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족시 ‘시조’
(1)
시조는 ‘민족시’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시조를 잘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 세계 여러 민족들은 제각기 그 민족 특유의 시가(詩歌)를 계승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대한민국 특유의 노래 형태인 3장(章)6구(句)의 시조를 지녀 왔다. 이는 모두 필연적이다. 바로 우리의 숨결이 여기에 담겨 있다.
모두 알고 있듯이, 시조(時調)라는 이름은 원래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왔다. 시조는 신라의 향가나 고려의 속요 및 민요 등의 영향을 받아서 대체로 고려 말엽에 그 형태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남아 있는 문헌 중 ‘시조’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인 문헌은, 동국통감(東國通鑑, 조선역사서. 1485년에 徐居正이 편찬)이라고 한다. 그 안에 ‘원상이 시조를 지어 태평곡이라고 하였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아무튼 계절이든지 인심이든지 풍습이든지, 시조는 시절을 노래한 시(詩)였다. 물론, 지금 창작되는 시조는 ‘현대시조’를 가리킨다. 현대시조는 일반적으로 고대시조의 전통이 거의 끊어진 19세기 말인, 갑오개혁(甲午改革, 1894~1895 조선 정부에서 전개한 제도개혁운동) 이후의 시조를 통칭하는 언어이다. 근대시조와 신시조의 개념을 포괄하는 명칭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나 실질적인 현대시조는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무리가 없을 듯싶다.
아무튼 시조는, 민족시가(民族詩歌)인 만큼, 그 안에 민족혼의 내재율(內在律, 깃들어 있는 운율)이 들어 있다. 그게 바로 3장(章)6구(句)이며, 우리의 삶 자체가 3장6구의 시조 가락이 아닌 게 없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활’을 아주 잘 쏘았다. 그렇기에 일본을 ‘칼’의 나라라고 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활’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무사의 나라이고 우리나라는 문사의 나라이다.
시조에는 흐름(流)이 있고, 굽이(曲)가 있고 마디(節)가 있고 풀림(解)이 있다. 즉, 화살 통에서 화살 하나를 뽑는 게 바로 ‘흐름’이고, 그 화살을 활시위에 거는 게 ‘굽이’이며, 그 화살과 함께 활시위를 당기는 게 ‘마디’이다. 그리고 힘껏 당겼던 활시위를 과녁을 겨냥하여 놓는 게 바로 ‘풀림’이다. 이 때, 3장에서 ‘흐름’은 초장을 이루고, ‘굽이’는 중장을 이루며, ‘마디’와 ‘풀림’이 종장을 이룬다. 이를 가리켜서 우리 시조의 ‘내재율’이라고 한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농촌의 도리깨질을 할 때에 도리깨를 힘주어 잡는 게 바로 ‘흐름’이고 그 도리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게 ‘굽이’이며, 들어 올린 도리깨 끝의 휘추리를 공중에서 돌리는 게 ‘마디’이고 그 돌린 휘추리를 냅다 아래로 내려치는 게 ‘풀림’이다. 이렇듯 우리 시조는 그 가형(歌形)이 우연히 이루어진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시조는 우리 생활과 우리 정신의 가장 깊은 골을 밝혀 주는 하나의 심등(心燈)이요 하나의 운사(韻事)이다. 그렇다. 시조는 민족정서의 등불이고 겨레사랑의 꽃밭이다.
