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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이틀 만에 떠났다면, 그들은 밀원의 단꿈도 제대로 못 꾸었을 거라고요? ‘밀월’(蜜月)이란, ‘신혼 기간’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는, 허니문(honey moon)을 번역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혼 기간은 ‘꿀 같이 달콤한 밤의 연속’이라는 뜻입니다. 고작 이틀인데, 무슨 정이 들었을까 싶지요? 그건 오산입니다. ‘오산’(誤算)이란, ‘잘못 셈함, 또는 잘못된 셈’을 말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추측이나 예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 추측이 나온 것은, 조제핀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조제핀은 남자를 아주 잘 다루는 여자였다고 합니다. 나이도 나폴레옹보다 많았을 뿐만 아니라, 결혼 경험도 있고 아이가 둘씩이나 딸린 여자입니다. 그러니 여자에 대해서 숙맥인 나폴레옹을 다루기는, ‘누워서 떡 먹기’였을 겁니다. ‘누워서 떡 먹기’는 ‘힘들이지 않고 아주 쉽게 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조제핀이 나폴레옹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냉대하고 변덕스럽게 행동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솜씨는 아무나 흉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조제핀은 아주 대단한 여자였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할수록 나폴레옹의 자존심은 위기감과 패배감에 휩싸였고, 그녀를 정복하여야 하겠다는 군인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게 되었습니다. 정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제핀은 퇴폐적인 분위기의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여인이었다는군요. ‘퇴폐적’(頹廢的)이란, ‘도덕이나 가풍 등이 썩거나 어지러워져서 건전하지 못한’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분위기’(雰圍氣)는 ‘지구를 싸고 있는 공기’라는 뜻으로 ‘어떤 환경이나 어떤 자리 등에서 저절로 만들어져서 감도는 느낌’을 말합니다.
그녀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재혼 상대로 선택한 이유는, 야심에 찬 나폴레옹의 모습에서 영광스런 미래를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간파’(看破)는, 상대편의 속내를 ‘꿰뚫어 보아서 알아차림’을 뜻합니다. 아무튼 조제핀은 애교와 냉대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나폴레옹을 유혹의 함정에 빠지게 함으로써 그의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애간장을 태우다.’는 ‘근심스럽거나 안타까워서 몹시 애태우다.’ 또는 ‘몹시 애가 타게 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애간장(-肝臟)’에서 ‘애’는 ‘창자’라는 뜻의 옛말입니다. 그러므로 ‘애간장’은 ‘간장’, 즉 ‘횡격막 아래에 있는 내장의 기관’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 단 이틀의 기간이면, 나폴레옹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 것은, 오스트리아 군대와 전투를 치르기 위해서입니다. 그 무렵의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의 북쪽에 군대를 보내어서 프랑스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눈만 껌벅거리며 그대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도 이탈리아와 마주 보고 있는 국경으로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국경에 대치한 두 나라 군대들은 때때로 작은 싸움을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지는 쪽은 프랑스였습니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에 이기는 다섯 가지 요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요건이라는 것은, ‘도’와 ‘천’과 ‘지’와 ‘장’과 ‘법’입니다. 첫째로 ‘도’(道)란 ‘장수와 병사가 한 마음’이 되는 겁니다. 모든 병사가 생사를 함께할 수 없다면, 두려움이 생기게 되어 싸움에 지게 됩니다. 둘째로 ‘천’(天)은 ‘천시’(天時)라는 뜻입니다. 시기에 따른 시책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게 없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지’(地)는 ‘지리’(地利)라는 말입니다. 거리가 멀고 가까움이라든지, 지세가 험난하고 평탄하다든지, 또 넓은지 좁은지 등을 잘 알고 그에 따른 대처가 없이는 싸움에 이길 수 없다는 겁니다. 넷째로 ‘장’(將)은 바로 ‘장수’(將帥)를 가리킵니다. 장수로서 갖추어야 될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하면, 그런 장수의 말을 장병들이 따르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싸움에 지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다섯째로 ‘법’(法)은 ‘군제’(軍制)나 ‘관도’(官道) 등의 제도를 말합니다. 이 또한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패배만이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프랑스 군대는 이러한 요건이 충실하지 못했겠지요. 그러니 프랑스 군대가 늘 지고만 있었던 거지요. 그 때문에 프랑스 정부에서는 서둘러서 나폴레옹을 그 곳의 사령관으로 임명하게 되었습니다.(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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