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원제: A RIVER RUNS THROUGH IT)
김 재 황
‘옛날, 내가 어렸을 때, 부친께서 말씀하시길, “노먼, 너는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언젠가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쓰거라. 그래야 우리가 겪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단다.”라고 하셨다.’
상영이 시작되자마자 들려주는 이 설명처럼, 이 영화는 한 아버지와 두 아들이 사랑한 고향 이야기이다. 즉, 청교도 주의를 완벽하게 실천한 어버지 ‘맥클린 목사’와 과묵한 형 ‘노만’, 그리고 거칠면서도 자유분방한 동생 ‘폴’이 고향에서 겪었던 추억담을 들려준다.
‘우리 가족에게는 종교와 낚시의 구분이 없었다. 우리는 인디언들이 술집을 찾아서 나타나던, 몬타나주 미줄라의 송어가 많은 강가인 프론트 스트리트에서 살았다.’
숲이 우거진 계곡, 그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들이 고향을 그처럼 사랑한 이유를 금방 알게 된다. 그리고는 저마다 자신들의 고향을 불현듯 떠올리게 된다. 내 고향은 경기도 파주군 임진면 임진리. 임진강 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잠든 나루를 업고/ 보채는 여울을 끄는 고향 앞에 서면/ 가을을 노래하는
갈대꽃마저도/ 눈시울 적시는 얼굴로 보인다.// 잠에서 눈을 뜰 때마다/
나는 강둑에 누워 있었고/ 동산에 달이 뜰 때마다/ 나는 강물에 꿈을 띄웠다.//
시름이 구르며 깨어지며 달려와서/ 그리움을 쏟아놓는 자리/ 밟아도 밟아도 손을 비비는/ 쑥부쟁이의 이 실향이여.
-------- 졸시 ‘내 고향은’
그들은 그처럼 아름다운 고향에 묻혀 살면서, 그들 나름대로 확고한 종교와 삶의 방식을 익혀 나갔다. 아버지인 ‘맥클린 목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부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곤 했다. 그 영향을 받아서, 갈릴리 최고의 어부들이 제물 낚시꾼이었으며 자주 언급된 요한은 마른 제물 낚시꾼이었음을, 형 ‘노먼’과 동생 ‘폴’은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틈만 생기면, 그들의 ‘빅 블랙풋’강으로 낚시질을 가곤 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메트로놈’(Metronome)에 맞춰서 장로교 방식의 ‘낚시 던지기’를 익혔으며, 그 때마다 ‘맥클린 목사’는 두 아들에게 매번 똑같은 강의를 했다.
“던지기는 예술이야. 4박자로 2시와 10시 방향 사이로 던져야 돼.”
어린 형제는, 오후의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강가로 나가서 자연 속에 담긴 신의 질서를 스스로 배웠다. 분명히 그 곳은 아직 이슬을 머금고 있는 세계이며, 그 어떤 곳보다 경이로움과 가능성에 감동을 받는 곳이었다.
그들은 자라서, 형 ‘노만’은 ‘다트머스 대학’에 합격하여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동생 ‘폴’은 아직도 못 잡아 본 고기를 포기하기 싫어서 고향에 머물며, 그 곳 대학에 다닌다. 그러나 동생 ‘폴’ 역시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신문사 기자가 되어, ‘헬레나’로 나가서 살게 된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형 ‘노먼’보다도 동생 ‘폴’ 쪽이다. ‘폴’의 역은, 맑은 강물만큼이나 신선한 이미지를 지닌 ‘브래드 피트’가 맡았다. 오클라호마 태생인 그는,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몬타나주에서 자랐다. 미조리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후, 베우가 될 결심으로 LA에 진출한 첫날 밤, 엑스트라를 뽑는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응모했다. 몬타나 강가의 맑은 물 속에서 낚시를 즐기는 ‘브래드’의 야망에 찬 눈빛과 깨끗한 용모, 그리고 건강함이 빛나는 연기, 그러한 요소들로 하여 더욱 이 영화는 우리를 감동 속으로 이끈다.
누구나 고향의 산하에게는 핏빛과 같은 끈끈한 정을 지닐 수밖에 없다. 비록 그 산과 강이 이 영화 속의 풍경에 훨씬 못 미칠지라도.
바람은 울먹이며/ 늪 가에서 서성대고/ 머리 푼 갈대꽃이/ 혼이 나가 흔들려도/ 응시의 멍든 역사는/ 침묵 속에 흐른다.
휘돌아 내린 굽이/ 가늘한 목줄이 죄어/ 다만 물길 하나로는/ 풀지 못할 한이기에/ 나루터 빈 배 한 척만/ 가슴 속이 썩는다.
--------- 졸시 ‘고향 임진강’
어느 덧,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형 ‘노먼’이 공부를 모두 마치고 취직이 되기 전의 여가를 집에서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오래간만에 만난 이들 형제는, 유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는, ‘빅 블랙풋’강으로 ‘플라이 낚시’를 하러 떠난다. 그 동안, 동생 ‘폴’은 놀랄 만큼 낚시에 익숙해져 있었다. ‘폴’이 큰 소리로 형 ‘노먼’을 향해 외친다.
