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병지방리 '샘골농원' 이야기

시조시인 2011. 10. 2. 22:45

 

병지방리 샘골농원이야기

 

 

김 재 황

 

나도 참 너무 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할아버지가 계시는 곳을 가보지 않았으니. 늘 가슴이 찔려요. 나는 우리 할아버지를 정말 좋아하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병지방리라는 깊은 산골에 사시어요. 그곳 이름은 샘골이라고 한대요. 그 가까운 곳에 깊은 산골들이 많대요. 이를테면 다락골’ ‘산됫골’ ‘주춧골’ ‘서낭골’ ‘쐐기골’ ‘빈터골’ ‘가는골’ ‘곤드레골’ ‘막터골등이 있대요. 강원도 횡성 땅이지요. 그 곳에 사신 지 벌써 5년이나 되셨어요. 할아버지는 5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셨지요. 그 전부터 할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시면 시골로 내려가서 사시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대요.

할아버지는 나라에서 돈을 댄 회사에 다니셨대요. 아주 유능한 지부장님이셨다고 해요. 늘 말씀하셨던 대로, 5년 전에 그 직장에서 나오신 후에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시골로 마땅한 땅을 알아보시러 다니셨대요. 그때 나는 겨우 5살이었어요.

나름대로 할아버지는, 땅을 마련하시는 데 반드시 짚어 보시는 게 있으셨대요. 그래요. 유식한 말로 조건이 있으셨대요. 무엇보다도 먼저, ‘뒤에 산을 지고, 앞에 물이 흐르는 곳을 찾으셨대요.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집과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안 되었기에, 서울에서부터 150킬로미터 이내의 곳으로 테두리를 마련하셨대요. 물론, 깊은 산골이라도 전기를 끌어 올 수 있어야 하고 땅의 모양이 반듯하여야 하며 남쪽이나 동쪽이 터져 있어야 됐지요. 그렇게 여러 곳 중에서 마지막으로 정하신 곳이 바로 병지방리라는 곳이래요.

그 동안, 할아버지는 그 곳에 아담한 집도 지으시고 전망대도 만드셨대요. 그뿐만 아니라, 황토방도 마련하셨대요. 그게 모두 할아버지 친구들 때문이라는군요. 할아버지는 친구들을 무척이나 좋아하시지요. 좋은 게 있으면, 모두 남들에게 나누어 주시지요. 그건, 아무도 말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미 우리보다 먼저, 할아버지의 많은 친구들이 그곳을 다녀가셨대요.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찰옥수수도 가꾸시고 토종닭도 놓아기르고 계신대요. 특히 할아버지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토끼까지 키우신대요. 나는 사랑스러운 토끼생각만 하면 마음이 금세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요. 마냥 신바람이 나지요. 왜냐고요? 이번 여름방학 때에는 할아버지가 사시는 병지방리 샘골농원으로 우리 식구 모두가 놀러 가기로 했거든요. 그래요. 이제야 가는 거예요. 아직 방학이 되려면 한 달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요. 잠들면 꿈도 꾸게 된다니까요.

나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 두었어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루를 지웠지요. 그렇게 며칠이나 남았는지를 손꼽아 가며 기다렸어요. 내가 기다리는 만큼 더디기는 했지만, 마침내 방학이 되고 내일이면 할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떠나게 되었지요. 그날 밤, 나는 많은 생각을 했어요. 할아버지가 사시는 곳을 머리에 그려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나는 그 곳에서 토끼를 안고 있었지요. 털이 눈부시게 흰 토끼였어요. 나는 토끼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갑자기 그 토끼가 내 손가락을 꽉 무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서 아얏!’ 소리를 치며 눈을 번쩍 떴어요. 너무 험하게 잠을 잤는지, 머리맡에 놓아 둔 연필 끝에 그만 손가락을 찔렸던가 봐요. 그리고는 잠들지 못했어요. 꼬박 밤을 하얗게 밝혔지요.

먼동이 트고 날이 환하게 밝았어요.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갈 채비를 서둘렀지요. 가족이라고 해야, 아주 단출해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모두이니까요. 그러나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마음이 바빴어요. 아직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비밀인데, 할아버지에게 드릴 선물을 장만했거든요. 한 푼 두 푼 작은 돈을 모아서 샀지요. 무엇보다도, 그걸 잘 챙겨야 돼요. 이 여름에 할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할 물건이어요.

