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서 출근을 할 때가 참 좋았다. 사람은 많이 움직여야 건강에 좋은데 요즘은 돌림병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니 몸도 마음도 우울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요즘처럼 실감날 때가 없었다.
이따금 친구들은 만나서 실없는 소리도 하고 세상일을 놓고 갑론을박도 해야 사는 재미가 있을 터인데, 밖으로 나다니기도 싫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꺼림칙하여 그저 방에서 책이나 읽고 노래나 들으며 지내니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이때 문득 나는 가슴이 찔린다. 공자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왈, 군거종일 언불급의 호행소혜 난의재(子曰, 羣居終日 言不及義 好行小慧 難矣哉).[위영공 16]
이는 다름 아닌,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모여 있으면서 하루 내내 말이 옳고 바름에 미치지 않고 자잘한 꾀나 부리기 좋아한다면 참으로 근심스럽다.’라는 뜻이다.
무작정으로 여럿이 만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어찌 내 등에 식은땀이 흐르지 않겠는가. 그렇다. 만나되, 말을 조심하고 명분이 있어야 한다.
물론, 나도 명색이 시인이니 틈틈이 시조를 짓는다. 그러다가 보니 어느 틈에 그 양이 꽤 모였다. 샘물도 자주 퍼내어야 맑아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얼마큼 작품이 모이면 묶어서 시조집을 펴내야 한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이번 시조집의 제목은 『서다3』으로 정했다.
이 시조집에는 2019년에 지은 작품이 반은 될 성싶다. 시조집 『지혜의 숲에서』에 담지 못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 정도가 2020년에 지은 작품들인데, 때때로 일부러 어둡지 않은 작품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현실이 돌림병으로 무겁고 힘들더라도 밝은 마음을 지니려는 내 처절한 노력이었다고나 할까?
전에도 밝힌 바가 있듯이, 내가 시조를 짓는 것은 ‘수신(修身)’의 방편(方便)이다. 그러니 게으르면 안 된다. 이게 내 본분이니, 내가 존재하려고 한다면 시조를 지어야만 한다. 그러나 안주해서도 안 된다. 끝없이 노력하여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나에게 이 시조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자님의 말씀 하나가 또 생각난다.
자왈, 포식종일 무소용심 난의재, 불유박혁자호, 위지유현호이.(子曰,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奕者乎, 爲之猶賢乎已.)[양화 22]
이는 다름 아닌,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루 내내 배부르게 먹고 마음 쓰는 바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근심스럽다. 장기나 바둑이라는 게 있지 아니한가. 그런 것이라도 하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오히려 낫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이 없다면 그처럼 막연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공자님 말씀대로 벗을 찾아가서 장기나 바둑을 둘 수 있다면 그래도 그런 대로 살 만한 세상이다. 그런데 나다니지도 말라고 하니 참으로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처음에는 공원이라도 열심히 다녀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이제는 그것마저도 시들해져 간다. 차츰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진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우울증’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생긴다. 이런 상황에 나에게는 시조가 턱 버티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더욱 품고 아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낙성대 산방에서
