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나리와 허영자 시인
김 재 황
잎자루는 없고, 실 모양을 이루는 잎새여. 무더위를 딛고, 줄기 끝에 분홍색으로 일어서는 꽃이여. 사람이 그 모습보다 높은 품격으로 하여 존경을 받듯, 너는 그 모습보다 고운 향기로 하여 사랑을 받고 있구나. 수줍음을 보이는 우리의 영원한 연인, 너 꿈나라에 사는 솔나리여.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산을 오르다가, 다소곳이 피어 있는 솔나리를 만나게 되면, 그 아름다움에 더위도 모두 잊고 정신을 빼앗기게 된다. 그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가냘프면서도 당당한 잎새와 슬픈 듯하면서도 향기로운 꽃을 지닌 솔나리. 나는 그 모습에서 불현듯 허영자(許英子)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문인들 십여 명이 봉고차를 이용하여 경기도 안성에 있는 조병화 선생님의 ‘편운재(片雲齎)’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등단을 한 지가 얼마 안 되어서 선배나 동료 시인들의 얼굴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는 도중이었다. 한옆에 말없이 앉아 있던 한 여류 시인이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조금 당황해 하면서 내 이름을 밝혔는데, 나중에야 그가 허영자 시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약한 듯한 몸매를 지녔으면서도 당당한 눈빛이었고, 어쩐지 슬픈 듯하면서도 향기로운 음성을 지닌 허영자 시인. 허영자 시인이야말로 우리 삶의 더위를 잊게 하는, 이 시대 이 도시의 한 포기 솔나리가 아닐 수 없다. 보아라, 여름 바람이 불 때, 가볍게 흔들리는 솔나리의 모습을.
당신의 손짓 하나로/ 이 몸은/ 천지에 가득 웃음 풍기는/ 꽃일 수 있습니다만
// 당신의 눈짓 하나로/ 이 봄은/ 형체없이 스러지는/ 한 오리 김일 수도
있습니다// 해와 달을 저어리 밀어 두고/ 이 몸은 항상/ 낭랑히 낭랑히 울림하고
지우니// 바람아/ 푸른 잎새로 걸어 둔/ 이 마음 흔들어/ 풍경소리 나게
합소서 당신은.
-------- 작품 ‘바람’ 전문
솔나리는 백합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나리와 그 모습이 닮았다. 달걀처럼 생긴 비늘줄기가 있고, 줄기는 곧게 서서 키가 70cm 가량 자란다. 잎은 어긋맞게 나지만, 잎자루가 없고 실 모양으로 길이가 15cm 정도다. 그게 연약한 느낌을 주며 섬세하고 부드러워서 여성적이다.
허영자 시인은, 1938년 8월 13일, 경남 함양(咸陽)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나는 어머니의 딸이 아니라, 할머니의 딸이었어요. 동생이 연년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는 동생 차지였고 나는 할머니께서 맡아 기르셨지요. 그래서 나는 어머니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매사에 할머니 영향을 받았어요. 이러한 관계는 후에 동생을 잃어버린 뒤에도 그냥 계속되었어요.”
어머니는 대단히 엄한 분이어서 어린 딸을 다정스레 안아 주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한다. 학교 다닐 때에도 친구들을 보면 어머니 치마폭에 매달려 갖은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 한편은 부럽고 한편으론 이상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예쁘고 고운 천을 밤새도록 마름질하고 꿰매어 옷을 지어 입히고는 앞태도 뒷태도 돌려세워 살피며 한없이 기뻐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어느 핸가 경련과 헛소리로 고열을 앓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을 때에 자신이 업혀 있었던 어머니의 따듯했던 등을, 허영자 시인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어린 그를 몹시 아끼고 사랑해서 이름을 부른 일조차 없이 ‘우리집 귀한 딸’, ‘우리 딸애기’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는 공부하느라 집을 비웠고, 중년에는 사랑하는 여인이 생겨서 어머니와 별거를 하는 바람에 많은 세월을 아버지 없이 지내야만 했다.
초등학교 시절, 무남독녀였던 그는 남보다 일찍 감성의 눈을 뜨고 여선생님을 사모하게 된다.
