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안면도, 그 소소리 높은 느낌표들

시조시인 2011. 8. 22. 23:45

 

안면도, 그 소소리 높은 느낌표들

 

김 재 황

 

(1)

시는 무엇이 생명일까? 그야 더 말할 것도 없이, ‘감동이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감동을 얻을 수 없는 시는 외면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또한 시인 자신이 어떠한 감동을 얻고 나서 썼을 터이다. 그리고 감동, 무엇인가 커다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면 강하게 일어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시인이라면 누구나 넘쳐흐르는 감동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런데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발견하는가? 우리의 모든 감각이 여기에 관여되겠지만, 가장 쉽사리 얻게 되는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것이겠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얻게 되는 아름다움은 자연을 대할 때일 듯싶다. 그렇다. 자연만큼 아름다운 게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는 모두가 탄성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로 볼 때, 박만진 시인의 안면도 연작시’ 6편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작품들이다. 아니, 자연스럽게 창작된 작품들이다. 마치 신이 들린 듯이 술술 씌어졌을 성싶다. 그렇듯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의 강한 충동이 이 작품들에게서 엿보인다. 그 감동을 박만진 시인은 소소리 높은 느낌표들이라고 표현했다. ‘소소리, 부사로 높이 우뚝 솟은 모양을 가리킨다. , ‘느낌표, 바로 마음의 출렁거림을 나타낸다. 얼마나 안면도가 아름답기에 이런 감탄사를 멋지게 썼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안면도의 서쪽 해안은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그러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은 1978년에 지정되었다. 안면도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과 고남면이 속한 섬이다. 그러나 원래는 섬이 아니라, 태안군 남면과 연결되어 있던 이었다. 그런데 1638년인 인조 16, 전라도와 충청도의 세미(稅米)를 한양으로 빠르게 운반하고 아울러 왜구의 약탈을 피하기 위하여 영의정 김유(金瑬)가 충청관찰사 김육(金堉)에게 명함으로써 안면읍 창기리와 태안군 남면의 신온리를 끊는 바람에 섬이 되었다고 전한다.

안면도의 동쪽 해안은 천수만이다. 북쪽에 솟은 해발 107미터의 국사봉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이 100미터 이하의 낮은 구릉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춥고 더운 차이가 심하며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한다. 어업보다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고, 쌀이나 보리 및 콩이나 고구마나 마늘 등이 주로 생산된다고 알려져 있다. 안면도의 넓이는 87.96 제곱킬로미터이며, 해안선 길이는 120킬로미터 정도이다.

 

(2)

그러면 이제부터 박만진 시인의 안면도 연작시’ 6편을 차례차례 만나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작품의 부제(副題)소나무이다.

길을 따라 안면읍으로 내려가다가 보면 울창한 소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 만나는 소나무들은 해송이 아니라 조선소나무들이다. 우리나라 순수한 혈통을 지닌, 붉은 기둥의 조선소나무들! 안면도의 이 소나무는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주요 자원으로 관리되었다고 한다. , 왕실의 목재를 공급하는 황장봉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사람들의 남벌을 막기 위하여 주민들을 섬 밖으로 쫓아낼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기의 소나무로 임진왜란 때에는 거북선 등의 주요 함선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산림청이 희귀자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정한 유전자 보전지역이 있다. 모두 3500여 헥타르의 송림 중 유전자 보존림으로 지정된 지역은 150 헥타르이다. 직경 28센티미터에 평균 60년 이상의 조선소나무 16만여 그루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소나무 우량종을 육성하기 위한 송림 채종원도 있다. 면적은 195 헥타르인데,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소나무들이 잘 관리되고 있다. 안면도의 채종원은 우리나라 최대의 소나무 우수개체 선발장이라고 한다. 그러면 박만진 시인의 작품을 본다.

 

대를 이을 기둥 같은

아들이 없는 내겐

사위로 삼고 싶은 기둥감 너무 많아

백년손 사윗감 하나

딱 부러지게 점찍지 못하겠네.

