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차 탐방]
탐방일 : 2012. 11. 25(일) 당일 하루
탐방지역 : 충남 천안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천안 양령리 향나무
김 재 황
비 오면 냇물 소리 더욱 가깝게 흐르고
바람 불면 아기 사랑 오직 멀게 흔들릴까,
보란 듯 도톰한 가슴 자랑스레 내민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정성으로 가는 그길
늘인 세월 다 보태도 결코 길지 않겠구나,
네 이름 부를 때마다 짙은 향기 날린다.
주: 2012년 11월 25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427호
<탐방 제 35호> 천안 양령리 향나무
0 천연기념물 제 427호
0 소재지 : 충남 천안시 성환읍 양령리 394-9
0 지정일 : 2000.12. 8
★ 이 나무의 수령은 800년을 헤아리며 수고 8.5m 근원 둘레 4.2m 흉고 둘레 3.0m로, 향나무로서는 보기 드문 노거수이다. 그러나 안성 천변 민가 담장 옆밭 자락에 바짝 붙어 있고 이 나무에 딸린 부지도 10여 평에 불과하여 협소하고 갑갑한 모습이다.
★ 전설에 따르면 1200년 전 대홍수 때 하천을 따라 떠내려 와서 현 위치에 정착했다고 하니 추정수령 800년과는 400년의 시차가 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자식을 바라는 여인이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는다는 민간신앙이 전해 오고 있을 만큼 영험 있는 신수영목으로 모셔지고 있다. 매월 음력 정월 대보름엔 부락민들이 제사를 지냄으로써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고 한다.
★ 마침 천연기념수 코앞에서 쓰레기를 태우며 짙은 매연을 피워 올리는 중년 사내가 있기에 몇 마디 말을 들어본다.
- 어렸을 적엔 멧새가 이 나무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면 올라가 알을 꺼냈고
- 달도 없는 한밤중엔 나무의 모양이 마치 커다란 괴물 같아 겁을 먹었으며
- 대통령 전○○이가 이 나무를 캐다가 자기 집의 마당에 심으려고 했으나 들어 올릴 헬리콥터가 힘이 부쳐서 그만두었고... 운운한다.
★ 김치 국물을 마시고 나왔는지 벌겋게 물든 입술로 마구 주어 섬기는 늙지도 젊지도 아니한 그 친구의 말을 귀담아 들을 것도 없지만, 나도 대강 아는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에다가 옮기려 한 건 아니겠고 아마 청남대쯤에 옮겨 보려는 시도가 있었던 게 아닌가 여겨진다.(글: 자은 백승돈)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김 재 황
엣 시대로 거슬러서 중국 원나라 이야기
꼭꼭 짚어 물으려고 오늘 바삐 찾았건만
가지들 썽둥 잘린 채, 내 눈 앞에 나서네.
귀 따갑게 들려 왔을 염불이며 목탁 소리
어찌 마음 못 비우고 그리 속을 썩였는지
그대는 두 눈 감은 채, 아무 말이 없구나.
주: 2012년 11월 25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398호
<탐방 제 36호>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0 천연기념물 제 398호
0 소재지 :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641-6
0 지정일 : 1998. 12. 23.
★ 구전되는 전설에 따르면, 이 나무는 고려 충렬왕 (13세기 말) 때 승상 유청신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묘목과 호두 씨앗을 가져왔는데 묘목은 그 시기에도 이미 자리 잡고 있던 고찰 광덕사 경내에 심었고 씨앗은 그의 향리 이곳저곳에 심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호두재배의 기원이 되었다고 하여 이 나무 아래에 <호두나무 시배지(始培地)> 란 석비가 세워져 있다. 오늘날 천안 명물 호두과자의 뿌리 역시 유청신 대감으로부터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 이 나무는 수령이 400여 년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수고 20m 흉고둘레 4.2m의 거목이지만 큰 가지는 대부분 부후(腐朽)해 잘려 나감으로써 마치 강한 전정(剪定)을 해놓은 도로변의 플라타너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남은 가지에서는 새가지가 돋아나와 스세(樹勢)는 아직 노쇠하지 않은 모습이다.(글: 자은 백승돈)
* 천연기념물 추천 나무들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천안 광덕사 입구 느티나무
김 재 황
아무 걱정 없겠구나, 제 할일을 찾았으니
하루 종일 문지기로 떡 버티고 서 있으면
누구도 네 앞을 감히 그냥 가지 못하리.