(2)
시조는 정형시이다.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시조의 기본율은 초장이 3(4) 4 3(4) 4로서 앞의 구가 7(8)자이고 뒤의 구가 7(8)자이다. 중장도 3(4) 4 3(4) 4로서 앞의 구가 7(8)자이고 뒤의 구도 7(8)자이다. 다만, 종장은 3 5 4 3(4)인데, 앞의 구에서 첫 3자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렇듯 종장이 달라짐은 내재율의 변용을 나타낸다. 이로 인해 시조는 일행직류(一行直流)의 단순함을 멋지게 벗어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시조에서 허락하는 테두리가, 초장과 중장의 각 구는 9자까지이다. 그리고 종장의 첫 3자는 부동이나 그 다음의 5자는 7자까지이다. 또, 둘째 구에서 앞의 4자는 5자까지 허용되고 뒤의 3자는 4자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어디까지나 시조에 대한 용념(用念)은 3 5 4 3(4)인 종장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면 이를 매우 어렵게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우리의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시조를 아주 쉽게 익힐 수 있다. 왜냐하면, 시조야말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생활에서 ‘깎고 갈고 다듬고 간추려 온 틀’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저절로 발걸음이 제 집으로 옮겨지듯이 시조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정형시로서 갖추어야 될 면모를, 노산 이은상 선생의 작품 ‘성불사의 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3 4 3 4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3 4 4 4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3 5 4 3
기본율에 아주 잘 맞는다. 종장의 둘째 구(句)도 4 3으로 되어 있다. 이는, 역진(逆進)이다. 끝을 힘 있게 맺을 수 있고 긴 여운을 남기게 한다. 이를 가리켜서 ‘미인형 시조’라고, 나는 말한다. 우리가 여자를 만날 때, 우선 맨 처음으로 그 여자의 생긴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생긴 모습이 아름다우면 호감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시조가 겉으로 보는 아름다움에만 무게를 두는 건 절대로 아니다. 시조도 시(詩)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감동적이어야 한다. 뚜렷한 개성미를 지녀야 한다. 기본율로 보아서는 조금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더욱 휘청거리는 멋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런 작품들은, 미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 작품대로 개성미가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시조는 글자 수나 세고 있는 고루한 시가 절대로 아니다. 내재율만 잃지 않는다면 얼마큼의 글자 가감이 자유롭다. 그러면 다음은 이호우 선생의 작품 ‘흐름 속에서’의 첫 수를 살펴보기로 한다.
여긴 내 신앙의 둥주리 낙동강 흥건한 유역 2 7 3 5
노을 타는 갈밭을 철새 떼 하얗게 날고 2 5 3 5
이 수천(水天) 헹구는 가슴엔 ‘세례요한’을 듣는다. 3 6 5 3
이와 같이 시조란 틀에 박힌 듯싶으면서도 틀에 박히지 않고 또 자유분방하면서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우리만의 정형시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반드시 내재율을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늘 파격(破格, 자수가 많거나 적다)은 조심스럽다. 그러면 시조에서 허락될 수 있는 테두리는 구체적으로 어떠할까.
초장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중장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종장 3(부동) 5(7자까지 가능) 4(5자까지 가능) 3(4자까지 가능)
다시 말해서, 초장과 중장의 전후 구가 3자와 4자로 모두 합하여 7자인데 9자까지가 가능하고(예컨대 3 4도 좋고 4 4도 좋고 3 5도 좋고 2 6이나 3 6도 좋고 2 7이나 4 5도 좋다.), 종장의 3 5 4 3에서 첫 3자는 부동이지만 그 다음의 5는 7자까지, 4는 5자까지, 3은 4자까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를 아무나 함부로 흉내 내어서는 안 된다. 오랜 동안의 ‘시조 짓기에 대한 경륜’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공자의 말을 빌리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무엇이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유’는 ‘넘다’ ‘이기다’ ‘뛰다' '더욱' ‘멀다’ ‘아득하다’ 등의 뜻을 지니고 ‘구’는 ‘곱자’를 가리키는데 ‘법도’ ‘규칙’ ‘기준’ ‘준칙’ 등의 뜻을 지닌다.)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너무 지나치게 파격을 하면, 자칫 시조로서의 정형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시조의 파격이 너무 심해져서 큰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시조가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렇듯 시조가 파격이 심해지면 자유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시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금 더 정형을 조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시조의 정형을 3장6구12음보로 삼되, 그 글자 수도 초장 3 4 3(4) 4에 중장 3 4 3(4) 4, 그리고 종장 3 5 4 3(4)으로 45자 안팎이 적당하다.’라고 본다.
