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순둥이
김 재 황
순둥이의 어미는 ‘누렁이’라고 부르는 그리 크지 않은 암캐였어요. 그런데 순둥이를 배고 2달이 지나서 막 낳으려고 할 때에 무슨 일인지 피를 흘리며 쓰러졌어요. 그래서 누렁이의 주인이 가축병원으로 누렁이를 얼른 옮겼지만, 누렁이는 가축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가축병원의 수의사 아저씨는 누렁이의 배 안에 들어 있는 새끼들을 살려야 하겠다며 서둘러서 수술을 시작했답니다. 누렁이의 배를 가르고 보니, 놀랍게도 그 안에는 7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들어 있었지요. 이미 2마리는 죽었고, 5마리는 살아서 꼼지락거리고 있었어요. 수의사 아저씨는 그 강아지들을 익숙한 솜씨로 꺼내어서 잘 닦아 주었어요.
“아, 귀여운 강아지들!”
누렁이의 주인을 비롯하여 구경하러 온 꼬마들까지 모두 마음으로 크게 환호성을 올렸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어요. 그 5마리의 강아지들에게 먹이를 빨리 주어야 했는데, 우유를 젖병에 넣고 먹이려고 하니 강아지들이 입을 꼭 다물고 그 젖병의 꼭지를 빨지 않는 거예요. 마치 ‘우유는 먹지 않겠어요.’라고 버티는 것 같았지요. 수의사 아저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혼잣말을 했어요.
“우유를 먹지 않으니 큰일인걸.”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어요. 그러나 여전히 강아지들은 우유를 먹지 않았어요. 그러니 차츰 강아지들의 몸이 여위고 숨쉬기조차 힘겨워했지요. 그대로 두었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거든요. 급했지요. 수의사 아저씨는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고 나서 누렁이 주인에게 말했어요.
“하는 수 없군요. 젖어미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수의사 아저씨는 또 여러 곳에 전화를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강아지를 낳은 지 며칠 안 되는 암캐 한 마리를 찾아냈어요.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그 암캐의 오줌을 받아다가 누렁이의 새끼들 몸에 발라주었지요. 그러면 자기 새끼인 줄 알고 젖을 먹인다는군요.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내고 누렁이 새끼들을 그 암캐 앞에 내놓았어요. 그러니까, 젖의 냄새를 맡고 누렁이 새끼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그 암캐의 젖을 빠는 거예요. 어찌나 무섭게 빨아대던지, 젖을 물린 암캐가 탈이 날까 걱정이었지요. 그래서 누렁이가 낳은 5마리의 강아지들이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답니다.
누렁이 주인은 5마리의 강아지들을 모두 집으로 데려다가 이름을 차례차례 붙여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순해 보이는 녀석을 ‘순둥이’라고 했지요. 수놈이었어요. 이어서 암놈 두 마리는 각각 ‘얌전이’와 ‘이쁜이’라고 지었답니다. 또 수놈 두 마리는 각각 ‘멍멍이’와 ‘검둥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 주인은 5마리의 강아지들을 모두 기를 수는 없었어요. 그렇기에 하는 수 없이 ‘멍멍이’와 ‘검둥이’만 집에서 기르기로 하고, 나머지 3마리는 팔기로 했지요.
며칠이 지났을 때, 차를 가지고 다니며 개를 팔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어요. 주인은 그 사람에게로 가서 물었지요.
“개를 사다가 직접 기르시려는 겁니까?”
“아니요, 장에 내다가 팔지요.”
그 말을 듣고 그 주인은 마음을 놓았습니다. 왜냐고요?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강아지를 몹시 귀여워해 주는 사람들이 가끔 시장에 들러서, 귀여운 강아지를 사 가지고 간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렇게 순둥이와 얌전이와 이쁜이 3마리는, 그 장사꾼에게 팔리어 가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친 후에 시장 터로 나가게 되었답니다. 시장 터로 가니, 참으로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들 걸음을 멈추고 한 마디씩 했어요.
“아, 고것들 참으로 귀엽다.”
사람들 중에는 손을 내밀어서 머리를 쓰다듬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요. 얼마 후에 ‘얌전이’와 ‘이쁜이’는 어느 젊은 아줌마가 와서 사 가지고 갔어요. 그리고 점심때가 지나자, 그 곳에 함께 있던 강아지들이 거의 다 팔리어 갔답니다. 그런데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어도 어쩐 일인지 ‘순둥이’를 사 가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제 막 장사꾼이 짐을 싸려고 할 때였어요. 어디선가 감때사납게 생긴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말했지요.
“날도 어두웠는데, 이 강아지 싸게 파시오.”
장사꾼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어요.
“싸게라니? 얼마면 사겠다는 거요?”
“아까 부른 값의 반값이면 사겠소.”
