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퇴고와 절차탁마

시조시인 2013. 9. 9. 23:31

퇴고와 절차탁마

 

 

 

 김 재 황 

 

 

시다운 시를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아름다운 시상을 얻기가 참으로 어렵다. 어느 시인은 대번에 좋은 시를 썼노라고 자랑하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다. 어쩌다가 괜찮은 시상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초고를 쓰고 나서 수십 차례는 그것을 읽고 또 읽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다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듯 시문(詩文)을 지을 때에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해서 고치는 일퇴고’(推敲)라고 한다. 여기에서의 ’() 자는 라고도 읽는다. 그럴 때는 옮다’ ‘변천함’ ‘천거하다’ ‘받들다’ ‘궁구하다’ ‘넓히다’ ‘꾸짖다’ ‘힐난함등의 뜻이 있다. 그리고 라고 읽을 때는 밀다’ ‘물려주다’ ‘되밀다’ ‘제거하다’ ‘떨쳐 버림등의 뜻을 지닌다. 그런가 하면 ’() 자는 두드리다’ ‘두드림’ ‘’(회초리) 등의 뜻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퇴고, ‘밀고 두드린다.’라는 뜻이 된다. 그게 왜 그런(자구를 여러 번 고치는 일) 뜻을 지니게 되었을까? 그 이유가 있다.

바야흐로 중국에서 가장 시() 문화가 꽃을 피웠던 중당’(中唐) 때였다. ‘가도’(賈島)라는 시인이 친구 이응’(李凝)의 외딴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 한 편을 짓기 시작했다. 그 초고(草稿)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閑居少隣竝(한거소린병)- 고요한 집에 이웃 드물고

草俓入荒園(초경입황원)- 풀이 자란 지름길은 거친 뜰로 이어졌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잠들고

僧推月下門(승퇴월하문)- 스님은 달빛 아래 대문을 민다.

過橋分野色(과교분화색)- 다리를 지나니 들 풍경 분명하고

移石動雲根(이석동운근)- 돌을 옮기니 구름 뿌리가 움직이는 듯

暫去還來此(잠거환래차)- 잠시 갔다가 다시 돌아오니

幽期不負言(유기불부언)- 은거의 약속 어기지 않았다.

 

이렇게 시를 지어 놓고 보니, 어쩐지 승퇴월하문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 번 더 읽어 보았으나, ‘가 아무래도 좀 껄끄러웠다. 그래서 ’() 대신에 ’() 자를 그 자리에 놓아 보았다. 그렇게 승고월하문이라고 바꿔서 읽어 보았으나 그 또한 마음에 안 들고 를 버리기도 아까웠다. 며칠 동안을 로 할까 로 할까 정하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하루는 노새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노새를 타고 가면서도 가도는 시를 놓지 않았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그만 경윤’(京尹) 행차 앞을 가로막고 말았다. 경운 앞에 끌려가게 된 가도는, 지초지종(自初至終)을 모두 말했다. ‘가도의 말을 듣고 나서 경윤은 껄껄 웃으며 보다 가 낫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어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스님은 달빛 아래 대문을 두드린다)으로 결정짓게 되었다. 여기에서 로 할까 로 할까가 줄어서 퇴고라는 말이 생겼다.

그런데 그 경윤이란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그 사람이야말로, 그 당시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라는 사람이었다. 그 후, 한유와 가도는 좋은 문우(文友)로서 가깝게 지냈다.

가도’(賈島, 779~843)는 중국 중당 때의 시인이다. ()낭선’(浪仙)이고 범양(范陽, 지금의 허베이성 줘현) 사람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일찍이 출가함으로써 승려가 되었고 무본’(無本)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그는 한유(韓愈)에게 시의 재주를 인정받았다. 그래서 벗이 되었다. 그렇기에 앞에서 소개한 시는 그가 승려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지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는 속세로 돌아와서 과거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그의 관직 생활은, 쓰촨성 추저우의 사창참군(司倉參軍)에 머무는 게 고작이었다. 승려로 있을 때부터 시()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그는 시구’(詩句) 하나하나를 선택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고 전한다. 표현이 날카롭고 간결하며 자연스러운 게 가도()의 전반적인 분위기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한유와 알게 된 후에 그의 문하로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때 그 곳에 함께 있던 맹교’(孟郊)와 더불어 교한도수’(郊寒島瘦 맹교는 차고 가도는 파리하다.’ 소동파蘇東坡가 한 말)라고 일컬어진다. 시집으로 가랑선장강집’(賈浪仙長江集) 10권이 있다.