(3)
시조는 그 본령이 단수에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조는 원래 시절가조(時節歌調)라고 하여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시제’라는 게 별도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여러 수를 엮어서 하나의 노래를 이루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복잡해진 사회에서 아무래도 단수로 그 정서를 모두 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연작으로 된 시조’(連作時調)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연작시조라도 그 한 수 한 수를 떼어 놓았을 때에 반드시 시조로서의 완성도를 지녀야 한다.
물론, 시조에는 평시조와 사설시조와 엇시조 등이 있다. 그러나 나는, 사설시조나 엇시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유시가 있는 이상 그 가치를 아직 못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시조는 모두 평시조를 가리킨다.
시조도 시(詩)임에 틀림없으므로 무엇보다도 그 창작에서 ‘형상화’(形象化, 형체로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을 어떤 방법이나 매체를 통하여 구체적이고 명확한 형상으로 나타냄. 특히 어떤 소재를 예술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을 이른다.)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시조는 정형시로서 완성도가 있으면서 시(詩)로서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하나 여기에서 짚어 보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그것은 고시조와 현대시조를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다음은 고려 때의 사람인 이조연(李兆年)의 작품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 시대에 이런 투의 시조를 내놓는다면 어찌 정서에 맞겠는가?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내재율이라든가 내용 안에 담긴 ‘여유 있는 풍도의 정신’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시조의 참 멋은 장(章)과 장(章) 사이의 여운(餘韻,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운치)에 있다. 또 하나. 시조가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그 격조(格調)가 높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요즘에 간혹 그 재주를 앞세워서 빈정댄다든지 함부로 욕을 해대는 작품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외형적인 면에서 시조와 자유시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그렇다고 내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시조는 ‘지’(志)와 ‘관’(觀)과 ‘풍’(風)을 지닌다. ‘지’는 ‘마음을 정하고 나아가는 뜻’을 나타낸다. ‘관’은 ‘황새가 먹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풍’은 ‘동굴에서 바람이 나오는 것이 마치 벌레들이 들고나는 것과 같음’을 뜻한다. 쉽게 말해서 이 ‘풍’은 ‘기질’이나 ‘모습’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자유시는 ‘의’(意)와 ‘논’(論)과 ‘유’(流)를 지닌다. ‘의’는 ‘말로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속의 생각이나 뜻’을 나타내고, ‘논’은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알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유’는 ‘깃발이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모양’을 뜻한다. 이 ‘유’는 ‘무리’나 ‘갈래’를 의미한다.
앞에서 시조는 그 뿌리가 시조창(時調唱)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시조창에는 경(境)이란 것이 있다. ‘경’이란 무엇인가? ‘경’은 ‘경우’나 ‘형편’을 나타낸다. 즉, ‘동산일출’(東山日出, 동쪽 산에 해가 뜬다.)이라든지 ‘평사낙안’(平沙落雁, 모래펄에 날아와서 앉은 기러기)이라든지 ‘주마축지’(走馬蹴地, 달리는 말이 두 뒷발의 굽으로 땅을 차다.)라든지 ‘경조탁사’(驚鳥啄蛇, 놀란 새가 뱀을 쫀다.)라든지, 아무튼 우리 시조의 종장에는 이런 ‘경’(境, 경우나 형편)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시조의 한 수 한 수에는 시정신의 뿌리가 그 경이라는 것에 가서 닿아야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희(喜, 기쁨이나 즐거움)이거나 비(悲, 슬픔이나 비애)이거나 낙(樂, 즐기거나 즐겁게 하다.)이거나 환(歡, 기뻐하다거나 기쁘게 하다.)이거나 적(寂, 고요하다거나 쓸쓸함)이거나 고(孤, 외롭다.)이거나 멸(滅, 다하거나 끊어지다.)이거나 근(近, 가깝거나 친하거나 속되다.)이거나 원(遠, 멀거나 멀리하다.)이거나 직(直, 곧거나 바로잡다.)이거나 우(迂, 멀거나 돌거나 굽다.)이거나 ‘묘’(妙, 묘하거나 뛰어나다.)