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동화) 벌떡 일어서는 길

시조시인 2013. 9. 22. 10:41

 

벌떡 일어서는 길

 

김 재 황

 

 

 

 

 

한 아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순호라는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골목길로 접어들자,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한 아저씨가 저쪽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아이는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돌아서려고 하니까, 그 아저씨가 큰 소리로 그 아이를 불렀습니다.

! 옆집 학생!”

아이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비틀거리면서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앞니 하나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더욱 허술해 보였습니다.

아저씨는 젊었을 적부터 술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아니, 술고래였습니다. 들고는 가지 못해도 마시고는 간다는, 그 술고래란 말입니다. 술을 입에 댔다 하면, 말술을 마셨습니다. 한 번은, 술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저씨의 친구들다섯 명이 모여서 술내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많이 마셔대는지 승부가 나지 않으니, 나중에는 막걸리에 소주를 타서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래도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무승부로 하고 모두 자리를 떠났는데, 그 아저씨는 집으로 가려고 자전거를 끌고 막 골목을 돌아 나가다가 그대로 앞으로 푹 꼬꾸라졌습니다. 아저씨는 이내 일어나긴 했지만, 턱이 깨지고 입에서는 피가 나왔습니다. 바로 그때 앞니 한 개가 부러져 버린 겁니다. 아저씨는 입안에서 이 하나를 하고 뱉어내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별일도 다 있군. 길이 벌떡 일어서다니!”

누구든지 술이 너무 취하면, 자신이 앞으로 쓰러지는 게 아니라, 길이 벌떡 일어서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어선 길이 자신의 턱을 치받는 거라고 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철을 타고 가다가 내렸을 때, 어디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때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통 모르고 헤매게 됩니다. 이를 가리켜서 방향 감각을 잃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술을 아주 많이 마셔도 그처럼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며칠 지난 후였습니다. 순호가 학교에 도착하니, 순호네 3학년 2반 교실이 떠나갈 듯이 시끄러웠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니, 아주 조그만 일이 생겨도 시끌벅적합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순호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찬식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여러 아이가 그 앞에 둘러서서 그를 놀리고 있었습니다.

딸기코, 찬식이! 낮술 먹은 찬식이!”

순호는 여러 아이를 지나서 찬식이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어깨를 흔들었지만, 그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찬식아, 얼굴 좀 들어 봐. 어떻게 된 일이야.”

순호가 물었지만, 찬식이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이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담임은 여러 아이를 제자리로 가서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일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힘없이 일어섰습니다. 그러고 보니, 순호네 옆집 아저씨처럼 그 아이의 뺨과 코가 벌게져 있었습니다. 아이들 말대로, 낮술을 마신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의 얼굴을 살핀 후에 여러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을 먹지 않아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이렇게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단다. 그러니 찬식이는 지금 몸이 아픈 거야. 아픈 사람을 놀리면 안 된다. 그리고 찬식이는 빨리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아 보아라.”

그날, 찬식이는 일찍 학교를 나와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마침 그 다음 날이 공휴일이었습니다. 집에서 하루 쉬고, 순호는 일찍 학교로 갔습니다. 찬식이가 다 나았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 아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모든 아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그 아이가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교실을 들어올 때에 보니, 얼굴이 아주 말짱해졌습니다. 그 얼굴을 보고 여러 아이가 손뼉을 쳤습니다.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순호네 식구들이 모여앉아서 윷놀이하였습니다. 그리고 11시가 넘었을 때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순호는 더 놀다가 자려고 하였으나, 어머니의 걱정 때문에 할 수 없이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러니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가 겨우 잠이 들려고 할 때였습니다. 밖에서 큰 소리로 떠들며 술주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나 마나 순호네 옆집 아저씨가 틀림없습니다. 아저씨네 식구들이 나와서 이웃 시끄럽게 한다.’라며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옆집 아저씨는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할 재주가 없었습니다. 순호가 창문으로 내다보니, 옆집 아저씨는 전봇대를 붙들고 중얼중얼 술주정하다가 고래고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순호네 식구들은 모두 잠이 깼습니다. 하얗게 잠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순호 어머니가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술을 없애야 해. 술을 어디로 먹었기에 저리 취했나?”