한유’(韓愈, 768~824)는 등주(鄧州-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사람이라고 한다. 중국 산문의 대가이며 탁월한 시인으로 꼽혔다. ()퇴지’(退之)이고 한문공’(韓文公)이라고도 부른다. 중국과 일본에 넓은 영향을 미친, 후대 성리학(性理學)의 원조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고 전한다. 처음에 과거를 보았을 때에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여 낙방했다고 한다. 그 후, 25세 때에 진사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치고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지냈다. 그가 죽은 후에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추증되었고, ‘’()이라는 시호를 받는 영광까지 얻었다.

어쨌든 시()는 여러 번을 자꾸 고칠수록 빛이 나게 된다. 그러니 자꾸 거듭하여 갈고 다듬어야 한다. 여기에서 문득, ‘절차탁마라는 말이 떠오른다.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사전적 풀이는, ‘옥이나 돌이나 뼈나 뿔 등을 갈고 닦아서 빛을 낸다.’라는 뜻으로, ‘학문이나 도덕이나 기예 등을 열심히 닦음을 나타낸다. 도대체 이 말은 어디에서부터 생긴 것일까?

놀랍게도 이 말은, 공자가 모아 놓은 지금의 시경’(詩經) 속의 한 노래에서 유래되었다. , 위풍(衛風) 중의 기욱’(淇奧)이라는 노래가 그 원류이다. 여기에서 기수’(淇水)를 나타내고 물굽이’ ‘모퉁이’ ‘굽이낭떠러지등을 가리킨다. 그럼, 그 시를 본다.

 

瞻彼淇奧(첨피기욱)-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보니

綠竹猗猗(녹죽의의)- 푸른 대나무 우거졌다.

有匪君子(유비군자)- 멋있는 나의 낭군

如切如磋(여절여차)- 자르고 다듬은 듯

如琢如磨(여탁여마)- 쪼고 간 듯

瑟兮僩兮(슬혜한혜)- 의젓하고 당당하며

赫兮咺兮(혁혜훤혜)- 빛나고 의젓하다.

有匪君子(유비군자)- 멋있는 나의 낭군

終不可諼兮(종불가훤혜)- 끝내 잊을 수 없다.

 

瞻彼淇奧(첨피기욱)-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보니

綠竹靑靑(녹죽청청)- 푸른 대나무 무성하다.

有匪君子(유비군자)- 멋있는 나의 낭군

充耳琇瑩(충이수영)- 아름다운 옥돌을 귀에 달고

會弁如星(회변여성)- 고깔에 단 구슬들은 별 같다.

瑟兮僩兮(슬혜한혜)- 의젓하고 당당하며

赫兮咺兮(혁혜훤혜)- 빛나고 의젓하다.

有匪君子(유비군자)- 멋있는 나의 낭군

終不可諼兮(종불가훤혜)- 끝내 잊을 수 없다.

 

瞻彼淇奧(첨피기욱)- 저 기수 물굽이를 바라보니

綠竹如簀(녹죽여책)- 푸른 대 빽빽하다.

有匪君子(유비군자)- 멋있는 나의 낭군

如金如錫(여금여석)- 금인 듯 주석인 듯

如圭如璧(여규여벽)- 규옥인 듯 벽옥인 듯

寬兮綽兮(관혜작혜)- 너그럽고 숙부드러우며

猗重較兮(의중각혜)- 수렛대에 기대었다.

善戱謔兮(선희학혜)- 우스갯소리 잘하지만

不爲虐兮(불위학혜)- 모질게 굴지는 않는다.

 

이 노랫말()의 첫 연()에서 의의’(猗猗)아름답게 무성한 모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우거졌다.’라고 풀었다. 그리고 유비’(有匪)문채(文采) 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는 거의 무의미한 조자(助字)라고 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군자’(君子)는 공자가 말하는 그런 덕성의 군자가 아니다. 그 당시에는 그저 사내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낭군이라고 정감 있게 풀었다. , ‘여절여차에서 ’()뼈를 다스림을 말하고, ‘’()코끼리의 이빨을 가지고 무엇인가 만드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여탁여마에서 ’()구슬에 대한 가공을 이르고 ’()돌에 대한 가공을 이른다고 한다.

