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이난호 님의 수필집 '카미노 데 산티아고' 독후감

시조시인 2008. 6. 2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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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읽고


                                                                김 재 황


 장하고 감명 깊다. 그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나이 많다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수필가 이난호 님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다섯 갈래 8천 리’의 길을 걸었다. 그 여정이 기행 수필집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을 받고, 나는 끝장을 넘길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였다. 그만큼 그 과정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에 이난호 님의 모습이 점점 더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의 이 ‘아름답다’는 표현은 그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적인 ‘심상’을 가리킨다.

 여인은 ‘아름다움’을 잃으면 그 생명을 잃는 바와 같다. 수필집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읽다 보면 곳곳에서 이난호 님의 아름다운 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게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되는 게,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먼저, 무슨 기도문 같은 이 책 제목의 뜻을 확실히 밝힐 필요가 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2000년 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곱이 처음 연 길’이란다. 다시 말해서 ‘카미노’는 ‘길’이나 ‘걷다’ 또는 ‘순례자’ 및 ‘순례행위’ 등을 가리킨다는데, 이 순례의 종착지가 바로 ‘산티아고’이다. 이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카미노는 과정이 곧 목적이다. 첫 한 발짝이 이미 충족이다. 카미노는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그 뜻을 정확히 진술할 수는 없는, 그러나 백인백색의 진술들이 결국 하나로 묶여 정답이 되는 오묘한 ‘기호’이다. 카미노는 느낌표와 물음표로 점철된 금이다. 카미노는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앞에서 풀리는 끈을 ‘돈단무심’ 차근차근 사리는, 매듭도 얽힘도 끊어짐도 하등 낭패감 없이 맞고 보내며 자기 안으로 길을 내는 영원한 진행형이다. 그러니까 그냥 걸어라. 몸에 맡기고 마음에 맡기고, 곧은 길 곧게 굽은 길 굽게 걸어라. 걸어라, 걸어라----.

                                                                                                          ---본문 14쪽에서


 이 말의 뜻을 확실히 짚어 낼 수는 없지만, 그냥 몸에 모든 걸 맡기고 걷는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건강을 지키는 데는 ‘걷는 일’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 한 가지로, 혈액순환과 호흡과 장운동을 한꺼번에 높일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걷기를 싫어한다. 그 때문에 나이가 많아지면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60대 후반의 이난호 님은 용감하게 먼 길 ‘걷기’에 나섰다. 그것도 자그마치 총 연장 3천여 km나 되는 약 8천 리의 길이다. 이렇듯 보기에 따라서는 무모하다고 말할 수 있는 행동을 실천에 옮겼으니, 어찌 장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 모습이 나에게는 한 송이 꽃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짐 무게를 덜려고 일부러 물을 마셨다. 아스팔트가 봉긋하니 들떠 있어 살피니 연초록 싹이 올라오고 있다. 탄성을 지르다가 한참 기다려 지나가는 카미노를 잡고 “이것 좀 봐요!”하고 새싹을 가리켰다. 나보다 훨씬 젊은 그 여자는 “식물이군요.” 간단히 말하고 지나친다.

                                                                                                            ---본문 47쪽에서


 아스팔트가 얼마나 두꺼운데, 그걸 들치고 싹이 나오다니! 그 싹을 보고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다 있다니! 그 여자는 비록 몸은 젊었어도 마음은 이미 늙은 사람이다. 그런 무감각한 사람을 누가 아름답다고 하랴. 정말이지, 여린 싹의 그 힘찬 삶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어찌 이난호 님이 그 싹을 보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탄성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누구엔가 보이고 싶었을 게 너무도 당연하다.  젊음은 ‘부드러움’을 나타내고 늙음은 ‘굳어짐’을 가리킨다고, 나는 알고 있다. ‘부드러움’은 곧 ‘느낌이 큼’을 이른다. 그러므로 ‘심미적 감성’이 늙음과 젊음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책을 읽어 가다가 보면, 이와 연관된 또 하나의 글이 얼굴을 내민다.