-작품 안면도 1-소나무중에서

 

얼마나 여기의 소나무들이 든든하게 여겨졌으면, 그 귀하디귀한 딸을 맡길 사윗감으로 형상화를 하였겠는가. 나라 궁궐의 기둥감으로 사용되었다는 소나무들이니, 사람으로 치면 동량지재’(棟梁之材)가 아닐 수 없다. 아들을 지닌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사윗감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터이다. 그런데 박만진 시인은 대를 이을 기둥 같은 아들이 없는 내겐이라고 노래했다. 참으로 놀랍다. 이 시구가 들어감으로써 사위로 삼을 기둥감이 더욱 빛을 발한다. 이게 바로 시를 읽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기둥감 너무 많아 사윗감 하나 점찍지 못하겠다.’라는 시구이다. 이는, 셀 수 없이 많은 소나무들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소나무를 탐낼 만하다.’라는 뜻이다.

둘째 번 작품은 부제가 병술안이다. ‘병술안’(兵戌岸)은 본래 병수안’(兵戍岸)이었는데, 사람들이 자와 자를 혼동하여 병술안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도 그 말이 옳을 성싶다. ‘’() 자는 또는 깎다등의 뜻을 지니는 반면에 ’() 자는 지키다’ ‘변방을 지키는 일’ ‘수비하는 군사’ ‘군사가 주둔하고 있는 군영등을 나타낸다. 지금도 병술안이라는 동네가 있다는데, 예전에 병사들이 그 곳에 주둔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원 이름이 병수안이었을 듯싶다. 그 풀이는 군사가 주둔했던 해안이다. 어쨌든 병술안이라는 바닷가가 있고 그 앞이 병술만이다. 이 일대는 요즘 어촌체험마을로 각광을 받고 있단다. 사극 선덕여왕김수로의 촬영장소이어서 더욱 그렇다고 한다. 해안에는 병술만해수욕장이 펼치어져 있고 잘 발달된 습지도 있다. 그리고 갯벌에서는 조개잡이를 할 수 있으며, 잘생긴 갯바위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박만진 시인의 시선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무릎 아래에 아른거리던 봄이 어느새 내 잔등이에 크고 따뜻한 날인을 해주는데요 얼씬거리는 풍경에 쪼르르 내려다보니, 병술안이 바로 서해가 숨겨놓은 고려청자 호리병이네요 왕벚나무 전지를 하며 밀물과 썰물을 한 차례씩 지켜보았는데요 서해가 비우고 채우는 술이라는 생각이 출렁거리네요

-작품 안면도2-병술안중에서

 

때는 봄이다. 일을 하고 있는 잔등에 따뜻한 햇살이 업힌다. 그 따뜻함을 박만진 시인은 날인이라고 했다. 가슴에 와 닿는, 아주 멋진 표현이다. 더욱 뚜렷하게 봄이 찍힌다. 춘곤증이 몰려들고 나른해진 터에, 나뭇가지를 다듬는 일을 했으니 땀도 어지간히 흘렸을 것 같다. 그러니 어찌 출출하지 않았겠으며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하지 않았겠는가. 일하던 손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로 병술안이라, 그 만()이 모두 시인의 눈에는 술 담긴 호리병으로 보였을 게 뻔하다. ‘병술호리병술을 연상하게도 만든다. 여기에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만진 시인은 결코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냥 호리병이 아니라 고려청자호리병이란다. 그러니 그 안에 담긴 술도 보통 술은 아닐 듯싶다. 그 이야기를 서해가 숨겨놓은이라고 했다. 귀한 술일수록 함부로 내보일 수 없는 법. 그에 걸맞은 귀한 손님에게 대접해야 하니까. ‘서해가 숨겨놓은 고려청자 호리병술’, 이 시구 하나로 이 작품은 높은 격조를 얻었다. 그런데 왕벚나무 전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도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알다시피 왕벚나무의 꽃은 일본의 국화이다. 그런 나무를 전지한다니? 문득 나는, 예전에 안면도에는 왜구들의 침범이 잦았음을 상기한다.

