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 소개

김 재 황 가지런한 녹색 시조집 '은행나무, 잎이 지다'

시조시인 2019. 3. 31. 12:37





[책머리에]

 

변하는 것과 안 변하는 것

 

 

 

 

 

내가 지금까지 문인의 길을 걸어오면서 변하는 것과 안 변하는 것을 크게 두 가지 겪었다. 그 중에 변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조의 모습이다.

나는 40여 년 동안 민족시(民族詩)인 시조(時調)를 공부해 왔다.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이후만 치더라도 30년이 넘는다. 나는 처음에 선배들로부터 시조를 배울 때 시조는 3612 음보(소절)만 맞게 쓰면 된다.”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물론, 종장에 있어서 첫 음보의 음절(글자 수)은 반드시 3이어야 하고, 둘째 음보의 음절(글자 수)5에서 7까지여야 한다고 배웠다. 게다가 그 외의 다른 음보들은 3이나 4의 음절에서 1을 빼거나 1을 더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조를 지어 오면서 구태의연(舊態依然)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지 안주(安住)하면 썩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모두 알다시피 시조는 정형시(定型詩)이다. 그러므로 정형에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에 빠졌다. 시조도 생명을 지닌 것이니만큼 변해야 한다고 여겼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으로 시조의 각 음절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 초장과 중장은 각 음보의 음절이 ‘3(또는 4), 4, 3(또는 4), 4’이고 종장은 ‘3, 5, 4, 3(또는 4)’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20여 년이 또 흘렀다.

이제는 또 변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형시 쪽으로 시조를 더욱 조여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래야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정형시가 되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나는 시조의 구성을 다시 한 번 조였다. , 초장과 중장은 각 음보의 음절을 ‘3, 4, 4, 4’로 하고 종장의 그 음절은 ‘3, 5, 4, 3’으로 하였다. 이는, 내가 지금 내세우는 가지런한 시조이다. 이게 내가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그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안 변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바라보는 나무의 모습이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무의 순박함을 사랑한다. 아니, 아낀다. 나는 그 빛깔을 아끼고 그 그늘을 아끼며 그 베풂을 아낀다. 그리고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 아낄 터이다. 이 세상에 나무보다 더 좋은 벗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노자(老子)가 쓴 도경(道經 28)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나온다.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知其營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이 뜻은 이름이 남을 알고 그 부끄럽게 됨을 지키면 하늘 아래 골짜기가 된다. 하늘 아래 골짜기가 되면 늘 그러한 베풂이 곧 넉넉하여서 통나무 같은 수수함으로 다시 돌아간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통나무라는 뜻을 비롯하여 천진한’ ‘본래의’ ‘다루다’ ‘다듬다’ ‘성실하다’ ‘순박함’ ‘질박하다’ ‘근원등의 뜻을 나타낸다. 이게 바로 나무의 속성이고 벗으로 나를 이끄는 매력이다. 나는 이 글자를 한 마디로 풀어서 통나무 같은 수수함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통나무 같은 수수함을 지닌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크나큰 행운이겠는가.

또 다른 장(32)에는 박수소 천하막능신야(樸雖小 天下莫能臣也)’라는 글귀도 나온다. 이는, “‘통나무 같은 수수함은 비록 작으나 하늘 아래 그 누구도 신하로 삼을 수 없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어찌 나무를 신하로 삼을 수 있겠는가. 나와 동등한 벗으로 아껴야 한다. 다른 장(15)에는 돈혜 기약박(敦兮 其若樸)’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이는, “‘도타움은 그게 마치 통나무 같은 수수함과 같다.”라는 뜻이다. ‘()’이라는 한자가 친구 사이가 도탑다를 뜻한다. 그러니 내가 어찌 나무를 벗으로 삼지 않고 배길 수 있었겠는가.

 

낙성대 산방에서 녹시 김 재 황




                                                                ∥차례

 

3 책머리에 - 변하는 것과 안 변하는 것

 



 

1부 나뭇잎 그릇

 

13가로수 길

14숲의 파랑새

15나무를 차지 마라!