이거나 현(玄, 깊거나 고요함)이거나 등에 시 정신의 뿌리가 반드시 닿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포시법’(捕詩法)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과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기질을 논하였는데, 중국 사람은 ‘농부’와 같고 일본 사람은 ‘어부’와 같으며 우리나라 사람은 ‘사냥꾼’과 같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포시법은 우리나라 사람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일 성싶다. 짐승을 잡을 때는 ‘잡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멧돼지를 잡으려고 할 때, 아무렇게 잡는 게 아니라, 멧돼지가 잘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놈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면 일발필중(一發必中)으로 화살을 쏘아서 맞혀야만 한단다. 섣불리 맞혔다가는 멧돼지에게 도리어 화를 당하게 된다고 한다. 이 멧돼지가 바로 시재(詩材)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단발의 ‘적중어’(的中語)야말로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을 맛보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포시법이 반드시 일발필중의 경우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한 어린아이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잠자리에게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 날개를 살짝 잡듯 하는 포시법도 있다. 이런 작품일수록 언단의장(言短意長)을 나타낸다. 이를 가리켜서 ‘언외언’(言外言)이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시조에서 수다는 금물이다. 또, 시조라면 ‘단수’여야 한다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지금은, 현대시조가 뿌리를 어느 정도 내린 상태라고 여겨진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동시조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된다. 어릴 때부터 민족정서를 제대로 가슴에 심어 주어야 한다. 사실, ‘동시조 짓기’는 매우 어렵다. 마음에 때가 잔뜩 묻은 어른으로서 맑고 깨끗한 동심을 일으키기가 어찌 그리 쉽겠는가.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동시조가 절실한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백수 정완영 선생님의 동시조 ‘꽃가지를 흔들 듯이’라는 작품이다.
까치가 깍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울어야’ ‘흔들어야’ ‘헹궈야’가 아주 좋은 징검다리를 놓고 있다. ‘몰려들고’ ‘살아나고’ ‘열린다.’ 등이 각각 앞을 잘 받쳐 주고 있다. 그런데 햇살과 하늘빛은 위에 있는 것이고 개울물은 아래에 있는 것이다. 놀랍다. 이게 바로 ‘적중어’이다.
나도 ‘넙치와 가자미’라는 동시조집 한 권을 펴낸 바 있는데, 그 중에 한 편을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함박꽃나무’를 노래하였다.
겨우내 눈을 감고 무슨 알을 품었는지
봄이 오자 빈 가지에 하얀 깃의 어린 새들
저마다 배고프다고 입을 쩍쩍 벌립니다.
‘함박꽃나무’(Magnolia sieboldii )는 목련과 목련속의 식물이다. 꽃은 잎보다 늦게 피는데, 그 꽃이 아래를 향해 핀다. 시골의 처녀처럼 순수한 모습이다. 그게, ‘나무 아래로 다가간 나를 보고, 배고프다고 입을 쩍쩍 벌리는, 어린 새의 모습’으로 내 눈에 보였다. 나는 그 느낌을 받아서 이 작품을 썼다.
(4)
시조를 왜 읽어야만 하는가. 한 마디로, 우리 민족의 정신을 알기 위해서이다. 시조는 위대한 정신문화의 유산이다. 시조에는 우리 민족의 온갖 사고와 온갖 행위 및 온갖 습속이 모두 담겨 있다. 우리 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세계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작년에 산문집 ‘씬쿠러, 콩쯔’를 펴냈는데, 여기에는 시에 대한 공자의 중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공자는 시를 무척이나 사랑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그것으로 감흥을 자아낼 수 있고 그것으로 살필 수 있으며, 그것으로 여럿이 모일 수 있고, 그것으로 불의를 원망할 수 있으며, 가까이는 아버지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나라)을 섬길 수 있게 하며, 새와 짐승 및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물론, 이 말은 ‘논어’에 들어 있다. 특히 ‘새와 짐승 및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多識於鳥獸草木之名)에 나는 크게 공감한다. 이는 시의 효용론이다. 그리고 공자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시는 인정에 근본을 두어서 도리를 밝히고 풍속의 성쇠를 말하며 정치의 득실을 볼 수 있고 그 말이 온후하며 풍류를 지녔기에 이를 배우면 정치에 통달하고 말도 잘하게 된다.”