그러자, 순호 아버지가 한마디 하였습니다.

어디로 먹긴 어디로 먹나, 입으로 먹지. 당신은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은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라는 말을 못 들어 보았소? 술술 잘도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기에 이란 이름이 생겼다지 않소?”

순호 아버지의 이 말에, 순호 어머니가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실없는 소리! 당신은 이제부턴 술 한 방울도 입에 대면 안 돼요!”

순호 아버지는 술을 무서워했습니다. 그 까닭이 있습니다. 아이였을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순호 아버지가 어렸을 때에는 몹시 가난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러했습니다. 6.25전쟁이 막 끝났을 때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쌀은커녕 허기를 달랠 시래기조차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순호 할머니는 순호 아버지에게 술지게미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곤 했습니다. 걸쭉한 술지게미를 먹으면 우선은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술을 걸러낸 찌꺼기라고 해도 조금은 술이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그걸 아이가 끼니로 때웠으니, 어찌 취하지 않았겠습니까. 대번에 얼굴이 붉어지고, 걸음걸이도 비틀거렸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판잣집이 많았습니다. 순호네도 판잣집이나 마찬가지의 허름한 집에서 살았는데, 바로 옆집이 대폿집이었습니다. 밤늦도록 대폿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는 소리에 공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순호 아버지는 술이라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었습니다.

 

순호 아버지가 순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시골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곳에서 알게 된 시골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가 하루는 크게 취해서 집으로 갔고, 자리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한밤중에 잠이 깨었어. 물론, 오줌이 마려웠지. 그래서 더듬거려 보니까, 마침 요강이 손에 닿았어. 그래서 거기에 오줌을 시원하게 누는데, 갑자기 어린 그의 아들이 에그 뜨거워! 뜨거워!’하며 놀라 깨더라는 거야. 요강인 줄 알았던 게, 알고 보니 자기 아들의 머리였다지 뭐니!”

그 이야기를 듣고, 순호도 웃긴 웃었지만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알코올 중독자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알코올 의존증이라고 부릅니다. 순호 아버지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술을 끊거나 줄여서 마셔야 하겠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그때는 이미 알코올 의존증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러니 옆집 아저씨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늘 취해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 후, 어느 날이었습니다. 순호는 아버지와 함께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오느라고 밤늦게야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와 전철이 모두 끊겨서 택시를 타고 골목 앞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골목 입구에 한 사람이 쓰러져서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순호네 옆집 아저씨가 틀림없었습니다. 순호는 한달음에 옆집까지 뛰어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저씨가 골목 모퉁이에 쓰러져 계십니다.”

순호가 말을 마치시자, 그 집 아주머니가 푸념을 입에 물고 나왔습니다.

그 인간! 그 인간! , 내 팔자야!”

그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끌고 오느라고 또 한바탕 집 밖이 시끄러웠습니다. 또다시 온 동네가 잠에서 깨었습니다. 어느 집 개인지 덩달아서 컹컹 짖어대니 귀가 먹먹했습니다. 환한 달밤이어서 더욱 소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한여름이기에 천만다행입니다. 만약에 한겨울이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얼어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사과 한 상자를 들고 순호네 집을 찾아왔습니다. 어제의 일 때문에 고맙다는 인사차 왔습니다.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서 한참 동안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젊어서부터 술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나는 술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가 지끈지끈해진답니다. 젊었을 때에는, 술을 끊게 해보려고 별짓을 다 했답니다. 지금도 생생하네요. 누가 나에게 귀띔을 하지 뭡니까. 술 끊는 약이 있다고. 그래서 귀가 솔깃했어요. 그 사람에게 부탁하여 당장에 약을 구했지요. 그리고는 그날 저녁에 맛있게 쇠고깃국을 끓여서 그 안에 약을 넣고는 애아버지에게 먹였어요. 멋도 모르고 잘도 먹더군요. 그런데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친구가 와서 밖으로 불러냈답니다. 그야 뻔합니다. 술 먹자는 뜻이지요.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무슨 일이나 없어야 할 텐데---. 그런데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요? 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애아버지가 술을 마시다가 쓰러졌다는 겁니다. 나는 지은 죄가 있는지라 하늘이 노래졌어요. 헐레벌떡 달려가니, 이미 친구들이 그 근처 병원으로 옮겨 놓았더군요. 아직 애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누워 있는 침대 앞에서 나는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애아버지가 눈을 떴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후 사정을 모두 이야기했지요.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애아버지가 나를 네가 죽이려고 그랬구나!’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나는 모든 걸 포기하게 되었답니다.”