제 세상을 만났구나, 가지들을 쫙 폈으니
거센 바람 몰릴 때면 마음 먼저 막아서고
한밤에 흰 달 웃어도 절을 굳게 지키리.
주: 2012년 11월 25일 촬영
천안시 보호수 제8-17-342호
<탐방 제 37호> 천안 광덕사 입구 느티나무
0 사찰보호수
0 소재지 :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사 경내
0 지정일 : 1982. 11. 1.
★ 광덕사로 올라가는 초입 일주문 곁에 자리 잡고 서 있는 수령 450년의 느티나무로 수고 20m 흉고 둘레 5.5m의 우람한 거목이다.
★ 뿌리둥치는 힘 있게 땅을 딛고 비대해져서 오랜 연륜과 함께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아직 이 나무의 품격이 사찰 보호수에 머물고 있으나 지방 지정 보호수, 나아가 언젠가는 국가 지정 천연기념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글: 자은 백승돈)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천안 송정리 버드나무
김 재 황
차들이 오가는 소리 곁에 두고 사노라면
짜증나는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울 텐데
어떻게 멋진 모습을 지닐 수가 있었을까?
아마도 고운 앞산이 이따금 일렀을 거야
소리 한 귀에 들리면 다른 귀로 흘리라고
그래서 마음 편하게 어깨춤을 벌일 거야.
주: 2012년 11월 25일 촬영
천안시 보호수 후보
<탐방 제 38호> 천안 송정리 버드나무
0 지방보호수
0 소재지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송정리 531-34
0 지정일 : 2012. 밝혀지지 않음
★ 천안시청 홈페이지에서 검색한 최근의 보호수로 지정되었다는 송정리 버드나무를 찾아가 보았다. 예전엔 마을의 드넓은 농경지 가운데에서 정자목의 역할을 잘 해왔겠지만 지금은 바로 가까운 거리에 고속화 도로가 지나감으로써 그 주변이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나무만큼은 수려하고 단정한 수형을 잘 갖추고 있다. 다만 지방 행정기관에서 보호수로 지정했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표지판도 설치된 것이 없기에 관리당국의 무성의가 마땅치 않게 여겨진다.
★ 마침 부근에서 이장과 주민 한 명을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장은 보호수란 게 별 볼일 없는 시답잖은 것으로 여기는 듯싶고 신 아무개라는 그 주민은 이 나무의 보호수 지정을 위해 토목장비를 빌려다가 나무주변 정지작업도 하고 면사무소를 찾아다니면서 백방으로 애를 썼노라고 하는데 그것이 입 가벼운 공치사가 아니고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 어느 분야에서나 신 씨 같은 그런 적극적인 인사가 있기에 모든 문물에서 개선과 발전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행정당국도 그런 노력에 부흥하여 재야에 산재한 노거수 가운데 보호할 가치가 있는 귀중한 나무를 발굴하고 잘 관리하여 후대에 물려줄 수 있길 바란다.(글: 자은 백승돈)
[탐방별기]
☆ 제 14차 탐방에 나서는 11월 25일은 소설 절기로서 요 며칠 동안 눈발도 날리고 기온도 영하로 떨어졌지만 탐방 당일은 푸근해져서 여행하기에 괜찮은 날씨였다. 우리 3인은 제기동에서 만나서 차에 장착된 내비케이터가 안내하는 대로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2시간30분 만에 천안지역에 당도하였고 오늘 첫 번째 탐방 목표인 성환읍 양령리의 향나무를 찾았다.
☆ 성환도 천안시에 속하지만 다음 탐방지인 광덕면의 광덕사를 찾아가는 길도 근 100여 리에 달하므로 천안시가 예상외로 넓다는 느낌이 든다. 도중 도로변의 한식 뷔페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값에 비해서는 음식이 실속 있고 맛이 있어서 소박한 식도락을 즐겼다. 마침 최근에 서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녹시는 유로화로 계산되는 그 곳 음식 값을 떠올린다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고 토로한다.