시가 이러한데, 하물며 시조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시조를 감상하는 요령도 있다.
첫째는, 시조가 정형시이므로 그 형식에 얼마나 잘 맞게 지어졌는지를 살핀다. 파격을 하지 않고도 적중어(的中語)를 잘 사용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정말이지, 활자화되었을 때에 시조 삼장(三章)이 우선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있어야 읽을 맛이 난다.
둘째는, 그 작품을 쓴 장소나 풍경 및 시정 등을 헤아려 본다. 이를 앎으로써 작가와 호흡을 함께할 수 있고 그 감동을 더욱 진하게 얻을 수 있다.
셋째는, 계절과 시각을 살펴본다. 어느 철이고 어느 때인지를 알게 되면 더욱 그 작품 속에 쉽게 빠져들 수가 있다.
넷째는, 시조를 지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시조를 썼는지, 그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은 어떠한지 등을 알아본다. 이는, 아주 중요하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가짜가 있다. 시는 ‘픽션’(fiction)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럴 듯싶게 허구를 지어내기도 한다. 그러니 그 작품이 가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시는 푸념이거나 넋두리에 불과하다.
다섯째는, 시조의 중심 생각을 살펴보고 그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알아본다. 시조는 3장 6구의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는 그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들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기쁨 또한 크다.
여섯째는, 작품 속에 나오는 특이한 낱말을 만나는 즐거움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낱말에 대해 더욱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일곱째는, 시조의 운율을 생각하며 감정을 살려서 바르게 읊어 본다. 옛날, 장생포에는 ‘잡은 고래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그 큰 고래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작은 조각으로 해체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오랜 경험으로 고래의 살과 뼈의 구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꾸 시조를 읽다 보면 저절로 시조의 골격과 내재율을 알게 되고 그에 따라 시조를 아주 멋지게 읊을 수도 있게 된다.
여덟째는, 표현이 잘 되어 있는 곳(言短意長)을 여러 차례 거듭하여 읽는다. 그러면 더욱 묘미를 얻을 수 있다. 그게 시조와 더욱 가까워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만 번드르르하고 내용은 별로 얻을 게 없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의 구절을 조심해야 한다.
아홉째는, 시조를 읽고 감상문을 쓴다. 이를 계속적으로 실행하면 더욱 시조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슴 속에 지니게 된다. 그 외에도 재미를 더해 주는 요소가 있다. 다음은 나의 비교적 초기 시조작품인 ‘동학사에서’이다.
골짜기 가린 숲에 머문 새는 잠이 들고
꿈결에 뒤척이면 솔 냄새가 이는 바람
천수경 외는 소리가 홀로 밤을 새깁니다.
어둠을 밝혀 가는 믿음이 곧 하늘이라
구름은 문을 열어 저승까지 환한 달빛
관세음 고운 눈길이 미소 한 점 남깁니다.
그림자 끌던 탑이 물소리에 묻혀들면
버려서 얻은 뜻은 산 마음을 닮아 가고
숙모전 서러운 뜰도 넓은 품에 안깁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특히 각 종장에 언급된 ‘천수경’과 ‘관세음’과 ‘숙모전’이다. 이를 징검다리처럼 놓아서 동학사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 이게 동학사 모습이다. 그뿐만 아니라 각 수의 끝(종장 끝 절)마다 ‘새깁니다’와 ‘남깁니다’와 ‘안깁니다’로 ‘깁’이라는 글자(韻)를 맞추었다. 이는, 우리나라 말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의미도 지닌다. 이번에는, 최근에 발표한 ‘절에 눈이 내리고’라는 나의 시조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린다 절 마당에, 시름없이 쏟아진다,
움츠린 고요마저 흰눈 속에 파묻히면
스님의 염불 소리만 때구루루 구른다.
