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로 다가오는 색감의 詩
김재황(상황문학 문인회 회장)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름다움과 만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그런데 그 즐거움을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 그 느낌을 아름다운 선과 색으로 표현하는 게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세상의 자연 하나만을 보더라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연을 보고 이름답다고 느끼는 그 깊이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클 게 분명하다. 그래서 그 감동이 너무나 커서 도저히 안으로 감출 수 없을 때, 화가는 그 느낌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한다.
왜 그림을 눈으로 보아야만 하는가. 그림은, 화가의 아름다운 느낌을 다른 이에게 전달해 주는 매개체이다. 말하자면, 느낌을 느낌으로 전달한다. 일반적으로 그림은 눈을 통하여 봄으로써 느낌을 얻는다. 그런데 그림의 느낌을 눈과 귀로 동시에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렇다. 정영호 화백의 그림은, 눈으로 보는 그림이라기보다는 귀로 듣는 그림이다. 그의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는 그 느낌을 제대로 얻을 수가 없고, 반드시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물결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가 그린, 거의 모든 그림들이 물결 소리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물이 흐르고 출렁거리며, 또 어느 때는 안개가 수줍은 듯이 가리는가 하면 잔잔한 수면 위에 하늘이 포개지기도 한다. 물의 미학이 이보다 더 아름답게 승화되기 어렵다.
정영호 화백의 그림을 보면 자연이거나 산이거나 심지어는 하늘이거나 그 모두가 물을 머금고 있다. 내면의 그 가득 찬 물이, 느낌으로 파문을 일으킨다. 그게 바로 안 보이는 마음의 실체이기도 하다. 하기는, 이 세상에 추하고 아름다움이 어찌 따로 있겠는가.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자기가 지닌 마음이 그 대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구분이 이루어질 뿐이다.
아마도 정영호 화백은 그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기에 모든 만물을 물소리로 받아들이는 성싶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그림마다 그처럼 물소리가 가득할 리가 없다. 정영호 화백의 그림을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마음도 흥건히 물을 머금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귀가 열려서 물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된다. 결코 크지 않은 화폭에 호수며 강이며, 그리고 저 넓은 바다까지 담아 놓았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귀를 열게 만들고 마침내 물결 소리를 듣게 이끈다.
‘산가야창’(山歌野唱)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서 귀를 기울이면 아름다운 노래가 산에서도 들려오고 들에서도 들려온다.’는 뜻이다. 또 신라 때의 큰스님인 원감대사의 詩 중에 ‘시시청수청무염’(時時聽水聽無厭)이란 구절이 있다. 이는, ‘물소리는 언제 들어도 싫지 않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정영호 화백의 그림은, 마음을 가볍게 하고 마음의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니와, 언제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를 지녔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그러니 더 바랄 게 없다. 참으로, 들려주는 이와 듣는 이가 모두 즐겁다.
모든 전시회가 마찬가지이겠지만, 어렵게 마련된 전시회일 듯싶다. 모처럼의 전시회이니 성황을 이루기를 바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영호 화백의 그림과 만남으로써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물결 소리의 교감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또한, 이 전시회가 정영호 화백 자신에게도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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