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형식적인 면에서의 녹색시조

시조시인 2013. 6. 16. 07:18

형식적인 면에서의 녹색시조

 

김 재 황

 

 

(1)머리말

 

나는 시조를 공부한 지가 30년이 넘는다. 그게 모두 시조에 대한 열정 하나로 버텨왔다고 스스로 확신한다. 시조는 분명 우리의 얼이며 우리의 정신이다. 그런데 녹색시조란 과연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우선 녹색이라는 말의 정의를 내리는 게 순서일 듯싶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녹색이라면 식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식물 중에서도 나무를 내세울 수 있다. 그렇다. 나무야 말로 녹색그 자체다.

나무에 있어서 의미적인 면은 여기에서 접어두고, 그저 눈에 보이는 상태로서의 형식적인 면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저 나무를 보라! 나무보다 성실한 존재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나뭇잎을 떨어뜨릴 때가 되면 아낌없이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꽃이 필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시기가 되면 틀림없이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성실이 바로 녹색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터이다. 또 하나. 나무처럼 균형미를 간직한 게 또 있을까? 그 균형미를 잃는 순간, 나무는 태풍 한 번에 그만 쓰러져 버리고 만다. 나무가 일단 큰 바람에 쓰러지고 나면 만사가 끝이다. 그러니 그 균형미자체를 또 하나의 녹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녹색시조라면 나무와 같이 성실하고 균형미를 간직한 시조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2)균형미

 

나는 아름답다라는 말을 생각한다. ‘아름답다라는 게 과연 무슨 뜻인가? 맹자가 말한 착한 일을 힘써 하여 그 덕성이 속에 가득 차면 아름답다라고 한다."라는 그 의미적인 아름다움은 여기에서 접어 두고, 단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균형미에 있다.

아무리 하나하나가 아름답다고 하여도 그 전체가 균형미를 잃으면 아름다움은 존재할 수가 없다. 예컨대 아무리 어떤 사람이 지닌 귀가 아름답다고 하여도 그 크기가 지나치게 크면 볼썽사납다. 어찌 귀뿐이겠는가. 코도 그렇고 입도 그렇고 눈도 그렇다.

게다가 문학에 있어서 더욱이 정형시시조의 경우에 균형미를 잃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시조에 있어서 균형미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우선 시조에는 초장중장종장이 있다. 이를 나무에 비유한다면 초장가지와 잎이요, ‘중장줄기, ‘종장은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이를 우리 몸으로 보아서 설명하자면, ‘초장은 우리의 머리를 이르는 바와 같고, ‘중장은 우리의 몸통을 이르는 바와 같으며, ‘종장은 우리의 엉덩이다리 및 발을 이르는 바와 같다. 이를 세분해 들어가면, ‘초장‘4음보는 순서대로 각각 ’ ‘’ ‘’ ‘등을 이르는 바와 같고, ‘중장‘4음보는 순서대로 각각 ’ ‘’ ‘가슴’ ‘등을 이르는 바와 같으며, ‘종장‘4음보는 순서대로 각각 엉덩이’ ‘정강이’ ‘다리’ ‘등을 이르는 바와 같다.

다시 말해서 시조에 있어서도 우리의 처럼 얼굴은 얼굴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그리고 하체는 하체대로 균형미를 간직하여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우리는 시조의 표준형을 알고 있다. 이는 이른바 황금비율이다. 시조의 황금비율, 우리가 알고 있듯이 ‘3612음보 45자 내외이다. 특히 이렇게 균형미를 갖춘 녹색시조를, 나는 미인형 시조라고 말한다.

 

 

(3)미인형 시조의 예

 

깊은 절 고승인가 세속 다 비워 놓고

저 높은 하늘보다 더 높이 살고 싶어

댓잎이 반야심경을 시퍼렇게 외고 있다.

-김옥중의 청대’(시조미학 2012 하반기호)

 

위의 작품에서 초장은, ‘은 크기가 아주 이상적이다. 그리고 코는 보통이고 입도 보통이다. 초장에서는 코가 아주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중장에서는 이 보통이고 도 보통이지만 가슴까지 보통이며 도 보통이다. 여자의 작품이라고 보았을 때, ‘가슴이 조금만 더 컸으면하는 바람이 있다. 종장에 가서는 엉덩이’ ‘정강이’ ‘다리’  등이 모두 보통인데 ’은 아주 조금 긴 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서 미인형 시조이다.

 

구름은 비를 몰고 바람으로 실려 오고

사방은 죽은 듯이 어둠 속에 내려앉고

산과 들 적시고 있는 빗줄기가 사납다.

-김 준의 소낙비’(시조사랑 창간호)

 

이 작품은 초장에서 은 보통이지만 가 오뚝하고 은 알맞다. 그리고 중장에서는 이 보통이지만 가슴이 떡 벌어진 모습이고 배는 적당하다. , 종장에서는 엉덩이정강이다리이 모두 알맞다. 남자의 작품이기에 멋진 근육질의 잘 빠진 남성의 몸매를 보는 듯싶다. 시경에서 말하는 여절여차 여탁여마’(如切如磋 如琢如磨)를 생각하게 한다. 아마도 이를 가리켜서 보디빌더의 몸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눈이 눈을 감싸주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조용히 흉허물을 덮어주는 밤이었다

세상은 디딜 틈 없는 꽃밭으로 변했다.

-최언진의 설야’(녹색문학 제2)

 

앞의 작품 초장에서는 가 좀 크고 도 좀 높지만 은 보통이다. 한눈에 그게 보기 싫지 않고 오히려 귀티가 난다. 그리고 중장에서 가슴이 좀 클 뿐, ‘’ ‘’ ‘가 적당하니 여자의 작품으로서는 안성맞춤이랄 수도 있다. 단지 몸에 비해서 아주 조금 머리가 큰 편이지만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다. 만약에 처음 감싸는 눈과 눈이라고 했더라면 절세미인형이 될 뻔했다. 종장에서는 엉덩이정강이다리이 모두 표준형이다. 실제로 이 정도의 미모를 갖춘 여인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4)맺음말

 

시조는 노래에서 시작되었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노래이니 가락에 잘 맞아야 한다. 그게 내재율이다. 이게 잘 맞으려면 음보가 제대로 갖추어지고 그 길이도 삼장이 너무 들쭉날쭉하지 않아야 한다. 리듬이 있어야 한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도 있듯이, 보기에 좋은 시조가 노래 부르기도 좋다. 아무래도 균형을 지니고 있으면 이 모든 게 해결된다. 미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미인형 시조를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아무튼 시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게 되려면 눈에 확 띄는 미인형 시조가 많이 나타나야 한다. 시조의 초장 중장 종장이 무엇보다도 고르게 배열되어 있어야 우선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게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어수선하여 선뜻 다가서기가 어렵다.

이런 이유로 사설시조는 내 관심 밖이다. 내 생각에 초장이나 중장이나 종장이 길게 늘어난 상태는 선뜻한 느낌마저 든다. 이런 시조를 만나면 두려움마저 든다. 생각해 보라! 초장에서 이 아주 크거나 이 아주 큰 사람을 만났을 때 어찌 좋은 느낌이 들겠는가. 그리고 중장에서 이 아주 길거나 가 아주 불록한 사람을 만났을 때를 연상해 보라! 이런 기형은 좋지 않은 느낌을 전한다. 강조하건대, 모든 게 정상적이어야 정이 간다. 그게 균형미이고, 그런 시조가 이른바 녹색시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