“선생님은 오른쪽 눈썹 속에 갈색 점이 있었는데, 이 점이 꼭 나의 오른쪽 눈썹 속의 점하고 같았어요. 이것이 너무나 신통하다시면서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지요. 그 때마다 나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였어요.”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는 말이 적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소녀였으나, 담임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하여 그 선생님이 지도하고 계신 연극반에 기꺼이 들어가서 나중에는 연극반 반장이 될 정도로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분은 우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무엇이나 알고 싶어하는 우리들에게 미지의 찬란한 세계를 열어서 보여 주는 마술의 여신이었습니다. 코스모스처럼 가냘프고 청초한 모습에서 때로는 범접하지 못할 싸늘한 기상을 느끼기도 하였으나 실로 그분만큼 따뜻하신 분은 없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바로 우리반 담임을 하셨을 때, 나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김동리의 많은 단편들, 그리고 미당의 많은 시를 그분은 우리에게 읽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연극 관계의 공부를 유치진 선생님으로부터 사사 받았다고 합니다.”
여고생이 되어서, 그는 할머니를 닮은 교장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다. 그 때는 그의 할머니가 작고하신 후여서 더욱 그의 마음이 간절하였던 듯하다. 그분의 어여쁜 모습, 낭랑한 음성, 지혜로운 판단, 빛나는 슬기 등에서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외경과 그리움을 담아 애절한 마음을 그분께로 향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그의 집 가세가 기울어서 가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전쟁을 겪으며 더욱 생활이 어려워진 터에 지원하였던 대학에서 낙방까지 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가뜩이 내성적이었던 그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으나, 다행히 그 다음해에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그는 대학에서 선생님 한 분을 만나 외로운 혼을 온전히 그분께 의탁했다.
6월경, 솔나리는 줄기 끝에 한 송이씩의 분홍색 꽃을 피운다. 아니, 분홍색이라기보다는 푸른색이 약간 섞인 홍자색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홍자색은 사랑의 색깔이다. 추위를 물고서 따뜻하게 피어나는 사랑의 빛깔이다.
그 이름을/ 살 속에 새긴다/ 암청의 문신// 불가사의한 윤회를 거쳐/
마침내/ 내 영혼이 고개 숙이는 밤이여/ 무거운 운명이여// 절망의 눈비/
회의(懷疑)의 미친 바람도/ 숨죽여 좌선(坐禪)하는 고요// ‘사랑합니다’//
참으로 큰/ 슬픔일지라도/ 어리석은 꿈일지라도// 살 속에/ 그 이름
새기며/ 이 봄밤/ 눈 떠 새운다.
--------- 작품 ‘친전(親展)’ 전문
허영자 시인은 이미 혹독한 추위를 겪어 보았기에, 얼마나 겨울에는 따뜻한 사랑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겨울이 깊어지면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새삼 느낍니다. 이런 추위를 함께 헤쳐 나갈 힘이 되는 것이 곧 사랑인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이 험난한 세상을 녹이는 열정이 되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12월은 정녕 우리들 집의 창문마다에 따뜻하고 밝은 불을 켜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12월은 내 영혼의 창에도 불을 밝히고 엄습하는 세상의 추위를 피해 오는 모든 것들을 맞아들여야겠습니다. 식어 가는 우리들의 마음과 마음 사이를 이어줄 고운 시 한 줄이라도 써진다면, 그것은 내 영혼의 창에 켜는 등불의 심지가 되고 기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내 주변의 조그만 어둠이라도 밝힐 수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생명의 확인이며 지고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젊었을 한때, 허영자 시인도 염세관(厭世觀)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마음의 방황으로 마침내 죽음을 찬미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그는 결단을 내리고 신분을 알릴 일체의 물건을 몸에 지니지 않고 단지 새 옷만을 갈아입은 채 집을 나서서 정릉으로 향했다. 정릉 종점에서 차를 내리자, 그는 무작정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산 속에 들어가서 눈이 녹는 양지쪽 골짜기를 찾아 가만히 누워 버리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버스에 함께 타고 온 중년 남자 한 분이 뒤를 따라와 동행을 하게 되면서, 그는 삶의 존엄성을 깨닫게 되었다 한다. 그렇기에 그는 기회만 있으면 젊은이들에게 생명의 존귀함을 역설하곤 한다.