“여기서 줄을 던져. 여기가 좋은 자리라니까. 너무 가까워. 줄을 던져야 돼. 조금 더 멀리 던져. 조금 더, 조금 더 멀리 물살 속으로 던져야 돼. 릴을 풀어.”
형 ‘노먼’은 동생 ‘폴’의 낚시질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폴’은 자신의 낚시법을 가리켜서 ‘그림자 던지기’라고 명명했다. 줄을 수면에 길게 드리우는 ‘무지개송어’의 유인법. 확실히 그의 솜씨는 아름다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순진한 고향, 특히 ‘빅 블랙풋’강과의 깊은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에랴.
드디어, 시카코 대학으로부터 ‘노먼’에게 강의를 맡아 달라는 통지가 온다. 온 가족이 기뻐하는 가운데, 형 ‘노먼’은 동생 ‘폴’에게서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어서 ‘노먼’은 경관으로부터, ‘폴’이 ‘롤로’에서 거액 포커판에 끼어 있었음을 우려하는 말을 듣는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그들 형제는 낚시를 하러 간다. 강에 도착하여, 형 ‘노먼’은 ‘딱정벌레’를 미끼로 하여 고기를 많이 잡는 반면에, 동생 ‘폴’은 마음에 근심을 담고 있기 때문인지 전처럼 고기를 잡지 못한다. 쉬는 참에 형이 동생에게 말한다.
“시카코에 함께 가지 않겠니? 2천 마일 떨어진 곳이야. 신문도 수십 종이나 있다구. 넌 바로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네 생각은 어때? 같이 가자.”
“난 몬타나주를 절대 안 떠날 거야.”
동생 ‘폴’은 단호히 한 마디를 던지고는, 형에게서 건네받은 ‘딱정벌레’를 미끼로 해서, 정신을 가다듬고 낚시줄을 물살 위로 날린다. 이윽고, 커다란 송어가 미끼를 물고, ‘폴’은 거센 물결에 휩쓸리면서도 끝내 고기를 낚아 낸다.
“저 고기를 보세요.”
그 순간, ‘노먼’은 완벽을 목격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결론을 내렸다.
“넌 훌륭한 낚시꾼이다.”
“고기하고 똑같이 생각하려면 아직도 3년은 더 있어야 돼요.”
“넌 벌써 위대한 낚시꾼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사진을 찍자.”
‘동생은 빅 블랙풋 강둑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자연법칙을 초월해서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예술 작품처럼…….’
형 ‘노먼’의 동생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러나 우려했던 불행은 현실로 나타나서, 동생 ‘폴’이 권총 손잡이에 머리를 맞고 목숨을 잃는다. 더욱이 그의 시체가 골목에 버려져 있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며, ‘노먼’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그가 훌륭한 낚시꾼이었다는 겁니다. 그건 아버지께서 더 잘 아시잖아요.”
“그 애 솜씨는 아름다웠지.”
그대 유연한 손놀림/ 물살 위로 던진 낚시줄이/ 바람을 가르며 바람 소리로
날아가서/ 한 마리 나비처럼 살포시 물결 위에 앉는다/ 잠시 머무는 고요함/
세상이 일시에 멎는 그 순간/ 다만 영혼만이 맑고도 가볍게/ 줄 끝을 따라가서
희열에 떤다/ 오, 물소리를 타고 만나는 눈과 눈/ 서로 주고받는 리듬이 되어/
세찬 물살 속에서 꽃이 되나니.
--------- 졸시 ‘낚시의 리듬’
노인이 된, 형 ‘노먼’이 고향에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지내온 세월과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해는 못했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이제 나는 훌륭한 낚시꾼이 되기에는 너무 늙었다. 말리는 친구들도 있지만, 아직도 홀로 낚시를 하곤 한다.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 블랙풋 강의 소리,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은 하나로 녹아든다. 그리고 강이 그것을 통해 흐른다. 강은 대홍수로부터 생겨나서 태초의 시간부터 바위 위를 흘러간다. 어떤 바위 위에는 영겁의 빗방울이 머물고, 바윗돌 밑에는 말씀이 있으며, 말씀의 일부는 그들의 것이다. 난 강에 넋을 잃고 있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의 수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의 한복판을 흘러가고 있는 한강 가를 거닐곤 한다. 그러나 그 불결한 냄새와 칙칙한 물빛으로 인하여 좀처럼 서정을 일으킬 수가 없다. 불과 40여 전만 하여도 그 물 속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조개를 잡기도 했는데 말이다. 우리도, 우리의 젖줄이요 마음의 고향인 이 한강을 하루 빨리 맑고 아름답게 되살려야만, 조국의 사랑과 우리들 삶의 의미를 새롭게 새길 수 있을 것임을 이 영화는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