“그렇게 싸게는 못 팝니다.”
두 사람이 흥정을 한참 벌이고 나서 겨우 ‘순둥이’는 그 할아버지에게 팔리어 가게 되었지요. 보나마나 장사꾼이 헐값에 팔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순둥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시작되었어요. 그 할아버지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무지막지했고요. 인정사정이 없었지요. 다른 사람의 몸에는 모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 할아버지의 몸에는 차디찬 피가 흐르고 있는 듯 했답니다.
그 할아버지는 쓰레기통을 뒤져서 음식을 주어다가 순둥이에게 먹였어요. 거의가 상한 음식이었지요. 냄새가 고약했어요.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몹시 배가 고파도 순둥이는 그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음식을 안 먹는다고 몽둥이로 순둥이를 마구 때렸어요. 그리고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온 날은 목줄을 잔뜩 움켜서 순둥이를 높이 들어 올리고 난 후에 냅다 땅바닥에 내던지곤 했지요. 집에 들어올 때마다 발길로 순둥이를 걷어차는 일은 흔하였어요.
순둥이는 늘 겁먹은 눈으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어요. 할아버지의 발소리가 멀리에서부터 들리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그래서 몸을 부들부들 사시나무 떨 듯 했답니다. 그런 순둥이를 할아버지는 또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차고 벽에다가 내던지고 심지어는 칼을 들고 목에다가 찌르는 시늉까지 하며 술주정을 했답니다. 그래서 순둥이의 깨갱거리는 소리가 언제나 그치지 않았다는군요. 마침내 순둥이는 다리를 다셔서 절뚝거리게 되었지요.
그런 나쁜 일이 어찌 알려지지 않았겠어요? 동네 사람들이 그 일을 모두 알게 되었지요. 동네 사람들은 모여서 의논을 하였어요.
“저 강아지를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동물학대도 범죄입니다.”
“경찰서에라도 연락해야지요.”
“그렇지요. 우선 구조대에 연락하기로 합시다.”
동네 사람들이 119에 연락하고 구조대가 달려왔어요. 그러나 그 할아버지는, 내가 내 개를 기르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지요. 사람들이 모두. ‘어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라며 혀를 찼어요. 텔레비전 방송국의 사람들이 와서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할아버지는 전처럼 순둥이를 마구 때리고 걷어차고 때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순둥이는 벌벌 떨며 울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지요. 그런 장면이 텔레비전을 통하여 방영되자, 시청하는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어요. 그 사람들 중에 한 부부가 순둥이를 사서 기르겠다고 나섰어요. 그 집에는 정원도 넓고 아담한 개집도 마련되어 있었지요.
순둥이는 그렇게 좋은 집으로 와서 살게 되었지만, 마음은 전처럼 어둡기만 했어요. 언제 어느 사람이 자기를 또 괴롭힐지 모르는 일이라고, 순둥이는 생각했거든요. 멀리에서 그 할아버지 닮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싶으면 가슴이 철렁하여 마구 떨었지요. 그리고 그 할아버지를 닮은 사람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성싶었을 거예요. 새 주인이 된 부부는 순둥이의 그 모습이 더욱 안쓰러웠어요. 그래서 맛있는 먹이를 만들어서 내주었어요. 그러나 순둥이는 눈치만 슬슬 볼 뿐, 그 먹이를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했지요.
마음씨 고운 그 부부는 온 마음을 다하여 순둥이를 보살폈어요.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과 의논하여 물리치료를 받는 한편, 순둥이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도록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였지요. 그렇게 정성을 다하자, 순둥이의 마음은 차츰 열리기 시작했어요. 이제 다리도 멀쩡히 나아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가끔 울타리 너머로, 그 집 아저씨와 순둥이가 함께 뛰노는 모습을 그 마을 사람들은 볼 수 있었지요.
그리고 1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 텔레비전 방송국 아저씨들이 순둥이의 변한 모습을 촬영하려고 그 부부의 집을 찾아왔지요. 처음에 순둥이는 잔뜩 겁을 냈어요.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아주 조심하는 눈빛이 틀림없었어요. 그러나 얼마 후에는, 방송국 아저씨가 손을 내밀고 ‘이리 와라’ 부르니까, 달려가서 그 품에 깊이 안기는 거예요. 아, 순둥이의 꽁꽁 얼었던 마음이 이제 모두 풀린 겁니다. 그 동안 순둥이의 고통스러웠던 마음을 생각하면 그저 그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지요. 그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하여 보고 있던 여러 사람들은 또 한 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답니다. 이번에는 좋은 느낌의 눈물이지요. 더러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니까요. 암, 그래야지. 참으로 장하다, 순둥아!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도 착한 사람이 더 많단다. 그러니 앞으로는 더욱 힘차게 살아가거라!(‘셋이서 걷다’ 2011 제6집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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