녹시 김 재 황
∥차례∥
3•책머리에 7•차례
제1부 두물머리 느티나무
19•자목련 19•수삼나무 20•벚꽃 지다 20•산수유 꽃 21•샘물 21•길상사에서 22•오아시스 23•송암의 족자
24•빅토리아 수련 25•커피를 마시며 26•두물머리 느티나무 27•고래 죽다 28•에어컨 29•보일러 30•집시처럼
31•인헌정 32•어느 가로수 33•흐르는 길
제2부 춤추는 인형
37•흰철쭉 37•항주 서호에서 38•내가 강아지? 38•동백, 꽃이 질 때 39•가마우지 39•아카시아 꽃
40•코스모스 길 41•펭귄 걸음 42•잔치국수 43•춤추는 인형 44•보라성게 45•천둥지기 46•기러기 날다
47•가을 산에서 48•무인도 49•사막 꽃 50•구절초 51•지게 지다
제3부 보랏빛 향유
55•나이 55•안 되는 것 56•까마귀 솟대 56•나목 명상 57•잠자리 57•술꾼 그 58•범종 소리 59•겨우살이
60•보랏빛 향유 61•술 62•장어구이 63•층층나무 64•관악산 65•바다를 안고 66•가리비 67•수크령
68•아내의 생일 69•하늘 가까이
제4부 화살나무 앞에서
73•석양 73•하나 둘 셋 74•풍죽가 74•꽃 진 단풍나무 75•호수 75•하루 76•파도 속으로 77•장미의 노래
78•박주가리 79•오미자나무 80•한파 경보 81•막걸리 82•화살나무 앞에서 83•토끼섬의 문주란
84•팽나무 85•산도라지 86•대나무 숲 87•자갈길
제5부 우한에서 온 바이러스
91•폐사 91•티눈 92•매미 92•산나리 93•여름 낮 93•오도 94•조선소나무 95•풍랑 96•터널 97•언덕
98•촛불 99•샹그릴 100•독버 101•우한에서 온 바이러 102•무당벌 103•포인세티 104•코브라
105•포장마차
제6부 두렁에 서다
109•연주암 노을 109•채석 110•파 110•얼 111•슬 111•지게 112•꽃다 113•물소 114•꽃향기
115•두렁에 서 116•두렁허 117•저녁놀 따 118•다람 119•품귀 마스 120•제비꽃 노래
121•별꽃 앞에 122•미운 배 123•나이의 빛깔
제7부 까마귀 짖다
127•질경 127•바랭 128•살자니 괴롭 128•경 129•내 129•두 손녀에 130•뉴트리 131•가야금 소리
132•삿갓 쓴 시 133•모종내 134•이 풀 노루 135•새벽 136•까마귀 짖 137•인 138•거리 두기
139•자전거 타 140•공 141•가장 위대한 것
제8부 비는 내리고
145•소나기 설 145•흰나 146•겨울 146•기념사 147•시인의 147•중절모 148•새로운 달타령
149•점심 약 150•집을 짓 151• 152•비는 내리 153•뇌성벽 154•근황을 묻기 155•연꽃 필 때
156•귀뚜라미 노 157•도자기 빚 158•박꽃 피 159•꿀벌이 그립다
제9부 솔숲 속으로
163•보름 163•태풍이 수상하 164•싹을 틔우 164•동 165•흔들의 165•약에 대하 166•낙성대공원을 돌며
167•철쭉 축 168•거북 169•솔숲 속으 170•소태나무 솟 171•공원에서 만나 172•우산에 대하여
173•강의 노 174•달 175•달마시 176• 177•코뚜레
제10부 시골에 살면
181•낙성대 여 181•고추잠자 182•때를 기다리 182•달을 마시 183•웃음 참 183•표고버섯을 보며
184•티베탄 마스티 185•흰철쭉 앞에 186•참 187•도꼬마 188•거머 189•시골에 살면
190•잠자리 이야 191•잠자리가 아니라 192•밀 193•하늘다람 194•까옥 까 195•머리 깎은 회양목
제11부 그저 나답게
199•늙어도 청춘 199•마님이 돌쇠를 200•작설차 200•갯메꽃 201•바보 매미 201•퐁당
202•수달에게 203•비비추 마음 204•당부 205•그저 나답게 206•직박구리 이야기 207•고구마
208•복날이 오면 209•팔순을 앞에 두고 210•토끼 이야기 211•파문 212•다락집 이름 짓다
213•인헌각에서
제12부 책을 읽는 나비
217•하지 절기 217•육이오 전쟁 칠십 주년에 218•백합꽃 218•비 그치고 장미 219•자진
219•시조 하나에 220•개꿈 221•불이문 222•짚방석 223•질경이의 삶 224•두꺼비 이야기
225•나도 자연인 226•책을 읽는 나비 227•오죽 앞에서 228•스텝퍼 229•향기에 대하여
230•메기의 추억 231•허공을 말하다
233•저자 녹시(綠施) 김재황(金載晃) 연보
'내 책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지런한 시조집 '어치 논다' (0) | 2022.01.02 |
---|---|
팔순기념 시조선집 '하나 둘 셋' (0) | 2022.01.02 |
김재황 가지런한 시조집 '지혜의 숲에서' (0) | 2020.02.12 |
김 재 황 가지런한 녹색 시조집 '은행나무, 잎이 지다' (0) | 2019.03.31 |
김 재 황 가지런한 시조집 '서다2' (0) | 2019.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