승용차에 모두 타고 나자, 아버지는 차의 시동을 부르릉하고 거셨어요. 우리가 탄 차는, 복잡한 서울을 빠져 나간 다음,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어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 휘파람이 다 나오던걸요. 그렇게 3시간쯤 달렸는가 봐요. 내가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어느새 깊은 산골에 들어와 있었어요. 그리고 시골길을 덜커덩거리며 한참 달리자, 길모퉁이에 샘골농원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어요.

, 할아버지가 계시는 곳이다!”

나는 크게 고함을 질렀지요. 우리가 그 앞에 닿기가 무섭게 할아버지가 달려 나오셨어요. 할아버지를 따라서 농장 문을 들어서니 다리가 놓여 있었어요. 나무로 만든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쇠로 된 가드레일 주름철판다리였어요. 가드레일 주름철판, 바로 고속도로의 길가에 울타리로 쓰는 물건이래요. 내가 건너가려니까 내 다리가 마구 후들거렸어요. 하지만 1톤짜리 트럭도 거뜬히 건너다닐 수 있는, 아주 튼튼한 다리라고 해요.

다리를 건너니, 높직한 곳에 집이 한 채 지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컨테이너 집이라는군요. 가로 6미터에 세로 3미터짜리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고, 거기에 붙여서 그만한 넓이의 방을 또 만드셨대요. 그러니까 집은 10평이나 된대요. 그 안에 가스레인지를 갖춘 주방도 있고, 수세식 변기가 놓인 화장실도 있었어요. 물론, 겨울에는 가스보일러를 켜고 따뜻하게 지내신대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집 앞에 아주 높직이 깃대를 세우고 태극기를 달아 놓으셨어요. 나는 그 앞에 서서 가슴을 여미고 머리를 숙였답니다.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자마자, 나는 할아버지께 선물을 드렸어요. 무슨 물건인지 궁금하지요? 바로 수영 팬티예요. 할아버지가 저번에 서울 집으로 오셨을 때, ‘벌거벗으시고 냇물에서 물놀이를 즐기신다는 말씀을 내가 들었거든요. 아무리 사람이 안 다니는 곳이라도 그렇지, 어디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요?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당장 필요한 물건은 수영 팬티이겠구나 하고, 내가 마련했어요. 할아버지는 크게 웃으시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셔서 수영 팬티로 갈아입고 나오셨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집 앞의 냇가로 나갔지요.

아버지는 수박 한 통과 참외들을 냇물에 담가 놓으셨어요. 조금 있다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점심을 준비하시러 가셨지요. 나는 바지를 바싹 걷어붙이고 냇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물고기 몇 마리가 놀라서 달아나는 거예요. 나는 크게 외쳤어요.

여기 피라미들이 살고 있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셨어요.

피라미가 아니라, ‘버들치라는 민물고기란다.”

할아버지는 버들치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셨어요. 버들치는 산속의 아주 맑은 물에 산대요. 그리고 별명이 많다고 말씀하셨어요. ‘삐들이’ ‘중태기’ ‘버들챙이’ ‘중타리’ ‘까만피리등이 모두 버들치를 가리키는 이름들이래요. 그뿐만 아니라, 버들치는 먹보래요. 먹성이 아주 굉장하다고 해요. 무엇이든지 잘 먹고, 많이 먹는다는군요. 먹이가 많을 때는 배가 불룩해지도록 먹는다고 해요.

내가 살며시 가서 물속을 들여다보니까, 버들치들이 아직도 나무의 그늘 밑에서 이리 저리 몰려다니고 있었어요. 마치 어린이들이 숨바꼭질하며 놀고 있는 것 같았지요. 그런데 생김새는 수수했어요. 한 마디로, 촌스러운 민물고기예요. 그렇기 때문인지,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신다는군요. 할아버지는 또 말씀하셨어요.

버들치와 아주 비슷한 물고기가 있단다. 그 민물고기는 버들개라고 한단다. 그러나 꼬리와 머리를 보면 구별할 수 있지. 머리가 뾰족하면 버들치이고, 꼬리가 길면 버들개란다.”

정말이지, 나는 버들개라는 이름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민물고기 이름도 있지요. 그래서 아는 체를 했어요.

할아버지, 여기에 쉬리는 없나요?”

