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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이름은 ‘조제핀’(Josephine)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제핀은 나폴레옹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는, 툴롱과 파리 싸움의 공적을 칭찬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웅숭깊은 면이 마음에 들었을 겁니다. ‘웅숭깊다.’는 ‘도량이 넓고 크다.’ 또는 ‘되바라지지 않고 깊숙하다.’입니다. 그리고 ‘겉으로 뚜렷이 나타나지 않다.’ 등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이 말은 본래 ‘우묵하고 깊숙하여 잘 드러나지 않는 장소나 물건’을 가리킬 때에 썼습니다.
글쎄요, 암암리에 조제핀이 추파를 던졌을지도 모르지요. ‘암암리’(暗暗裡)는, ‘남이 모르는 사이’를 말합니다. 그리고 ‘추파’(秋波)는 ‘은근한 정을 나타내는 여자의 아름다운 눈짓’을 이릅니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을철의 잔잔하고 맑은 물결’입니다. 여자의 은근한 눈길을 가을철의 맑은 물결로 나타낸 그 솜씨가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나 요즘은, 딱히 여자가 남자에게 던지는 눈길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고 은근히 아첨을 하거나 접근을 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나폴레옹도 조제핀에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자세히 물었습니다. 아마도 조제핀의 삼박한 면이 마음에 끌리는 눈치였습니다. ‘삼박하다.’는 ‘아주 명쾌하고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모양을 갖춘 사람이나 그런 일’을 나타내는 데에 널리 쓰입니다. 이 말의 본뜻은 ‘어떤 물건이 잘 드는 칼에 가볍게 잘 베어지는 모양’을 가리킵니다.
조제핀은 결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귀족이었지만, 프랑스 왕의 부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공화정부의 ‘로베스피에르’라는 사람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물론, 조제핀도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용서를 받고는 곧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좋은 집과 재산은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되새겨지는군요. 이 말은, ‘여자 팔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뒤웅박’은 ‘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만 도려내고는 속을 파낸 바가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뒤웅박에, 부잣집에서는 쌀을 담아 두는 반면, 가난한 집에서는 마소에게 줄 여물을 담아 둡니다. 그러니, 뒤웅박이 어느 집으로 가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집니다. 여기에서 이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조제핀에게는 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혼자의 몸으로 살아가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동정이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었겠지요. ‘동정’(同情)은 ‘남의 불행이나 슬픔 따위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여 가슴 아파하고 위로함’을 이릅니다. 어떻든 간에, 여인에 관한 한, 나폴레옹은 숙맥이었을 겁니다. ‘숙맥’(菽麥)은 ‘남들이 다 아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순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숙맥’에서, ‘숙’(菽)은 ‘콩’을 가리키고, ‘맥’(麥)은 ‘보리’를 나타냅니다. 이 말은 원래 ‘숙맥불변’의 준말입니다. ‘숙맥불변’(菽麥不辨)이란, ‘콩인지 보리인지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이윽고, 나폴레옹과 조제핀은 청사등롱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청사등롱’(靑沙燈籠)은, 일반인에 있어서 혼례식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청사등롱을 밝힌다.’는 곧 ‘결혼한다.’를 나타내는 뜻입니다. 이 ‘청사등롱’을 ‘청사초롱’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홍사 바탕에 청사로 단을 한 초롱입니다. 청사초롱의 홍색은 ‘양’(陽)을 상징하며 청색은 ‘음’(陰)을 상징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우주만물이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졌다고 믿었습니다. 그 때문에 혼례식에 사용하는 초롱도 이러한 음양을 나타내는 청과 홍의 배색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조화’(造化)는 ‘하늘과 땅의 자연에 대한 이치’를 말하고, ‘배색’(配色)은 ‘두 가지 이상의 색을 섞음, 또는 섞은 그 색’을 말합니다. 공연히 어려운 말을 썼나 봅니다. 한 마디로, ‘장가들다.’라고 하면 될 터인데 말입니다.(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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