 라세 알베르게는 최신식 건물이었다. 알베르게 앞에서 배낭을 지지 않은 청년을 만났다. 열쇠를 가지고 나타난 관리인 여인이 청년 앞에서 약간 위축된 표정을 지었다. 알베르게 문이 열리자 청년은 숙박부에 신상기록도 하지 않고 대뜸 층계를 올라갔다. 영어가 깜깜인 여인이 내게 숙박부를 내밀며 작은 글씨를 하나씩 짚어 갔다. 얼핏 생년월일을 짚고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으앙?”하고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냈더니 여인이 숨 막히게 웃었다. 그 여인이 조금 후에 두더지 새끼를 밟아 죽였다. 나는 그의 가슴팍을 때리면서 “죽이지 마, 죽이지 마!” 한국말로 소리쳤다. 여인이 매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문 169쪽에서


 ‘생년월일이 정말 맞는가?’라고 묻는 성싶은 느낌이 들자, 이난호 님은 망설임이 없이 아기의 첫울음 소리를 내 보였다. 이보다 더 유연할 수가 없다. 이렇듯 순수함을 지닌 여인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책을 읽으며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아마도 옆에 누가 있었다면 조금은 맛이 간 사람이라고 여겼을 듯도 하다.

 그리고 여인이 두더지 새끼를 밟아 죽일 때, 이난호 님은 그 여인의 가슴팍을 때리면서 ‘죽이지 마, 죽이지 마!’를 소리쳤다. 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의 경우라면 어찌했을까? 나는 점잖게 “어린 생명을 죽이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을 게 분명하다. 이 ‘점잖다’라는 게 늙음을 나타낸다. 아마도 젊은 여인이라면 ‘저런! 저런!’하며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정도에 그쳤을 게다. 그런데 그 여인의 가슴팍을 치며 ‘죽이지 마, 죽이지 마’를 소리쳤다니, 천진무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숨김이 없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에게 40년 동안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번 카미노에서 어느 날 밤 새 발톱 위에서 슬슬 물러나는 발톱 세 개를 떼어 들고 ‘이것 봐라, 내 발톱 세 개!’ 했다가 ‘징그러운 사람’이 되었고 가시덤불을 뒷짐질로 뚫다가 ‘무서운 여자’가 되었다.

                                                                                                       ---본문 272쪽 중에서


 여기에서 말하는 ‘그’는 이난호 님의 남편이다.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스스럼없어야 한다. 과연, 이런 경우에 남편에게 스스럼없이 ‘이것 봐라, 내 발톱 세 개!’라고 말할 수 있는 아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나는 문득, 이들 부부야말로 소꿉놀이를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순수하고 그만큼 아기자기하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경우, 한꺼번에 발톱이 세 개나 빠졌으니 얼마나 놀라고 또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겠는지 상상이 간다. 게다가 가시덤불을 뒷짐질로 헤치고 나가는 그 모습에서 천진함을 다시 보게 된다. ‘징그러운 사람’이나 ‘무서운 여자’는 그 남편의 말이라고는 하나, 그 안에 무한한 사랑이 담겨 있음을 나는 안다.


 60 막바지에 다시 카미노를 떠난다 했을 때 참 많은 퉁사리를 받았다. 하루라도 욕심 놓고 살면 어디가 덧나는가 조용히 소곤거려 준 이, 대뜸 미쳤다고 직격탄을 날린 이, 치매를 선고하며 짐짓 슬픈 눈길을 하던 이, 저만큼 서서 비슷한 함량의 험구를 가까스로 삼키던 사려 깊은 타인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철들게 하지 못했다. 내 허영은 너무 싱싱했다.

                                                                                                            ---본문 307 중에서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서원’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내 자신과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 서원은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내용일수록 그 가치가 높다. 그리고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해 분투노력하는 ‘몰두’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어찌 그게 욕심이겠는가. 나에게 허용된 단 한 번뿐인 이 삶이다. 몸을 사리고 안일만을 꾀한다면 그 삶은 빛을 발할 수 없다. 누가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느니만큼 내가 내 삶을 값있게 만들어야 한다. ‘철든다,’라는 말은 ‘때가 묻는다.’라는 뜻일 성싶다. 그러므로 나 또한, 철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카미노가 되어 줄곧 이난호 님의 뒤를 살금살금 따랐다. 어느 때는 맞장구를 치고, 다른 때는 혀를 차기도 했다. 또 길을 잃고 헤맬 때는 함께 미아의 기분을 맛보았으며, 그 곳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 앞에서는 눈시울을 함께 붉히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도 마음으로 그 멀고 먼, 총 연장 3천여 km에 약 8000 리를 걸은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이 모두 이와 같은 ‘카미노’의 길이다. 그리고 우리의 집이 모두 ‘알베르게’이다. 때가 되면 열쇠를 대문에 걸어두고 모두 먼 길을 홀로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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