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귀공자의 면모를 지닌 둥굴레
김 재 황
이른 여름에 산을 오르다 보면, 곧게 뻗어 올라간 줄기의 잎겨드랑이에 한 개나 혹은 두 개씩의 꽃송이를 조롱조롱 매달고 있는 ‘둥굴레’를 만날 때가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한가롭고 넉넉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귀공자의 느낌을 받게 한다. 아, 이 꽃이야말로 구상(具常) 시인의 이미지가 아닌가. 불현듯 구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이목구비가 비교적 정돈되고 키도 알맞게 큰 편이어서 소싯적엔 미동(美童) 소리도 더러 들었지요. 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나 내 외양(外樣)은 궁기가 없어요. 호주머니가 텡텡 비어 있어도 친구들은 ‘그 자가 기천금(幾千金)쯤이야 문제없겠지.’ 믿어 주고 막걸리 집에서 나와도 요정에서 취한 줄 알아요. 이렇듯 나의 역정(歷程)이나 내정(內情)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인생이 순풍에 돛단 귀공자나 행운아로 알지요.”
물론, 나도 몇 번은 만나 뵈었지만, 좀 느린 말씨와 풍성한 웃음이 영락없이 ‘둥굴레’처럼 마냥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둥굴레’가 산지의 응달에서 살며 어두운 땅 속으로 길게 뻗어 나가는 뿌리줄기를 갖고 있듯, 구상 시인 역시 어두운 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남 모르게 겪은 갖가지 슬픔 덩이를 지니고 있다.
“아마 내 인상만 가지고는 옥고를 겪었다던가, 북한에서 감옥을 탈출했다던가, 일본 유학도 밀항을 한 험난한 경력의 소유자라면 믿지 않을 것이요, 또 고질적인 폐결핵으로 각혈도 하고 폐 수술도 두 번이나 한 투병자라면 꾸며대는 줄로 알 겝니다.”
그렇다. 구상 시인은 이승만 독재 반대투쟁에 앞장을 서서 ‘민주고발(民主告發)’이란 사회평론집을 내었는데, 이것이 필화를 입어서 마침내 ‘레이다 사건’이란 얼토당토않은 이적(利敵) 혐의를 뒤집어쓰고 투옥을 당한 일이 있다. 나는 ‘둥굴레’의 줄기가 곧게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권력의 불의 앞에서 꼿꼿이 일어서던 구상 시인의 정의로움을 생각한다.
1941년 일본 동경에서 유학을 끝낸 구상 시인은, 함흥의 ‘북선매일’ 신문기자가 되었다가 얼마 후에는 신부인 형이 경영하는 교회 학원을 맡아도 보고, 폐환으로 교회 산장 같은 데 전지 요양도 하는 사이에 8ㆍ15해방을 만났다. 구 시인은 그 북한 치하에서 동인들과 발간한 시집 ‘응향(凝香)’이 필화를 입게 되었다. 이에, 구상 시인은 기어코 남하를 결의하고 고향을 떠났으나 경계선에서 붙들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엄청난 초인적 용력을 내어서 감옥을 탈출하여 서울로 내려왔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정훈국(政訓局)으로 들어가서 장병들을 위한 군기관지 ‘승리일보’를 주재하였다. 그러는 동안, 신부인 형은 공산당에 납치되어 갔고, 홀어머니는 생사 불명이 되었다.
‘둥굴레’의 줄기는 그 이름처럼 둥굴지가 않고, 모서리진 모양이다. 모가 난 줄기의 ‘둥글레’. 그처럼 구상 시인도 처음부터 순탄하지 못한 운명을 타고 난 성싶다.
발치로는 찰삭이는 동해/ 동으론 성황당 고개가 보이는/ 어구 돌아서/ 뒷산 시제(時祭)터 아래/ 상여막이 있는 마을/ 이태백이 달 속 초가삼간에/ 신선이 다 된 노부처가/ 아들 하나를 심산(深山)의 동삼(童蔘)같이 기르고 있었다.
----------- 작품 ‘회상시초’에서
구상 시인은 1919년 9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너를 배었을 때 사슴이 와서 나의 무릎 언저리를 꼬옥 물어주는 태몽(胎夢)을 보아서 너는 그리도 나의 애물이다.’라고 하셨는데 그야말로 나는 어머니 평생의 애물 노릇만 하다 이채로나마 안정해 사는 것도 못 보여 드린 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쉰, 어머니가 마흔 넷에 나를 보셨으니 여러 남매를 다 잃고 형 하나뿐이었던 집안에 희한한 경사가 아닐 수 없었고 이 막내둥이의 출현은 노부모들의 사랑을 쏟을 대로 부어 쏟을 대상일 수밖에 없었지요.”