16꽃필 날 언제

17나뭇잎 그릇

18어머니 같은 조팝꽃

19낙엽을 쓸며

20화살나무 열매

211

222

233

24숲 속에 앉아서

25지는 나뭇잎을 보며

26겨울나무

27

28거제수나무

29! 저 단풍

30목멱산을 오르며

31정자나무

32숲 아침

 

 

 

2부 나무 손바닥

 

35가지에 달린 감

36갈잎나무 꿈

37목련이 필 때

38구상나무를 보며

39나무 손바닥

40매화 앞에서

41셋이서 수목원을

424

435

446

45포도나무

46자귀나무

47능수버들

48느릅나무

49

50눈 시린 조팝나무

51어둠 닦는 매화나무

52제주 왕벚나무

53비린 물푸레나무

54선비 노각나무

 

 

 

3부 부러운 나무

 

57남산 숲에서

58향선나무 앞에서

59부러운 나무

60이 봄에 칠엽수가

61나무의 다리

62흰말채나무에게

637

648

659

66감나무

67아그배나무

68동백나무

69후박나무

70배부른 이팝나무

71옛사랑 석류나무

72쓰디쓴 소태나무

73파드득 사시나무

74꽃자리 능금나무

75향기로운 모과나무

76누워 있는 향나무

 

 

 

4부 회화나무 길

 

79나무 구멍

80작살나무 그 열매

81나뭇잎 부채

82회화나무 길

83능소화 저 꽃처럼

84소나무가 가는 길

85산사나무 저 열매

86팥배나무 사랑

87팔손이나무

88만병초

89굴거리

90서울 창덕궁 뽕나무

91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92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93가인 같은 반송

94우리 나무 앞에서

95나무에 핀 설화

96남산 위에 저 소나무

97하얀 동백

98잘생긴 백합나무

 

 

 

5부 은행나무 시인

 

101겨우살이의 바람

102굽은 소나무

103머리 감는 불두화

104은행나무 시인

105그 나무 그 도토리

106안 썩나, 옻나무

107불 밝힌 멀구슬나무

108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109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110속초 설악동 소나무

111예천 사부리 소나무

112예천 삼강리 회화나무

113포천 직두리 부부송

114경주 월성 육통리 회화나무

115해당화 노래

116나무가 눈물짓다

117꽃에게 내 마음을

118은행나무, 잎이 지다

119숲을 바라보며

120버드나무 그늘

 

121후기- 나무와 벗하다





[후기]

나무와 벗하다

 

 

 

 

 

내가 나무와 특별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다섯 살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에는 할머니를 따라 파주 시골의 큰아버지 댁에서 살았는데, 나는 틈만 나면 동산으로 가서 놀곤 하였다. 어느 날인가 산에서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보여드렸더니 깜짝 놀라셨다.

이걸 어째, 옻이 올랐구나!”

나는 꽤 오래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고생했다. 그렇다고 옻나무를 탓하지는 않았다. 옻나무를 괴롭힌 벌이라고 생각했다. 연민을 가졌다. 아무튼, 이로써 나무와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에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그래서 나무와의 특별한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학교 다닐 때는 지금의 경희궁지 근처인 신문로 2가에서 살았다. 집 앞의 큰길가에 줄지어 서 있던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그늘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구경하곤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소설가 심훈이 쓴 상록수를 읽게 되었다. 그 후로는 나무와 가깝게 벗하며 나무와 같은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학도 농학과로 정하게 되었다고 여긴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에, 나는 시골에서 나무와 벗하며 살려는 생각으로 농촌지도사(그 당시 4급 을류) 시험을 치르고 포천군으로 발령을 받았다. 포천은 무엇보다 잣나무가 많은 고장이다. 나는 잣나무를 벗으로 삼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 풋풋한 향기라니!