그 말에 할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셨어요. ‘네가 어떻게 그 물고기를 아니?’라고 하시는 표정이셨지요. 그러나 잠시 후에 할아버지는, ‘아하!’ 하시고 말씀하셨어요.

네가 쉬리라는 영화를 본 것 같구나. 그 영화 때문에 쉬리가 유명해졌지. 여기에서는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조금 더 내려가면 물이 맑고 자갈이 깔린 곳에서 만날 수가 있단다.”

할아버지는 쉬리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어요. ‘쉬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는데, 등 쪽은 검은 빛이고 머리 쪽은 갈색이래요. 옆줄이 있는 가운데에 넓은 폭의 노란 세로띠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배 쪽은 은백색이래요. 그런가 하면, 머리의 옆면에는 주둥이 끝에서부터 눈을 거치고 아감덮개에 이르는 검정 띠가 있대요. 그런데 놀랍게도 쉬리는 우리나라 특산 민물고기래요. 우리나라 특산 민물고기라면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는 민물고기를 가리키는데, ‘쉬리를 비롯하여 어름치’ ‘배가사리’ ‘동사리’ ‘꺽지---무려 33종이 밝혀져 있대요.

그때 아버지가 부르셨어요.

할아버지 모시고 점심 먹으러 오너라!”

어머니의 멋진 솜씨로 맛있는 점심상이 그득하게 차려졌어요. 우리 식구는 모두 둘러앉아서 음식을 맛있게 먹었지요. 그러나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했어요. 빨리 먹고 이번에는 토끼를 보러 가야 했거든요. 숟가락을 놓자마자, 토끼장으로 뛰어갔어요. 정말로 하얀 털에 빨간 눈을 지닌 토끼가 있었어요. 나는 문득 손가락을 물린 아픔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얼른 할아버지에게로 와서 여쭈었어요.

할아버지, 토끼가 사람을 물기도 하나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지요.

그렇고말고. 너무 귀찮게 하면 물기도 한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토끼를 만지지 않기로 했어요. 아무리 내가 예뻐서 쓰다듬는다고 해도, 토끼는 싫을 테니까요. 그 대신, 토끼가 좋아하는 풀을 많이 뜯어다가 주었어요. 토끼는 씀바귀라는 풀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오물오물 잘도 먹었지요. 한참 토끼에게 풀을 먹이고 있자니까,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부르셨어요.

, 저 숲속으로 들어가서 달걀을 주워 오너라.”

할아버지는 소쿠리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주셨어요. 할아버지는 토종닭을 열댓 마리나 놓아기르시고 계셨어요. 그 녀석들은 잠잘 때가 되어서야, 닭장으로 들어온다는군요. 그러니, 알을 숲속 여기저기에 낳아 놓는다고 해요. 그날 나는 숲속에서 달걀을 다섯 개나 주워 왔어요. 나는 그때까지 닭이 날지 못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닭도 보았지요.

작년의 일이래요. 할아버지는, 달걀을 주워 오시려고 숲으로 가셨다가, 다친 꺼병이 한 마리를 주워 오신 적도 있다고 하셨어요. 꺼병이가 뭐냐고요? 아기꿩을 가리키지요. 그런데 그렇게 주워 온 꺼병이는 집에서 기를 수가 없다고 하는군요. 먹이도 안 먹고 어찌나 밖으로 나가려고 허둥거리는지,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는 약을 발라 준 후에 밖으로 내보내 주셨대요.

조금 있다가,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밭으로 갔어요. 토끼에게 줄 먹이로 무 한 개를 뽑아 보려고 했으나,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었어요. 내가 끙끙거리고 있자니까,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무가 밖으로 나오기 싫은가 보다.”

나는 그만두었어요. 밭에는 고구마와 감자도 잘 자라고 있었지요. 나는 고구마도 좋아했고 감자도 좋아했어요. 고구마는 군고구마가 제일 맛있고, 감자는 찐감자가 제일 좋아요. 나는 그만 입맛을 쩍쩍 다셨어요. 내 모습을 보시고,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감자와 고구마를 너만 좋아하는 게 아니란다.”

나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 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곳으로 산돼지가 내려와서 온 밭을 헤집어 놓은 이야기를 들려 주셨지요. 산돼지는 아주 위험하대요. 성이 나면 머리로 들이받고 물기도 한다고 해요. 그 긴 이빨에 찔리거나 물리면 크게 다치게 된대요. 그래서 산돼지를 만나셨을 때, 할아버지는 멀찍이에서 바라보시기만 하셨다는군요.

