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71) 자중지란이 일어나다

시조시인 2008. 11. 4. 07:16

(71)

   1775년 10월이 되었습니다. 천고마비와 등화가친의 계절이었지요. ‘천고마비’(天高馬肥)는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으로 좋은 계절임‘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을은 겨울을 예고하므로, 불길한 조짐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고’(豫告)는 ‘미리 알림’을 뜻하고, ‘조짐’(兆朕)은 ‘어떤 일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천고마비에는 이런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고대의 중국 북쪽에는 흉노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매우 사나웠기 때문에 약 2천 년 동안이나 중국 민족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진나라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아서 그들의 침략에 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중국 북방의 넓은 초원에서 살았습니다. 주로, 동물들을 놓아서 기르거나 동물들을 사냥하는 게 그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말을 아주 잘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의 초원은, 봄과 여름이면 풀이 우거졌습니다. 그래서 말들은 배불리 마음껏 그 풀을 뜯어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그 말들이 ‘살이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10월쯤 되면 서늘해지기 시작하여 몇 달 동안 추운 겨울이 계속되기 때문에, 그들은 남쪽으로 그 살찐 말을 타고 쳐들어왔답니다. 여기에서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말이 살찌니, 이 때부터 흉노의 득의양양한 때가 됨’을 이르는, ‘추고마비’(秋高馬肥)란 말도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등화가친’(燈火可親)은 ‘서늘한 가을밤은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을 읽기에 좋다.’는 말입니다. ‘등화’는 ‘등잔의 불’을 이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등잔’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요? ‘등잔’(燈盞)의 기원을 확실하게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발굴된 삼국시대의 물건 중에는 여러 모양의 등잔들이 있습니다. 이로써 그 이전부터 등잔이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신라의 전해진 물건으로는 ‘와등’이 있습니다. ‘와등’(瓦燈)은 ‘찰흙으로 만든 등잔’을 말합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옥등’(玉燈)이라고 하는 ‘옥으로 만든 등잔’도 있었답니다. 또한, 조선시대로 와서는 ‘백자 등잔’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극치’(極致)는 ‘극도에 이른 경지’ 또는 ‘그 이상 더할 수 없을 만한, 최고의 경지나 상태’를 말합니다. ‘백자’(白瓷, 白磁)는 잘 알고 있지요?

등잔기름은 ‘참기름’이나 ‘콩기름’이나 ‘아주까리기름’, 그리고 동물성 기름인 ‘어유’ 등을 썼다고 합니다. ‘어유’(魚油)는 ‘물고기를 쪄서 짠 기름’을 가리킵니다. 이 당시에는 등명접시를 사용했습니다. ‘등명접시’(燈明-)는 ‘심지를 놓고 기름을 부어서 불을 켜는 접시’를 말합니다. 나는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이 등명접시를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석유’(石油)는 1876년경에 다른 나라에서 들여왔습니다. 이 때부터 ‘등유’라고 하면 ‘석유’를 말하게 되었고, 심지꽂이가 따로 붙은 ‘사기 등잔’이 많이 수입되어 쓰이게 되었습니다. ‘사기’(沙器)는 ‘사기그릇’을 말합니다. 이는, ‘백토로 빚어서 구워 만든 매끄럽고 단단한 그릇’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전깃불은 언제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느냐고요? 아마, 1890년경이 아닌가 합니다.

너무 말이 장황했습니다. 그 때, 프랑스에서는 다시 프랑스 사람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났습니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은 ‘한패 속에서 일어나는 싸움질’을 이르는 말입니다. 정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부를 쓰러뜨리려고 파리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정권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는 철면피들입니다. ‘야욕’(野慾)은 ‘야심을 채우려는 욕심’을 말합니다. 그리고 ‘철면피’(鐵面皮)는 ‘뻔뻔스럽고 염치를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도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왕광원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재능과 학식을 지녔고 진사 시험에도 합격하였는데,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출세와 관계가 있는 세도가의 집을 자주 드나들며 아부를 일삼았습니다. ‘세도가’(勢道家)는 ‘세도하는 사람’ 또는 ‘세도 있는 집안’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아부’(阿附)는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알랑거리며 붙좇음’을 가리킵니다. 다른 말로는 ‘아첨’(阿諂)이라고 합니다.

그는 권세가가 지은 시(詩)가 있으면 극구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극구’(極口)는 ‘온갖 말을 다함’을 이릅니다. 하루는 어느 세도가가 술에 취해서 매를 들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대를 때린다면 어쩌겠는가?”

왕광원은 기꺼이 맞겠다고 하며 등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술에 취한 세도가는 정말로 그를 마구 때렸습니다. 그 후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어찌 그런 모욕을 자청했느냐?”하며 핀잔을 주었지만, 그는 태연한 얼굴로 “그런 사람에게 잘 보이면 나쁠 게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모욕’(侮辱)은 ‘깔보고 욕보임’을 뜻하고, ‘핀잔’은 ‘맞대놓고 언짢게 꾸짖거나 비웃으며 꾸짖음, 또는 그 말’을 나타내는 순우리말입니다. 참으로 이광원은 말도 못할 철면피였습니다. ‘철면피’를 다른 말로는 ‘면장우피’(面張牛皮)라고 합니다. 이는, ‘얼굴에 소가죽을 발랐다.’는 뜻으로 ‘몹시 뻔뻔스러운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지요.(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