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들꽃3

시조시인 2005. 9. 17. 08:15


 

                           아름답게 걷고 있는 산꿩의다리



 

  김 재 황


 

  7월의 문턱을 들어선 어느 날이었습니다. 모처럼 비가 그치자, 햇살에 눈이 부셨습니다. 나는 책상 앞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무작정으로 카메라를 둘러메고 청평행 버스를 탔습니다.

  터미널에서 차를 내리니, 멀리 산 하나가 보였습니다. 그 이름을 ‘화야산’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산을 올라가 보기로 했지요. 산길을 따라 맑은 개울이 졸졸 흘렀습니다. 나는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습니다. 휘파람을 불며 산을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길가의 숲 속에 소담스럽게 피어 있는 산꿩의다리를 만났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그 영혼이 순수하였던지, 나는 그 길옆의 바위에 걸터앉아서 눈으로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산꿩의다리는 꽃도 꽃이려니와, 나는 그 이름에 더 많은 정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십여 년 동안이나 귤밭을 경영한 적이 있습니다. 5월이 저물고 있을 때라고 기억되는데, 나는 밭에서 김매기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바삐 일을 하고 있으려니까, 바로 앞에서 까투리 한 마리가 별안간 날았습니다. 그런데 그 까투리는 멀리 날지 않고 몇 발짝 앞에서 날개가 상한 듯이 푸드득거렸습니다. 내가 다가가니, 까투리는 멀리 도망치지 않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나는 그 때에서야 비로소 그 근처에 꺼병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까투리는 자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의상행동(擬傷行動)을 보인 겁니다. 나는 그 모성애에 콧등이 시큰하였습니다.

  산꿩의다리는 숲 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키는 50cm로 자라고, 뿌리가 굵습니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잎자루가 길며 3출복엽입니다. 작은 잎은 뒷면이 회백색으로,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를 보립니다.

  꽃은 7월부터 8월에 걸쳐서 핍니다. 산방상으로 달리는 흰 꽃이 순수함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산꿩의다리는 꽃잎을 잃었습니다. 너더댓 개의 꽃받침조각마저 일찍 떨어집니다. 다만, 꽃은 많은 수술을 내보입니다. 넓은 윗부분과 실처럼 가는 이래부분의 수술이 긴 타원형의 꽃밥을 지니고 있습니다. 열매는 수과(瘦果)인데, 자루가 있지요.

  산꿩의다리는 왜 꽃잎을 잃었을까요. 그 무슨 업보(業報)란 말인가요. 문득, 꿩의 전설이 떠오릅니다.

  아득한 옛날, 꿩은 하늘의 옥황상제를 모시고 있던 신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옥황상제의 외동딸이 중병에 걸리고 말았답니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동해 용궁의 별주부가 와서 보고, 인간 세상의 토란이 그 병에 아주 효험이 높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옥황상제는, 즉시로 꿩을 불러서 토란을 캐어 가지고 오도록 명령했다.

  꿩이 명령을 받고 인간 세상에 와 보니,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꿩은 자기의 임무를 까맣게 잊고 놀기에 바빴지요. 그러는 사이에 옥황상제의 딸은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꿩은 겁이 나서 소나무 포기 밑에 숨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나면 옥황상제가 벌을 내리는가 하여 ‘캡니다, 캡니다.’하고 운답니다.

  아, 그 꿩의 울음이 떨어진 자리에서 ‘산꿩의다리’는 돋아났는지도 모릅니다. 원줄기 위쪽, 갈라진 가는 가지 위에 피어난 흰 꽃이 서러운 미소를 머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산꿩의다리와 닮은 종류로는, 흰 꽃을 보이는 ‘꿩의다리’, ‘꽃꿩의다리’, ‘묏꿩의다리’, ‘발톱꿩의다리’ 등이 있는가 하면, 흰 꽃이지만 겉에는 홍자색이 도는 ‘은꿩의다리’가 있다. 그리고 연한 자줏빛 꽃을 보이는 ‘금꿩의다리’, ‘연잎꿩의다리’ 등이 있는가 하면, 힌 빛이 도는 자줏빛 꽃을 지닌 ‘자주꿩의다리’도 있습니다. 또 황색이나 황록색 꽃을 피우는 ‘긴잎꿩의다리’, ‘좀꿩의다리’ 등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 ‘꿩의다리’, ‘긴잎꿩의다리’, ‘좀꿩의다리’ 등은 약재로 사용합니다. 생약명으로는 ‘마미연’(馬尾連)이라 부르고, 뿌리줄기와 뿌리를 함께 씁니다. 해열이나 소염 등의 효능이 있어서 '감기' '홍역' '설사' '이질' '장염' '간염' '결막염' '악성종기' 등의 치료에 활용된다고  합니다.

  한여름의 더위를 잊으려면 바다보다는 산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산꿩의다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원한 숲 그늘 밑에서 웃고 있는 ‘산꿩의다리’ 옆에 앉아 있노라면, 이따금 꿩의 구슬픈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요. 그러다 보면 이 아름다운 세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 줄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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