그 다음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요. 방안에만 있기가 심심하여 밖으로 나오니까, 댓돌 밑에서 무엇인가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어요. 나는 가까이 가서 보고 소리쳤어요.

여기 커다란 개구리가 있어요!”

할아버지가 나와 보시고는 말씀하셨지요.

그건 개구리가 아니란다. 두꺼비란다.”

자세히 보니, 몸빛이 황갈색 바탕이고 짙은 얼룩무늬가 있어요. 잔등머리가 까칠까칠하게 되어 있어요. 마치 혓바늘이 돋은 것 같기도 해요. 내가 나뭇가지로 등을 두드리니 흰 빛깔의 액체를 뿜어냈어요. 그게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독액이라는군요. 두꺼비는 지렁이를 비롯해서 파리나 모기를 잡아먹는다고 해요. 그 중에서도 두꺼비는 파리를 가장 좋아하는가 봐요. 그렇기에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이라는 속담까지 있지요.

비가 내리니 참으로 할 일이 없었어요. 그 동안 할아버지는 비 오는 날에 얼마나 심심하셨을까요? 그래도 나 같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할아버지는 책 읽기를 좋아하시니 하루 종일 책을 읽으셨을 테지요. 그때, 어머니가 김치 부침개를 만드셨어요. 맛이 기가 막혔지요.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우리가 서울 집으로 떠나는 날이 되었어요. 나는 할아버지만 홀로 계시게 하고 떠나기가 정말 싫었어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걱정은 말거라. 나는 이제부터 농사는 접고, 아름다운 자연을 세상에 알리는 사진작가가 되기로 했단다.”

그 후, 할아버지는 그 곳에 남으셔서 열심히 아름다운 자연을 사진에 담으셨지요.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할아버지의 사진이 어느 사진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받으셨어요. 그로 인해 할아버지는 비로소 사진작가가 되셨답니다. 참으로 멋진 일이지요.

그런데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생기나 봐요. 12월 중순쯤이었어요. 트럭을 운전하시고 할아버지가 교회를 다녀오시는 중이었는데, 어느 승용차가 계곡 아래로 굴렀다는 급한 이야기를 들으셨대요. 할아버지는 그들을 구하려고 급히 차에서 내리시다가 그만 얼음판에 미끄러지셨대요. 그 바람에 넓적다리뼈를 심하게 다치셨어요. 사고 승용차의 승객은 다행히 별로 다치지 않았고, 할아버지가 그 119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가셨지요. 그리고는 긴 시간 동안 수술을 받으셨어요. 그 일로 몇 달 동안을 꼼짝 못하시게 되셨답니다.

나도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쉴 새 없이 할아버지 병실을 찾아오셨어요. 어느 분은 책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고, 또 어느 분은 꽃을 들고 오시기도 하셨어요. , 맛있는 과자를 가시고 오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멋진 지팡이를 가져다가 드리고 가시는 분도 계셨지요. 심지어는 아름다운 노래가 담긴 엠피쓰리를 전하는 분도 계셨다니까요. 얼마 되지 않아서 병실에 따뜻한 마음들이 가득 쌓였어요. 그 동안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오셨는가를 이로써 알 수 있겠지요? ‘나누어 준 만큼 돌아온다.’라는 말도 있다더군요.

나는 병실을 나오면서 기도했어요. 할아버지가 빨리 나으셔서 좋은 사진을 더욱 많이 찍으실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리고 오래오래 내 곁에 커다란 나무로 머물러 주시기를 바란다고요. , 마음으로 땅만큼 하늘만큼 할아버지를 사랑합니다.’라고 외쳤어요. 할아버지도 내 외침을 마음으로 들으셨을 테지요. 가까운 사람끼리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한다고 하니까요.

 

 

김 재 황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으로 등단.

시조집 [내 숨결 네 가슴 스밀 때] [그대가 사는 숲]

[콩제비꽃 그 숨결이] [국립공원기행] [묵혀 놓은 가을엽서]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외 시집 다수. 시조선집 [내 사랑 녹색 세상]

동시조집 [넙치와 가자미] 전국여행시조집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산문집 [숫시인 싯다르타] [씬쿠러, 콩쯔] [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한국녹색시인회 회장 역임. 세계한민족문학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