포천에서 2년 남짓 근무했을 때, 집안 사정으로 모 대기업의 경력자 공채 시험을 치르고 개발팀 팀장이 되었다. 팀원과 함께 밤나무 단지를 조성하였는가 하면, 내가 책임 맡은 농장에서 여러 나무 묘목을 생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일인삼역의 격무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니 나무와 가깝게 지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나는 넓지 않더라도 내 과수원을 가꾸고 싶었다. 19738, 나는 그때에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있었으나 끝내는 사표를 내고 말았다.

나는 농장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했다. 덧없이 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1978, 나는 제주도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전격적으로 서귀포에 자그마한 귤밭을 마련하게 되었다.

내가 가꾼 품종들을 대강 소개하자면, 조생온주로는 궁천’ ‘흥진’ ‘삼보조생’ ‘송산조생등이었고, 보통 온주로는 임온주’ ‘남강20’ ‘청도’ ‘실버힐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외로 특별히 나는 이 귤밭에 잡감포를 마련한 다음, ‘네이블을 비롯하여 레몬’ ‘금감자’ ‘금귤(낑깡)’ ‘팔삭’ ‘일향하’ ‘병귤’ ‘병감’ ‘개량지각’ ‘하귤(나쓰)’ 등의 여러 잡감 품종들을 심어 놓고 애지중지하였다.

또 서귀포동에 마련한 집의 앞뜰에 비파나무 한 그루와 겹동백나무 한 그루, 그리고 꽃치자나무 한 그루를 사다가 심어 놓고 아꼈다.

8년 남짓 열심히 일하며 귤나무와 살았는데, 집에 우환이 생겨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밭과 집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사정이었기에 모두 팔고 서울로 와서 서울 관악구 인헌동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 알다시피 인헌은 강감찬 장군의 시호이다.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낙성대가 있고,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집터에는 향나무가 서 있다. 나는 지금도 그 나무를 가끔 찾는다.

서울로 돌아온 후에는 나무 같은 시인이 되기로 하고, 1987년에야 비로소 한국문인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학의 신인상 수상으로 시조시인이 되었다. 등단하기 전에는 서울 시내의 나무들인 조계사 경내의 회화나무와 옛 창덕여교 교정의 백송등과 뜨거운 우정을 나누었다. 시인이 되고부터는 그냥 나무들을 만나러 다니기보다는 그들과의 이야기를 글로 나타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1988, 그 결심을 처음으로 이룬 게 산문집 비 속에서 꽃피는 꽃치자나무’(도서출판 반디)이다. 이 책의 내용은 주로 제주도에서 만난 나무 이야기이다. 그리고 1990420, 들꽃들을 노래한 녹색시집 바보여뀌’(도서출판 반디)가 출간되었고, 1991년에는 도서출판 외길사에서 산문집 시와 만나는 77종 나무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은 19921214일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1992년 청소년을 위한 우리들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모 일간지에서는 1면을 할애하여 나를 나무 시인으로 소개기도 했다.

1992년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여러 나무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125, ‘DMZ 및 인접 지역 생태계 학술조사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내가 그 위원회의 문학반장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학자가 6개월 동안 함께했는데, 그 일로 하여 민통선 지역의 많은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1992년에는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또 하나 생겼다. 다름이 아니라, 월간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12회 연재로 나무 이야기에 대한 원고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시조 한 편씩을 곁들여서 구상나무’ ‘붓순나무’ ‘후피향나무’ ‘녹나무’ ‘다정큼나무’ ‘노각나무’ ‘음나무’ ‘층층나무’ ‘말채나무’ ‘때죽나무’ ‘쥐똥나무’ ‘생강나무의 이야기를 썼다. 또한, 모 사보를 통하여 아포리즘 나무에게서 배운다6회로 나누어서 발표하였다. 이어서 1993년에는 시와 만나는 77종 나무 이야기와 쌍을 이루는 산문집 시와 만나는 100종 들꽃 이야기를 선보였다.