슬혜한혜에서 ’(), ‘긍장(矜莊)한 모양을 말한다는데, 나는 그저 의젓하다라고 쉽게 풀었다. ‘’(), ‘위엄 있는 모양’ ‘풍채가 당당한 모양등을 말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저 당당하다라고 풀었다. 그리고 혁혜훤혜에서, ‘’()빛나는 모양이라고 하여 나도 그렇게 풀었고, ‘’()위의용지(威儀容止)가 밝히 나타나 보임이라는데 나는 그저 점잖다라고 풀었다. , 맨 끝의 구()에서 ’()잊음을 나타낸다고 하기에 나도 그렇게 풀었다. ‘’(), ‘잊다외에도 속이다’ ‘거짓말하다’ ‘기만하다’ ‘떠들썩하다등의 뜻을 지닌다.

둘째 연()의 셋째 구()충이수영’(充耳琇瑩)에서 충이귀걸이를 가리키고 수영빛나는 옥을 나타낸다고 한다. , ‘옥돌’ ‘아름다운 돌’ ‘빛나다’ ‘광채를 발하다뜻을 지니고 밝다’ ‘빛나다’ ‘옥의 빛’ ‘맑다’ ‘귀막이 옥등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회변여성’(會弁如星)에서 회변흰 사슴 가죽으로 만든 고깔또는 고깔의 이은 자리에 끼워 놓은 보석이라고 한다. 나는 이를 알기 쉽게 고깔에 단 구슬이라고 했다.

셋째 연()으로 가서 녹죽여책’(綠竹如簀)대의 울창한 모양을 이른다.’라고 씌어 있다. ‘’()이라는 글자는 살평상’ ‘바닥에 통나무를 대지 않고 나무오리로 일정한 사이를 뗀 다음, 죽 박아서 바닥을 만든 평상’ ‘대자리’ ‘쌓다’ ‘모음등의 여러 뜻을 지닌다. 그래서 그런 느낌으로 나는 빽빽하다라고 풀었다. 그리고 여규여벽’(如圭如璧)에서, ‘위가 둥글고 아래가 네모인 구슬을 가리키고, ‘둥글게 깎은 구슬을 나타낸다고 한다. 나는 이를 규옥인 듯 벽옥인 듯이라고 옥의 이름으로 썼다. , ‘관혜작혜’(寬兮綽兮)에서, ‘너그럽다’ ‘집이 넓다’ ‘느긋하고 거리낌 없는 모양등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너그럽다를 골랐다. 그리고 점잖음을 이르는 말이라는데, ‘너그럽다’ ‘숙부드럽다’ ‘느긋하다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 숙부드럽다를 택했다. ‘숙부드럽다노글노글하다또는 사람의 사정이 참하고 부드럽다.’거나 얌전하고 점잖다.’ 등의 뜻을 지닌다.

그런가 하면, ‘의중각혜’(猗重較兮)에서, ‘의지함이라고 한다. 이를 나는 기대다라고 했다. ‘수레귀’ ‘밝다’ ‘대강’ ‘다툼등의 뜻을 지닌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 뜻이 조금 다르다. , 그 당시에는 수레를 탈 때에 남자들은 서는데, ‘손 대고 몸을 바르게 가누기 위한 나무가 가로질러 있었다고 한다. 이를 이라고 하며, 이 각이 2중으로 되어 있는 것을 가리켜서 중각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를 그저 수렛대라고 했다. , 8째 구()선희학혜’(善戱謔兮)에서 희학장난치며 익살부림또는 익살이나 농담이나 농지거리등을 가리킨다. 이를 나는 우스갯소리라고 풀었다. 물론, 맨 앞의 ’()잘한다.’라는 뜻이다.

이 노래()를 보면, 누가 보든지 금방 한 여인이 한 남자를 사랑하는 노래라는 사실을 알게 될 터이다. 여인의 낭군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중 여절여차’(如切如磋)여탁여마’(如琢如磨)에서 ’() 자를 모두 빼 버리면 바로 절차탁마’(切磋琢磨)가 된다. 그러니 이는, ‘여자가 자기 낭군의 잘생긴 모습을 가리킨 말이 틀림없다. 이 말의 이런 뜻이,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지금의 뜻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말도, 나이를 먹고 내용이 변하고 죽기도 한다.

그건 그렇고, 이제부터 시를 쓸 때에는 퇴고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시인이라면, 결코 밤을 하얗게 밝히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어려움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얻기 위해 절차탁마하여야 한다. ‘조개가 아름다운 진주 한 알을 빚기 위해 견디는 아픔을 생각하라! 그렇게 노력을 거듭한다면 언제인가는 아름답게 빛나는 시 한 편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노력을 따를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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