흰눈이 쌓일수록 절 지붕은 낮아지고
보인다 하늘 길이, 번지르르 나타난다,
스님의 모은 손끝도 더욱 높이 떨린다.
외롭게 세운 탑은 발을 동동 구르는데
고라니 숨결처럼 마음 문을 여는 스님
철버덕! 흰눈꽃 진다, 절 안팎이 놀란다.
이 작품에는 비밀이 몇 개 숨어 있다. 각 수마다 ‘절’이라는 단어와 ‘스님’이라는 단어와 ‘흰눈’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특히 ‘흰눈’은 주제(主題, 테마)를 나타내므로 중장과 초장과 종장에 고르게 배치했다. 말하자면, 이게 뼈대이다. 또 가만히 살피면 각 수의 끝(종장 끝 절)마다 ‘구른다’ ‘떨린다’ ‘놀란다’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게다. 그런데 가운데 글자가 ‘ㄹ'로 시작되어 ’ㄴ’으로 끝나고 있다. 이 또한 의도적이다. 아무튼, 거기에 초장에서는 ‘때구루루’라는 옷을 입혔고 중장에는 ‘번지르르’라는 옷을 입혔다. 물론, ‘얼음덩어리’와 ‘빙판길’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종장에는 ‘철버덕!’이라는 변화의 옷을 입혔다. 이 모두가 ‘우리나라 언어에서의 비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찌씨’로 지은 옷들이다.
앞에서 나는, 시조가 노래(음악)에서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하였다. 문득 공자의 음악에 대한 일이 떠오른다.
공자의 나이가 29세였을 때이다. 그는 ‘사양자’(師襄子)에게서 ‘고금’을 배우게 되었다. ‘고금’(鼓琴)이란, 두드리는 악기(鼓)와 타는 악기(琴), 즉 ‘음악’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양자’는, ‘석경’(石磬)을 치는 악관을 이른다. ‘사양자’에서 ‘양’(襄)은 이름이고 ‘사’(師)는 악사(樂師)를 나타낸다. 또, ‘석경’은, 아악기의 한 가지로, 돌로 만든 ‘경쇠’로서 소리가 맑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서도 ‘자’(子)는 선생님을 의미한다.
그런데 공자는 열흘 동안이나 배웠건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답답하다고 여겼던지, ‘사양자’가 말했다.
“그만큼 익혔으면, 새로운 것을 배우도록 하세.”
그 말에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곡’은 벌써 익혔으나 아직 그 ‘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곡’(曲)은 ‘악보의 가락’을 뜻하고, ‘수’(數)는 ‘가락의 이치’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얼마 후에, 사양자가 말했다.
“이제 ‘수’는 깨달았겠지, 그러면 이제 새로운 것을 배우도록 하세.”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아직 ‘지’를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지’(志)는 ‘뜻하는 바’를 말한다. 또 얼마 뒤에 사양자가 다시 말했다.
“그만하면 ‘지’는 알았겠지, 이제 새로운 곡을 배우도록 하세.”
그렇지만, ‘공자’는 다시 말했다.
“저는 아직, 이 곡을 지은 ‘위인’을 알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위인’(爲人)은, ‘그 사람의 됨됨이’, 즉 ‘삶의 세계’를 가리킨다. 얼마가 지난 뒤에 또 사양자가 말했다.
“가락 하나를 앞에 놓고서도 그리 깊이 생각하니 정말 황홀한 기쁨을 맛보고 있겠군.”
이렇듯 공자는 곡조 하나를 배우는 데도 속속들이 파고들었다고 한다. 그 배움의 정도를 왜 ‘호학’(好學)이라고 하였는지, 이제는 짐작할 수 있겠다.
그래도 시조(詩)가 왜 필요한지를 나에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왜 이 세상에 꽃이 있어야만 하는지를 되묻고 싶다. 그렇다. 꽃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만나는 아름다움이고, 시조(詩)는 우리가 마음으로 만나는 아름다움이다. 들에서는 꽃이 가득 피어나고 가슴에는 시조(詩)가 가득 피어난다. 그래서 이 세상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