구상 시인은 네 살 때, 북한 함경도 지구 선교를 맡게 된 독일계 카톨릭 베네딕트 수도원의 교육 사업을 위촉받은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원산지 근교인 덕원(德源)이란 곳으로 가서 자라게 된다. 중학생이 된 그는, 문학에 탐닉하였고, 그것이 주위의 시선을 끌어서 ‘불령선인(不逞鮮人)’의 ‘레테르’가 붙었다. 그는 머지않아 중학교를 퇴학당하고 노동판에 뛰어도 들고, 일본을 밀항하는가 하면 대학 시절부터는 유치장과 헌병대 출입을 하는 등 열띤 청춘의 반역(反逆)과 방랑(放浪)으로 부모님들을 끊임없는 불안과 겉잡을 수 없는 상심에 젖게 만들었다.
“말년에 중풍으로 4년 동안이나 자리 보존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는, 항상 그 자리 밑에 내 대학제복 차림의 사진을 넣어 놓고 꺼내 보시곤 하셨는데, 과묵하신 당신은 돌아가실 무렵에 이 아들을 불러 놓고 하시는 말씀이 ‘너는 사물에 너무 기승(氣勝)을 하지 마라. 아무리 의롭고 바른 일이라도 너무나 기승하면 위해(危害)를 입고 마느니라. 박빙인생(薄氷人生)인 줄 알고 자신이나 자부(自負)를 너무 갖지 말라.’고 타이르신 일이 있으십니다. 또 어머니는 매양 ‘상아, 나는 네가 세상에서 잘났다는 소리를 듣느니보다도 오히려 못났다는 소리를 듣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저 수굿이 세상을 살아 주는 게 나의 소원이다.’라고 애원하셨지요. 물론, 이 말을 들을 때는 노인들의 기우(杞憂)요, 또 소극적인 인생관이라고 귀로 흘려듣고 말았는데 여러 번 자작(自作)으로 또는 불의(不意)의 봉변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험준과 격난(激難)을 치르고 나니, 아버님의 그 간곡하신 분부가 나의 성정(性情)과 전정(前程)을 통찰하신 예언적 훈계였음을 깨달았으며 어머니의 평범하신 기원(祈願)도 나에게 어느 인생의 달견(達見)보다도 실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둥굴레는 은방울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 다소 마디가 있고 살이 쪘으며 옆으로 길게 뻗는 뿌리줄기를 지니고 있다. 흑갈색으로 비대한 이 뿌리줄기는 그 맛이 달콤해서 옛날에는 엿을 고아서 먹거나 녹말을 채취하여 식용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먹을 게 변변하지 못했던 옛 시절에, 구황(救荒)의 식물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산 속에서 도를 닦는 사람이 즐겨 먹었다 하여 ‘선인반(仙人飯)’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한다.
둥굴레는 모가 지고 곧게 선 줄기, 아주 짧은 자루와 두터운 잎몸에 밋밋한 가장자리와 이면이 분처럼 희고 긴 타원형 잎새, 늦봄부터 여름에 걸쳐 잎겨드랑이에서 앙징스런 단지 모양으로 늘어뜨려 피우는 꽃, 그 모두가 한데 어울려 한껏 정감을 일으킨다.
눈길이 나를 향할 때/ 아득한 달을 안는다/ 티없이 맑은 영혼이/ 내 가슴에 안긴다/ 너무나순결한 아름다움을/ 주체할 수 없어서 피어나는 꿈/ 나는 다만 황홀함에 잠겨/ 한 방울 물방울로 구르다가/ 녹아들어 자연으로 귀일(歸一)한다/ 이 목숨도 이슬방울로/ 영롱하게 숲에서 함께 빛난다.
----------- 졸시 ‘둥굴레’
‘둥굴레’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라면, 자루가 없는 긴 타원형의 잎새가 비교적 커서 바람이 불 적마다 마치 날개를 퍼득이는 듯한 모습이 마냥 자유롭기도 하려니와, 밑부분은 연한 회백색에 윗부분은 짙은 녹색을 띠고 둥글둥글 맺혀서 밑으로 드리워져 피는 꽃을 꼽는다. 수술은 6개이고 암술은 1개인 둥굴레의 꽃은, 더없이 다정한 모습이어서, 구상 시인의 훈훈한 우정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구상 시인은 어떤 분들과 교분을 나누었을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화가 이중섭(李仲燮)이다.
“그는 부산 피난 때 밀선(密船)을 타고 한 2주일 처자를 만나러 갔다 온 일이 있는데, 내가 동해도선(東海道線) 차장에 비친 일본의 울창한 산림을 예찬 겸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상(常), 아니야. 일본의 산림은 빽빽이 나무가 서서 첫째 답답하고 인정이 안 가. 우리 산들이 아름다워. 더러 벌거벗어 살들이 들여다보이는 우리 황토산이 따스한 친근감이 들어.’ 하고 무심히 던지는 그 말에 당장에는 나도 예술가의 일종 정취로 여겼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어떤 애국자의 발언보다 중섭의 이 말을 믿게 됐지요.”