세 번째 작품은 부제가 연육교로 되어 있다. 안면도 연육교(連陸橋)라고 하면 안면교(安眠橋)가 눈앞에 떠오른다. 안면교는 1966년에 착공하여 1970년에 준공되었다. 총 길이는 208.5미터이고, 총 너비는 7.5미터이며, 유효 너비는 6.0미터이다. 태안반도와 안면도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건설되었다. 태안반도 북단부터 태안읍을 거쳐서 안면도의 남단까지 이어지는 603번 지방도 위에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다시 박만진 시인의 작품을 본다.

 

백사장, 삼봉, 기지포, 안면, 두여, 밧개, 방포, 꽃지, 샛별, 운여, 장삼, 장돌, 바람아래, 어느 해수욕장을 찾든 절대로 실망할 일이 없으리라 원산도, 효자도, 추자도, 나치도, 장고도, 삽시도, 고대도, 호도, 녹도, 외도, 내파수도, 외파수도, 아름다운 섬 한 점 한 점을 마치 강 건너 마을이듯 건너다볼 수 있으리라

-작품 안면도3-연육교중에서

 

연육교로 인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안면도를 찾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여러 해수욕장과 여러 섬들이 더욱 가깝게 다가올 수 있었을 터이다. 정말이지, 안면도는 이 해수욕장, 아니 해안들과 섬들로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니 그 이름 하나하나를 어찌 노래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백사장해안은 안면도를 찾게 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요, 삼봉해안은 고운 모래와 완만한 경사를 자랑하는 곳이요, 기지포해안은 안쪽에 형성된 마을 형태가 베틀처럼 생긴 연못 같다고 하여 틀못이라고 하였으며 마을 앞바다를 기지포라고 부르는 곳이요, 안면해안은 주변에 갯바위 낚시를 즐길 만한 장소가 충분한 곳이요, 두여해안은 지리적으로 형상이 좋고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서 도인들이 도를 닦던 곳이요, 밧개해안은 주위에 모래언덕이 궁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요, 방포해안은 천연기념물 제138호로 지정된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이요, 꽃지해안은 간만의 차가 심하나 완만한 경사를 지닌 곳이요, 샛별해안은 샛별과 같은 몽돌들이 깔려 있는 곳이요, 운여해안은 입구에서부터 모래가 주변을 뒤덮은 곳이요, 장삼해안은 여인네의 장삼처럼 백사장이 길게 이어져 있는 곳이요, 장돌해안은 항아리처럼 해변이 움푹 들어가 있는 곳이다. 모두 제 몫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박만진 시인은 절대로 실망할 일이 없다.’라고 노래했다.

그런가 하면, 안면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섬들은 어떠한가. 원산도는 고려시대에 고만도라고 불렀던 섬이요, 효자도는 본래 이름이 소자미(小慈味)였던 섬이요, 추자도는 우리말로는 배섬이라고 하는 섬이요, 나치도는 꽃지해안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섬이요, 장고도는 하루에 두 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섬이요, 삽시도는 지형이 마치 화살이 꽂힌 활과 같다는 섬이요, 고대도는 예로부터 오랜 집터가 많은 섬이요, 호도는 지형이 여우처럼 생긴 섬이요, 녹도는 고개를 동쪽으로 돌리고 드러누워 있는 사슴처럼 생긴 섬이요, 외도는 인적이 드물고 일반인의 출입이 쉽지 않은 섬이요, 내파수도는 전국유일의 자갈로 만들어진 방파제가 있는 섬이요, 외파수도는 탐석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섬이다. 그렇기에 박만진 시인은, 이런 섬들을 연육교 덕분에 강 건너 마을이듯 건너다볼 수 있다.’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실망할 일이 없으리라건너다볼 수 있으리라가 멋진 대비를 이룬다. 이렇듯 숨기어져 있는 묘미를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독자들의 몫이다.

네 번째의 작품은 부제가 민박집 바보성이라고 되어 있다. 안면도가 손꼽히는 여행지로 부상한 현실에서 좋은 민박집이 어디 한두 군데뿐일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사람마다 특별한 인연을 맺은 곳이 따로 있을 터이다. 박만진 시인의 작품을 본다.