19946월이 되자, 나는 100종 나무의 작품이 실린 시조집 그대가 사는 숲’(도서출판 경원)을 펴냈다. 그리고 19958월부터, 영광스럽게도 나의 기행문 민통선 지역 탐방기가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6년 동안 수록되었다.

19984, 나는 시인론집 들꽃과 시인’(서민사)을 펴냈다. 이 책으로, 모두 25명의 시인과 25종의 들꽃을 소개하였다. 말하자면, 어느 시인이 어느 들꽃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지를 밝혀 놓았다. 예컨대 송수권 시인은 쑥부쟁이요, 박태진 시인은 까치수영이요, 황금찬 시인은 동자꽃이요, 박정만 시인은 제비꽃이요, 구상 시인은 둥굴레요, 조병화 시인은 초롱꽃이요, 천상병 시인은 양지꽃이요, 유안진 시인은 금낭화요, 박재삼 시인은 들현호색이요, 이성선 시인은 솜다리 등으로 그려져 있다. 이어서 10월에는 단수시조를 곁들이고 전설을 담은 꽃은 예뻐서 슬프다’(서민사)를 펴냈다. 이 책은 각 75종의 화목편화초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5월에는 도서출판 서민사에서 민통선 지역 생태조사에 대한 시와 기행문을 어린이용으로 쉽게 풀어서 한데 묶은 민통선 지역 탐방기를 펴내었다. 그해 12, 이 책은 환경부로부터 ‘1998년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되었다.

, 2001년에 목()시집 바람을 지휘한다’(신지성사)2003년에 초()시집 잡으면 못 놓는다’(문예촌)를 펴낸 일이 기억된다. 이 해에 특히 감동을 느낀 일도 있었는데, 평소에 내가 존경하는 이성교 시인께서 나에게 푸른 시인’(조선문단 발표)녹색 시인’(한국문학회 발표)의 두 작품을 선물했다. 너무나 과분한 일이었다.

2002년에 들어와서는 4월에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 도서출판 컴픽스가 제작하고 주식회사 컴픽스가 후원하는 녹색 문집 출간이 시작됐다. 그 시작으로 내 시조와 산문이 수록된 국립공원 기행이 세상을 보았고, 이어서 시조선집 내 사랑 녹색 세상을 비롯하여 감성언어집 나무와 산문집인 그 삶이 신비롭다등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 후로는 중국 고전에 심취하였는데, 2010년에 가서야 노자의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에 대한 이야기와 나무 이야기를 곁들인 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도서출판 상정)를 펴낼 수 있었다. 그리고 2012년에는 특기할 사항이 있다. , 나의 대학 동문 세 사람이 달마다 우리나라 전국에 퍼져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들을 만나러 다니기로 한 일이었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천연기념물 탐방이 이루어졌다. 20차의 탐방을 끝냈는데. 그동안에 만나 본 천연기념물(후보 나무 포함)70군데가 넘는다. (사진, 시조, 산문)를 묶어서 천연기념물 탐방, 나무’(신세림출판사)를 펴냈다.

2012년 이후로 몇 권의 책을 더 펴내었으나, 나무에 대한 본격적인 내용의 책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가깝게 지내는 문우들이 녹색문집을 왜 안 펴내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나무에 관한 작품들을 모아 보았더니 100편 정도가 되었다. 더욱이 이 작품들은 모두가 3장의 길이가 똑같은 정형의 가지런한 시조들이다. 어쩌면 이를 묶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저 단풍

 

 

                                    김 재 황 

 

내보인 네 슬픔이 어찌 그리 고운 건가

뜨거운 그 빛깔에 절로 마냥 눈 적시며

온 가슴 모두 내주는 이 가을을 맞는다.

 

나무도 겨울 앞에 외짝 날개 펴는 건지

서늘히 바람 불면 날린 옷깃 여며 가듯

잎들이 두 눈 못 뜨게 울긋불긋 물든다.

 

떠나는 이들 모두 긴 발자국 두고 가니

숲과 숲 놓인 곳에 아픔 자락 쓸리는데

하얗게 눈 내릴 때는 잡아 봐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