또 한 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무영(無影) 선생이시다. 구상 시인과는 6.25전쟁 전까지 별로 개인적인 접촉이 없었지만, 수복하여 신당동에서 집을 이웃하게 됨으로 해서 선생의 만년(晩年)을 가장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우리는 때마다 장충단 뒤쪽 남산을 함께 산책하며 남에게는 공개 못할 남의 험담도 곧잘 신이 나서 했지요. 또 나는 툭하면 댁에 가서 딸들이 수북하여 즐거운 밥상에 참가하기가 일쑤였고, 선생도 무료하던지 특히 심기(心氣)가 불편할 때는 나의 허랑한 성품이 오히려 위로가 되는 지 곧잘 내 집을 찾았으며, 어떤 밤중엔 내외 싸움을 하고 호기 있게 나서서 겨우 당도한 곳도 우리집이었습니다.”
어찌 그분들뿐이겠는가. 줄기에 맺혀 있는 둥굴레의 꽃들처럼 그의 가슴에는 수많은 얼굴들이 동글동글 맺혀서 꽃으로 피어 있으리라. 그러나 함부로 가지를 치지 않는 ‘둥굴레’처럼 구상 시인은 함부로 사람을 사귀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어쩐지, ‘둥굴레’의 줄기가 처지는 모습을 대할 적이면, 구상 시인의 아픔, 그 무게가 나에게 전해져 와서 안쓰럽기 이를 데 없다.
“내가 처음 발병하기는 스물네 살 때였어요. 당시 나는 함흥 ‘북선매일신문’기자로 있었지요. 그 때 폐결핵의 진단이란 사형 선고나 매일반이어서 당사자에게나 가족이나 주위에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병이었습니다. 두 번째 발병은 1948년 월남 후 1년 만이었어요. 이 때야말로 나의 이제까지 생애에 있어서 병과 가난에 제일 몰린 시절이었습니다. 그 후 1966년 일본 교외 기요세 병원에서 제1차 폐수술을 하고, 그리고 3주 만에 다시 갈비뼈 두 대를 자르는 제2차 수술을 받았어요. 그렇게 폐 수술을 두 번이나 하여 호흡 기능이 1700, 보통 사람의 반도 안되는지라, 한 번 천식이 발작했다 하면 그야말로 금세 숨이 꼴딱 넘어가는 것처럼 괴롭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죽음이 공포나 기피의 대상이겠지만 인간의 육신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이 극한에 달하면 오히려 죽음이 간절해진다고, 구상 시인은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병상에서 내다보이는/ 책보만한 가을 하늘이/ 서럽도록 맑다// 오늘은 천식의 발작도 멎고/ 열기도 가시고/ 향유를 바른 시신처럼 편안하다// 나 자신의 갈구도/ 무엇에 대한 미련도 벗어난/ 이 시각// 죽음아, 낙엽처럼 소리없이/ 다가오렴.
----------- 작품 ‘병상에서’
자신의 아픔이 크면 클수록 남의 아픔 또한 크게 느껴진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둥굴레’는 약초로 쓰이기도 한다. 즉, 뿌리줄기를 약재로 사용하는데, 그 이름을 한방에서는 ‘옥죽(玉竹)’, ‘황정(黃精)’, 또는 ‘위유(萎蕤)라고 부른다. 자양, 강장, 지갈(止渴)의 효능과 침이 생겨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허약체질이나 폐결핵, 마른기침, 구강건조증(口腔乾燥症), 당뇨병, 심장쇠약, 협심증, 빈뇨증 등의 치료제가 된다고 한다.
‘둥굴레’의 열매는 조그만 구슬 같고, 검게 익는다. 나는 거기에서 구상 시인의 돈독한 믿음과 만나게 된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종교적 분위기에서 자란 때문인지 문학은 항시 인생의 부차원적인 것이요, 제일의적(第一義的)인 것은 종교, 즉 구도(求道)요, 그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가서 대학에 입학할 때도 명치대학 문예과와 일본대학 종교과, 양쪽을 합격했는데도 종교과를 택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지금까지도 나를 지배해 오는 상념으로 이제는 문학, 특히 시(詩)야말로 사내 대장부가 전심치지(專心致志) 일생을 바쳐야 하고 또 바쳐서 후회 없는 가장 존귀한 소업인 줄 알게 되었고, 또 내 삶 최고의 성실이 시 이외엔 없음을 깨달으면서도 내 가슴 한 구석엔 ‘너 아둔한 친구 요한아, 가령 네가 설날 아침의 황금 햇살 같은 눈부신 시를 써서 온 세상에 빛난다 해도 네 안에 온전한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느냐?’와 같은 힐거(詰拒)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나는 장인적(匠人的) 의미에선 시인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구 시인은 ‘나의 시의 주제가 나의 전인적(全人的)인 생명과 인격 속에서 발생될 것을 바란다.’고 밝히고 있으며, 주위로부터는 ‘그의 시는 직접적으로 종교적 요소를 나타내지 않고 있으나, 그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는 점에서 신앙의 밑받침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아, 안타깝게도 그 임은 이제 이 땅을 떠나고 없다. 2004년 5월 11일 오전 3시 40분, 훌쩍 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러나, 구상 시인은 한 포기의 ‘둥굴레’로 다시 돋아나 우리 가슴에서 서정 어린 꽃을 가득 피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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