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말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막아선 왕의 군대 앞으로 걸어가서 외투 앞자락을 펼치고 가슴을 내밀며 크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벌써 나를 잊었나? 너희들과 함께 프랑스를 위해서 싸운 이 나폴레옹을 잊어버렸단 말인가? 너희들 중에 나를 죽이고 싶은 자가 있다면 어서 앞으로 나와라! 그리고 나를 총으로 쏘아 죽여라!”
나폴레옹의 용양호시와 같은 모습에 그들은 모두 불감출성하였습니다. ‘용양호시’(龍驤虎視)는 ‘용이 벌떡 뛰어서 날고 호랑이가 노려보는 듯이 기세가 당당함’을 이르는 말이고, ‘불감출성’(不敢出聲)은 위엄에 눌려서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들도, 이윽고 ‘나폴레옹 만세!’를 크게 외쳤습니다. 나 또한, 이 대목에 와서는,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군요. 물론이지요. 그 왕의 군대도 곧 나폴레옹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렇게 하여, 처음에는 수십 명의 작은 무리에 불과했던 나폴레옹 부대는, 차츰 그 인원수가 늘어나서 흔천동지의 큰 부대가 되었습니다. ‘흔천동지’(掀天動地)는 ‘하늘 높이 나부끼고, 땅을 말아 감는다.’는 뜻으로 ‘세력을 크게 떨침’을 이르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는 ‘흔천권지’(掀天捲地)라고도 합니다. 이 때의 상황에서 병사는 다다익선이었습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은, ‘많을수록 더욱 좋음’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도 고사가 있습니다.
한(漢)나라 고조(高祖)를 알지요? 그는, 힘이 천하장사라는 ‘항우’(項羽)를 이기고 천하통일을 이룬 ‘유방’(劉邦)을 말합니다. 그에게도 두려운 존재가 있었지요. 바로 자기 부하 장수인 ‘한신’(韓信)이었습니다.
어느 날, 고조는 한신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과 ‘장수의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고조는 한신에게 물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어느 만큼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한신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폐하는 불과 십만 명 정도의 병졸을 거느리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고조는,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서 한신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몇 명이나 거느릴 수 있겠는가?”
한신은, 고조의 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기에,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습니다. ‘시치미를 떼다.’는 ‘알고도 모른 체하는 것’ 또는 ‘자신이 어떤 일을 벌여 놓고도 그렇게 하지 않은 듯이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시치미를 딱 잡아떼다.’가 줄어서 ‘시치미를 떼다.’ 또는 ‘딱 잡아떼다.’로 되었답니다. 그렇다면, ‘시치미’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옛날,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매사냥이 성행하였다는군요. 얼마나 매사냥이 많았으면, 사냥에 쓰기 위한 매를 기르는 관청까지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매사냥이 늘어나다 보니까, 길들인 사냥매를 도둑맞는 일도 종종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서로 자기의 매에게 특별한 꼬리표를 달아서 표시했는데, 그 꼬리표를 가리켜서 ‘시치미’라고 했답니다. 그렇겠군요. 그 시치미를 떼어 버리면, 누구의 매인지 쉽게 알 수가 없었겠네요. 그러면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신은 군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한신의 이 대답은 ‘다다익선’을 가리킵니다. 그 말을 듣고, 고조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럼, 그대는 어찌하여 나의 장수가 되었는고?”
한신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미리 그 대답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병사의 장(將)은 되시지 못하시지만, 장(將)의 장(將)은 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폐하의 힘은, 하늘로부터 받으신 거라,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고조는 일시에 섟이 삭았습니다. ‘섟이 삭다.’라고 하면, ‘불끈 일어났던 감정이 풀어지다.’ 또는 ‘의심이 풀리다.’라는 뜻입니다. ‘섟’은 ‘순간적으로 불끈 일어나는 격한 감정’을 이르지요. 그래서 조금 전까지의 모든 일을 유야무야로 접어 버리고 말았지요. ‘유야무야’(有耶無耶)는, ‘있는 듯 없는 듯함’ 또는 ‘흐지부지한 모양’을 이릅니다.(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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