“정녕 생명이란 하잘 것 없는 미물의 것이라도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 한 번의 단 하나뿐인 것이기 때문이다. 아차 하여 잃어버리면 그것은 다시 되돌려 받을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것이다. 또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현명한 슬기로운 생명은 바꾸어지지 않으며 권위나 완력이나 황금 그 어떤 것으로도 생명은 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명은 귀하고도 신성한 것이다. 목숨이란 두 번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아름답고 향기롭게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목숨이란 두 개가 아니기에 시행착오를 줄이며 최고의 경영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허영자 시인은 1961년 ‘현대문학’지에 시 ‘도정연가(道程連歌)’가 추천되고, 다음해에 ‘사모곡(思母曲)’이 발표되었으며, 이어서 ‘연가3수(戀歌三首)’가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단했다. 그의 시는 주로 연가풍(戀歌風)의 서정에다 동양적인 유현(幽玄)하고도 섬세한 정적(情的) 세계를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숙명여대와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한 뒤, 계성여고 교사 및 숙명여대 강사, 성신여사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솔나리의 종류 중에는 흰 꽃을 피우는 것도 있어서 ‘흰솔나리’라고 부른다. 그 또한 순결한 영혼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아무튼 솔나리의 꽃 핀 모습을 보면, 그 꽃잎을 한껏 뒤로 제치고 수꽃술을 땅을 향해 삐죽이 내민 형상이, 이 땅을 사랑하고 저 하늘을 노래하는 믿음을 지닌 성싶다. 그런 면으로도, 솔나리는 허영자 시인의 이미지가 분명하다. 그러면 허영자 시인의 신앙은 어떠한가.
“모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없고 신에 대한 경탄이 없고 조물주를 흠숭한다 함은 거짓입니다. 피조물로서의 겸손한 마음이 없고 절대한 힘의 존재를 인정한다 함도 거짓입니다. 제단 위에 촛불을 켜면서 옆의 형제를 모른다 함은 거짓된 신앙입니다. 모든 이웃에 대한 연민이 없는 기도는 거짓 기도입니다. 자기 합리화에 급급하며 반성이 없는 참회는 거짓입니다.”
이처럼 돈독한 믿음을 지니고 있기에, 그는 자연의 섭리가 베푸는 위안과 경위가 고마웁기 한량없다. 분홍빛 초록빛 어우러진 들판, 노래하며 흐르는 냇물 가를 거닐며 찌든 생활의 남루쯤은 가벼이 벗어 던질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꽃을 아니 사랑하겠는가. ‘꽃같이 사람에게도 사람에 따르는 독특한 생김새, 분위기, 생각, 표현 등의 개성이 있고 또 그것은 하나같이 소중하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그는, 서울 변두리, 서편으로 나즈막한 등성이를 의지하고 좁은 마당이나마 몇 그루 푸른 나무를 심어 놓은 조용한 곳에 거처를 정했다. 직장에서 1시간이 넘는 거리이지만, 서편에 숲이 있어서 계절 따라 색다른 새 소리 바람 소리를 듣는 즐거움으로 그 곳을 떠나지 못한다.
저 빈 들판을/ 걸어가면// 오래오래 마음으로 사모하던/ 어여쁜 사람을 만날
성싶다// 꾸밈 없는/ 진실과 순수/ 자유와 정의와 참 용기가/ 죽순처럼 돋아나는
/ 의초로운 마을에 이를 성싶다// 저 빈 들판을/ 걸어가면/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 아득히 신비로운/ 신의 땅에까지 다다를 성싶다.
----------- 작품 ‘빈 들판을 걸어가면’ 전문
허영자 시인의 이 시를 읽노라면, 나는 더없이 경건한 마음이 된다. 빈 들판을 걸어가서 그분을 만나고 싶은 마음. 그것은 바로 기다리는 마음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이란 어쩌면 내내 기다림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항상 내일을 생각하고 소망과 동경이 있는 한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마련이니까요. 또한 기다리는 시간만큼 복된 시간은 다시없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것과 얻지 못한 것을 기다리는 시간은 절정의 행복에 처한 순간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해가 끝나는 12월. 12월이 되면, 허영자 시인은 신께 기도를 드리고 싶어한다. 그 기도는 생명의 보람을 찾아 자기를 투척하여야 하리라는 새로운 결의와 다짐인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신을 떠난 탕자가 되어 돌아다녔습니다. 신의 이름을 외는 대신 세속의 셈을 외쳐 대고 신의 그윽한 뜻에 머리를 숙이는 대신 육체를 기름지게 하는 일에 몰두하였으며 신의 천국을 꿈꾸는 대신 세속의 명리를 탐했습니다.”
한겨울이 아니라, 오히려 한여름에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빌고 있는 솔나리는, 이 험난한 시대를 살고 있는 허영자 시인의 하늘을 향한 또 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 순결한 심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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