☆ 다음 탐방지인 광덕산의 오밀조밀한 계곡, 계류의 물소리가 청아하고 어미의 품속 같은 아늑한 산기슭에 자리 잡은 광덕사를 찾아갔다. 광덕사는 7세기 말에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인데 그 대웅전 앞에 우리가 찾아보는 호두 재배의 기원이 되었다는 광덕사 호두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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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의 내력 |
광덕사 일주문 |
광덕사 현황판 |
☆ 거기서 1km를 산속으로 올라가면 조선 후기 명기(名妓)이며 여류문인인 김부용의 묘소가 있기에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임백호가 황진이 묘를 찾아가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느냐.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라고 읊었듯이 부용의 묘도 이미 고초(枯草)가 된 잡풀이 우거진 자그마한 분묘로써 명성에 비해서는 너무나 초라하다. 다만 정비석이 지은 추모비문이 새겨진 묘비가 세워져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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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
부용묘 |
설명의 글 |
☆ 운초 김부용은 평안북도 성천에서 가난한 선비 집안에 태어나서 조실부모했고 숙부가 거두어 길렀는데 영특하고 용모가 예뻤기에 방년(芳年)의 나이에 진주(眞珠)라는 이름으로 관기(官妓)의 기적(妓籍)에 올랐다. 마침 새로 부임하는 평양감사 김이양을 맞이하는 연회가 대동강에 배를 띄우고 벌어졌는데 미기(美妓) 진주가 옆에서 시중을 들게 되었다. 진주보다 오십 년이나 연상인 노 대감이 진주가 귀여워 어르면서 “그래, 너는 뭐를 잘하는고?”라고 물으니 진주가 시(詩)로서 화답한다.
패상진주 유하능(浿上眞珠 有何能)- 패수<대동강> 위에 노니는 진주가 무엇이 능한고 하니,
능가능무 시역능(能歌能舞 詩亦能)- 노래도 능하고 춤도 능하고 시 역시 능하온데,
능능지중 우일능(能能之中 又一能)- 능하고 능한 가운데 또 하나 능한 것은,
무월삼경 농부능(無月三更 弄夫能)- 달 없는 한밤중에 지아비를 희롱하는 데 능하오이다.
☆ 결국 진주라던 관기는 운초 김부용으로서 노대감의 후실이 되었고 지극정성으로 대감을 모신 덕이겠지만 김이양은 종2품까지 벼슬이 올랐으며 90세까지 장수하다가 졸(卒)하였다. 나이 40에 과수가 된 부용은 그 후 정절을 지킴으로써 ‘초당 마님’이라고 불리었고 오로지 시문에만 정진하여 350여 수의 주옥같은 시작품을 남겼다. 십여 년 후에 부용은 부군을 따라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러나 후실의 신분으로 합장은 불가하여 대감의 묘가 올려다 보이는 먼발치에 묻히게 되었다.
☆ 그녀의 번역시 한 편을 옮겨 둔다.
<부용화>
연꽃 피어 붉은 빛이 연못 가득해
사람들이 나보다 더 예쁘다 하네
아침나절 연못가를 나가 걸으면
사람들은 연꽃 안 보고 나만 본다네.
☆ 송정리 마을의 버드나무를 탐방하고 귀경 길에 올랐다.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들고부터는 차가 엄청 밀려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80여 킬로미터의 거리를 주행하는데 4시간 반이 걸렸다. 지금은 행락철도 아닌데 일요일 저녁에 무슨 용무로 이렇게 차들을 몰고 나왔는지 그것이 궁금하여 별난 추측을 다 해본다. 김장철이 되어 친가나 처가에 가서 김장감을 얻어 싣고 오는가? 그러나 오늘날처럼 택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시대에 시간과 기름 값 들이고 그 짓을 할 것 같진 않고, 또 혹은 입시철이 되어 수험생을 실어 나르는 행렬인가? 수험생이라면 편안한 KTX나 고속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지 길에 갇혀 이런 곤욕을 치르게 하진 않을 것 같고... 이 많은 차들을 상대로 운행 목적이나 운행 구간 등을 전수 조사해 본다면 의미 있는 교통량 통계자료가 나올 듯싶다. 조사원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당당히 “시니어 3인이 천연기념물 탐방을 위해 천안을 다녀오는 길이오!” 말할 것이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비록 밤이 늦었지만 예의 답십리 병촌 순대집에서 역시 성공적으로 마친 제14차 탐방을 자축하는 뒤풀이를 하고 헤어졌다.(글: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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