 

방 하나를 잡았네

바다가 보이는 성,

바보성이라!

맘씨 좋은 주인장의 설명에

그럴 듯하다 피식 웃었네

-작품 안면도4-민박집 바보성중에서

 

어쨌든 이 민박집은 이름으로 일단은 홍보에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박만진 시인의 수긍을 받아냈으니까. ‘그럴 듯하다 피식 웃었네.’가 그 뜻을 명백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 맞장구가 결국에는 감동의 쓰나미(津波, tsunami)를 일으켜서 시 한 편을 창작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그렇고말고, 이름은 사람뿐만 아니라 민박집에도 중요하기 이를 데 없다. 문득 다음과 같은 노자의 글 한 줄이 생각난다.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이름이 없음은 하늘과 땅의 처음이요, 이름이 있음은 모든 것의 어머니이다.’라는 말이다. 아마도 이보다 이름에 대하여 중요함을 내세운 글은 없을 성싶다. 그러니 그 이름으로 하여 그 민박집은 그 뜻한 바를 이룰 수도 있겠다고 여겨진다.

다섯 번째 작품은 부제가 파도의 혀이다. 어렸을 때에 나는 서귀포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전쟁 통에 피난을 그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먹을 것도 없는 판에 장난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바닷가로 나가 놀았다. ‘파도의 혀가 달려와서 발을 핥아 주는 쾌감이 그런 대로 좋았다. 박만진 시인의 작품을 본다.

 

저 오라지게도 시퍼런 년,

>

정말 미친년은 아니냐고

>

뭇 사내들을 어지간히 밝힐 것 같다고

>

곱씹으며 끌끌 혀를 차다

-작품 안면도5-파도의 혀중에서

 

어른이 된 후에야 나에게 혀는 매우 에로틱(erotic)한 존재로 부상했다. 사실이지, 어릴 때에 파도에게서 맛보았던 그 간질임이 성감을 높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 박만진 시인의 이 시구는 그 정곡을 찌른 셈이다. 그래서 박만진 시인은 저 오라지게도 시퍼런 년이라고 일갈한다. 남자들은 누구나 여자를 밝힌다고 하지만, 여자가 시퍼렇게 벌거벗고 달려들면 모든 남자는 기겁하여 도망치게 마련이다. 파도가 커다란 혀를 내밀고 달려드는 게 바로 그런 모습이다. 그러니 이 작품에서 시퍼런 년이란 표현은, ‘일발필중’(一發必中)의 적중어가 아닐 수 없다. 또 여기에서의 미친년은 그냥 미친년이 아니라 색에 미친년이다. 왜냐고? 그 다음 시구가 바로 답이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의 작품은 부제가 바람아래해수욕장이다. 장삼해수욕장 및 장돌해수욕장과 더불어서 바람아래해수욕장은 3형제라고 부른단다. 그처럼 다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셋 중에서 바람아래해수욕장이 가장 큰형이다. 큰형답게 바람아래라는 이름표를 달고 바람과 파도를 맞아 싸우며 동생들을 지키고 있다. 그렇기에, 들어가는 초입부터 심상치가 않다. ‘안면송이 울창하다. 한끝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갯벌이 펼치어져 있고, 다른 한쪽은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백사장이 이어진다. 아주 먼 옛적에 이곳에 살던 용이 하늘로 오르면서 용틀임한 것이 오늘의 멋진 지형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먼 바다에 장고도, 고대도, 삽시도, 원산도 등이 손에 닿을 듯이 떠 있다. 서쪽 끝에는 어른 10여 명이 너끈하게 들어앉을 수 있을 정도의 너른 비위굴이 뚫려 있다. 박만진 시인의 작품을 본다.