순호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너무나 안 된 일이라고 말하며 힘을 내도록 그 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왜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으시나요?”

옆집 아주머니는 말도 말라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하기는 왜 안 해요. 그러나 본인이 막무가내인걸요.”

병원에 가서 입원하기는 했는데, 그 아저씨가 집에 가겠다고 하며 스스로 주삿바늘을 뺐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찌나 소란을 피우던지, 진정제 주사를 놓고서야 간신히 침대에 눕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깨고 나서는 엉뚱한 소리를 하더랍니다. 술 때문에 입원했는데 다쳐서 입원했다고 횡설수설하더랍니다. 어찌나 소란스럽게 하던지 침대에 묶어 놓았다고 합니다. 순호 어머니가 다시 물었습니다.

전에는 아저씨가 삼겹살을 잘 구워 드시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통 삼겹살 굽는 냄새가 나지 않으니, 어쩐 일이지요?”

그러자 옆집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제는 안주를 통 먹지 못해요. 메슥거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안주는 못 먹고 소금만 찍어 먹는답니다.”

옆집 아주머니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자, 순호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큰일이군. 안주를 못 먹는 이유는 간이 망가졌기 때문이지. 그래서 메슥거리는 거야. 그거 참, 안 됐군, 안 됐어.”

 

그날 저녁, 순호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혀를 끌끌 찼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순호가 가서 보니까, 텔레비전에서 현장 취재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늦은 밤의 마지막 전철 안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서 부축하는 것처럼 하더니 그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든지 말든지, 술에 취한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돈 훔치기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러나 그건 그래도 돈만 잃습니다. 어둔 밤에 술에 취해서 골목길을 비틀거리며 가는 사람만 골라서 취객 치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때는 커다란 돌덩이나 쇠파이프로 사람을 사정없이 내려칩니다. 그러니 잘못하면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옆에 있던, 순호 아버지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습니다.

술도 마약과 같지. 중독되면 술에 완전히 자기 자신을 빼앗기게 되지. 술 중독, 즉 알코올 의존증의 가장 큰 특징은 술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게 되고 술기운이 떨어지면 불안하고 잠이 안 오며 손의 떨림이 나타나거나 환각증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거야. 쉽게 말해서 술에 취해 있지 않고서는 살아나가기가 어렵게 되는 거지.”

, 순호 아버지는 보건소에 다닙니다. 그러니 술이나 담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남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습니다. 늘 사무실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순호 아버지는 말을 잠깐 끊었다가 다시 이었습니다.

아침 식전에 마신 술이나 낮술은 몸에 영향을 주고, 어두워진 밤에 마신 술은 뇌에 영향이 미친다고 하지. 더욱이 낮술은 짧은 시간에 많이 마시게 됨으로써 더 취하게 한다고 말하지. 술을 끊으면 금단증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낮술을 자주 즐기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술의 금단증상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평소에 술을 자주 마시고 새벽까지 마시는 사람은 술기운이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되고, 그런 사람은 술기운이 떨어지면 마음이 불안정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술을 찾게 된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한밤중에 순호네 옆집 아저씨는 구급차에 실려 갔습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그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병원에 가서 간을 반이나 잘라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간을 많이 잘라내고도 사람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오래 살 수 있기는 어렵겠지요.(셋이서 걷다 제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