. 즉, 둥근 달걀 모양의 화낭 속에 수꽃과 암꽃이 있다. 수꽃은 위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암꽃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암수한그루이며, 열매는 은화과(隱花果)라고 부르고, 여름과 가을에 암자색으로 익는다. 가지와 잎을 꺾으면 젖과 같은 빛깔의 수액이 나오는데, 이 수액은 고기를 연하게 만드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지중해 연안과 아라비아, 그리고 유럽 남부 및 팔레스티나가 원산지로 생각된다. 정원에 심어도 좋고, 과수로도 훌륭하다. 그러나 이 무화과나무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음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자기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의 잎을 엮어서 치마를 하였더라.’

 성경이 있는 말이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꾐을 받아서 선악과를 따 먹고 난 다음, 눈이 밝아져서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또 마가복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예루살렘에 이르러 베다니에서 시장하신 예수가 멀리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을 때에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자,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하니 제자들이 모두 들었다. 그 다음 날 아침, 무화과나무가 뿌리부터 말라 있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물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조용히 이르셨다.

 “하나님을 믿으라.”

 성경을 해석하는 학자들은, 무화과나무의 저주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의 상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형식만 화려하고 그 안에 믿음의 열매를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의 종교적 형편을 나타낸 것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무화과나무는 최초의 농경생활과 함께 재배된 과수 중의 하나이다.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벽화 속에도 많이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90년 전부터 재배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우리나라의 재배가능 북한계선은 아산만에서 무주와 문경 및 속초까지가 아닌가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무화과의 재배가능 최저평균기온은 영하 8℃에서 영상 9℃까지라고 한다. 무화과나무가 아열대 과수이므로 여름철의 고온보다 겨울철의 저온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이 나무는 영하 14℃ 이하가 되면 얼어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볏짚으로 감싸 준다든지 기타의 재료로 피복을 해 줌으로써 재배지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안전한 재배지역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남해안 일대와 제주도 지역에 불과하다.

 현재에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화이트 제노아’와 ‘봉래시’이다. ‘화이트 제노아’는 여름과 가을의 겸용으로, 달걀만한 가을 과일에 비해서 여름 과일이 3배 정도 크다. 7월 중순과 9월 전후에 수확한다. ‘봉래시’는 일본 재래종으로 가을 과일 전용이다. 과피는 두껍고 과육은 자갈색인데 향기가 낮다. 과피가 두껍기 때문에 수송하는 데 유리한 반면, 익게 되면 과실의 끝 부분이 떨어져서 과육의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진다. 성숙기는 9월에서 10월이며 11월까지 수확할 수 있다.

 무화과는 당도가 높아서 11도에서 20도까지 이른다. 아주 단맛이 강한 참외의 당도가 11도에서 13도인 것을 생각하면, 무화과의 당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외국에서는 이 열매의 이용이 매우 다양하다. 즉, ‘통조림’ ‘캔디’ ‘시럽’ ‘잼’ ‘무화과 커피’ ‘알코올’ 및 ‘당과’ 등이다.

 또한, 잎은 단백질과 고무질 따위를 함유하고 있는데, 그 유즙으로 회충 등의 구제약이나 신경통의 약재로 사용한다. 특히 소화불량에는 무화과를 하루에 서너 개씩 먹으며, 그 잎을 그늘에서 말린 다음에 마시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십이지장충 구제에는 뿌리를 20g 정도를 달여서 복용하며, 치핵에는 열매를 생체로 먹거나 달인 물로 찜질을 하면 좋다는 민간처방이 있다.

 무화과나무는 분주와 꺾꽂이로 잘 번식된다. 그러나 기지(忌地) 현상이 있기 때문에 한 번 가꾸었던 장소에 다시 심으면 생육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전정을 하여 수형을 잡아 주면 그냥 방임상태로 길렀을 때보다 수확량이 많아진다.

 무화과나무를 수학할 때는 상하지 않도록 따야 하며, 열매가 벌어지기 전에 작업을 끝마쳐야 한다. 미국에서는 1에이커당 건과 2톤을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봉래시’ 10년생 나무 한 그루에서 20㎏에서 30㎏의 수량을 생산한다고 한다.

 무화과나무는, 수줍은 빛깔과 은근한 맛의 열매를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사랑스러운 나무이다. 우리나라에 많이 재배하는 농장이 여러 군데에 생겨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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