 

지나가던 길손이 그 이름에 매료되어 잠깐 들렀다가 한 시진 쉬어가기로 작정하고 오랜만에 바다 풍경을 느긋하게 지켜보네 삽시도, 원산도, 장고도, 고대도----. 동서의 횡렬에 따라 발음도 띄엄띄엄 섬 이름을 밝혀 읽네 그야 물론 물에 빠져 있으니 섬이지 뭍에 놓여 있으면 산이었겠네 황소고집을 앞세우고 그제 어제 파도를 갈아엎으며 쟁기질하였을 바닷바람이 오늘은 쉬지 않고 쓰레질을 하네

-작품 안면도6-바람아래해수욕장에서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도 바람아래해수욕장은 멋진 이름을 지녔다. 절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바람아래모든 게 바람아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이곳의 주인은 바람이다. 그리고 그 바람바닷바람이다. 이 바닷바람이 어제와 그제는 성이 나서 식식거렸다. 그에 따라 파도가 철썩거리며 부서졌다. 그 모양을 형상화하여 박만진 시인은 파도를 갈아엎으며 쟁기질한다.’라고 노래했다. 참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오늘은 쓰레질한다.’라고 노래했다. ‘쟁기질쓰레질이 멋진 대비를 이룬다. 쟁기질이 성난 상태라면 쓰레질은 차분한 상태를 나타낸다. 이로써 바람에게 바다는 우리에게 밭이나 마당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가만히 생각하면 바람는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바가 있다. 평상시에는 그토록 순하다가도 성이 나면 무섭게 들이받는 게 그렇다. 가을바람 앞에 서면 공연히 슬퍼지고 소의 큰 눈을 들여다보면 왠지 슬픔이 밀물져 온다. , 소는 수레를 끌고 밭을 갈며 우리를 위해 일하고, 바람은 배를 밀고 풍차를 돌리며 우리를 위해 일한다.

 

(3)

애드가 앨런 포우(Edgar Allan Poe), ‘시는 아름다움의 운율적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안면도는 아름다운 곳이다. 지금 당장 모든 일을 접어 두고 12일의 짧은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스스로 그러한아름다움이 모든 이의 마음을 잡아 이끈다. 그 울창한 소나무 숲이 그렇고, 출렁거리는 병술안이 그렇고, 여러 해안들과 섬들이 그렇고, 맘씨 좋은 민박집 주인들이 그렇고, 나그네를 안고 쓰러지는 파도 또한 그렇다.

 

이따금 안면도에 가면

새롭지 않은 데도 새로운 것이

소소리 높은 느낌표들

울울창창한 때문이리

아아, 저절로 감탄사에

매번 입을 다물지 못하겠네

-작품 안면도1-소나무중에서

 

어찌 이런 안면도 예찬이 박만진 시인뿐이겠는가. 안면도에 발을 딛고 선 사람이라면, 더욱이 심미적 감성을 지닌 시인이라면 누구나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참으로 안면도에는 새롭지 않은 데도 새로운 것이 많다. 그것들이 무엇일까? 박만진 시인은 그 핵심을 울울창창한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바로 안면도의 소나무를 가리킨다.

원래 소나무솔나무라고 불렀단다. ‘이란, ‘솔솔 부는 봄바람에서 왔다고 해도 되겠다. 어쩌면 때나 먼지를 쓸거나 닦을 때에 사용하는 을 연상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떤 이는, ‘위에 있는 높고 으뜸의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나무라는 말이 붙었단다. 그런가 하면, 아주 먼 옛날에 수리나무 중에서 우두머리라는 뜻이었단다. 수리로 되었고 이 다시 로 변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조선소나무는 이름이 많다. ‘육송’ ‘강송’ ‘춘양목등으로 부른다. 주로 내륙지방에서 자란다고 하여 육송’(陸松)이고,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강송’(剛松)이며, ‘강송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 춘양목’(春陽木)이다. , 강원도 깊은 산골의 쭉쭉 뻗은 붉은 껍질의 소나무강송, 결이 곱고 단단하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갈라지지 않고 잘 썩지도 않는다.

끝으로, 여러 독자들께서 6편의 안면도 연작시를 통하여 박만진 시인과 함께 떠난 안면도 여행이 뜻 깊고 즐거웠기를 바란다.(스토리문학 2011 여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