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탐방기1

시조시인 2005. 9. 26. 07:13
 

남대천의 저습지


   김 재 황

                                

  고려의 옛 도시, 경원선(京元線)과 금강산 철도의 분기점이 있으며 한국전쟁의 격전지로 ‘철의 삼각지대(三角地帶)’ 일각을 이루었던 철원(鐵原). 그 동안 사람의 발길이 그리 많이 닿지 않았던 철원 비무장 지대의 자연 생태 관찰을 하기 위해, 3월 27일 새벽 6시, 우리는 차를 달렸다.

 철원은 강원도 북서부 영서지방 북단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평강군과 회양군, 서쪽으로 경기도 연천군과 포천군, 남쪽으로 화천군, 그리고 동쪽으로는 양구군에 각각 접하고 있다.

  오후 2시 경, 드디어 우리가 탄 차가 민통선 안으로 들어섰다. 이른 철이기도 했으나, 사람이 북적거리는 도시에서만 살다가 한적한 곳으로 찾아드니, 사방이 어찌나 고요한지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차가 달리는 중에 길가를 보니, 곳곳에 둘려 있는 철조망과 그 철조망에 매달려 있는 ‘지뢰 지역’이란 표지가 지금도 휴전 상태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3년 1개월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드디어 휴전 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됨으로써 이 날을 기해 일단 총성은 멎었다. 그로부터 어언 40여 년. 이 휴전선은 멀리 서해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백령도에서 시작하여 동해의 고성에 이르기까지 동서로 155마일을 가로지르며, 이 군사분계선에서 각기 2킬로미터씩 물러나 남북 한계선을 긋고는 그 사이 4킬로미터를 비무장 지대로 설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철원 평야에는 이미 많은 논과 밭이 개간되어 있었다. 최근 민통선 북방의 입주영농과 출입영농이 활발해지면서 대규모 저수지가 건설되고 그에 따라 계속 경지면적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철원은 사방이 산으로 둘려져 있는 곳이다. 서쪽으로는 금학산(金鶴山)이요, 동쪽으로는 명성산(鳴聲山)이며, 또 동북쪽에는 대성산(大城山)과 적근산(赤根山), 그리고 백암산(白岩山)이 있다.

  게다가 철원은 한탄강(漢灘江) 본류와 북한강(北漢江)의 본류, 지류가 있는 곳. 군사분계선 이북에서 발원된 한탄강이나 김화(金化) 남대천의 원류가 흐른다. 한탄강의 본류는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정연리(亭淵里) 남쪽으로 내려와서 동송읍과 갈말읍의 경계를 따라 경기도 연천 쪽으로 흘러가고, 김화 남대천은 한탄강으로 유입된다.

  이처럼 산이 좋고 물이 좋은 철원, 철원 평강 용암지대는 토질이 비옥하며 ‘학 저수지’를 비롯한 관개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농산물이 많이 생산될 뿐만 아니라, 소(牛)가 많이 사육되었고 특히 세포(洗浦) 부근의 벌판은 면양(緬羊)의 사육지로 이름이 높았다.

  철원 지역의 남동부는 산야지대를 이룬다. 그 곳 대부분은 화강암 또는 화강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토양은 사양토, 미사토, 건성 갈색의 삼림토가 많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대부분이 천연 낙엽 활엽수림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으며, 더구나 이들은 거의 사람에 의해 피해를 받은 2차림으로 아까시아나무가 많이 눈에 띄었다.

  아까시아나무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00년 초로 짐작되며, 원래 들어오기는 연료림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황폐지 복구용으로 전국에 식재되었다. 내한성이 강하고 내염성과 내공해성도 강하나, 맹아력이 너무 좋아서 다른 나무에 피해를 준다.

  우리는 달리다가 저습지 갈대밭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민통선 지역 월하리. 시름이 멍석처럼 펼쳐져 있는 저습지에는 바싹 마른 갈대가 바람에 흔들거려 목마른 사색을 하며,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억센 발에 밟히지 않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 한편 길가에는 물억새도 마른 몸으로 도열해 있었다. 물억새 또한 습지에서 무리를 지어 자란다. 잔이삭에 까끄라기가 없는 것으로 참억새와 구별할 수 있다.

  그 때, 마주해 자리잡은 지뢰밭, 숲을 이뤄 적군처럼 일어선 아카시아나무 위에서 까치 한 마리가 날았다. 그 날갯짓하는 곳을 따라 먼 세월을 거슬러 오르면 고려의 옛 도시에 닿을 것인가. 이 나라 이 땅이 하나로 통일된 시대,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길을 만날 것인가.

  우리는 다시 차를 달렸다. 옛날의 영화는 어디 가고 이처럼 폐허가 된 철원의 모습에 감회가 새로웠다. 고구려 때는 철원(鐵圓)이라든가 모을동비(毛乙冬非)군이라고 불렸다는 이 곳.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는 철성군(鐵城郡)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궁예가 태봉국(泰封國)을 세울 때는 국도(國都)가 되었으며, 지금의 철원군이 된 것은 1895년 고종 32년의 일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차는 월정리에 도착했다. 월정리에는 당그라니 낡은 역사(驛舍)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월정리역은, 지금은 신탄역에서 중단된, 경원선의 역 중에서 가장 휴전선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월정리역 끊어진 철길 옆에는 벼만 앙상하게 남은 철마가 하염없이 녹슬고 있었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씌어진 입간판만이 청진까지 653킬로미터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척에 고향을 두고도 못 가는 평강의 실향민들이 세운 통일기원 망향비 앞에서 나는 긴 묵념을 올렸다. 내내 목 쉰 기적 소리가 이명으로 울렸다.

  휑한 눈으로 우리를 전송하는 월정리역을 뒤로 하고 우리는 또 차를 달렸다. 맑은 도랑이 여기 저기 흘렀다. 한 눈에 물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원은 내륙지방이면서 지대가 높기 때문에 기온차가 큰 대륙성기후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지형적으로 바람을 받는 지역이 되어 비가 많이 내리므로 우리나라 3대 다우지역에 해당되며, 특히 여름철에 강우량이 많은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한탄강의 북서부 평야지역은, 약한 구조선(構造線)을 따라 갈라져서 솟아 나온 현무암(玄武岩)이 이미 형성되어 있던 골짜기 위를 흘러내려 생긴 용암대지(熔岩臺地)의 일부가 되므로, 습지를 많이 만들고 있다. 이렇게 분출된 현무암은 한탄강을 따라 흘러내리기 시작해서 임진강의 고랑포까지 이른다.

  그렇기에 이곳, 갯벌로 뒤덮인 남대천은 민물고기의 천연 전시장이다. '갈겨니'  '종개' '묵납자루' '돌고기' '쉬리'  '새미'  '참마자' '배가사리' '가는돌고기' '큰납자루' '참종개'  '다목장어' '줄납자루'  '밀어' 등이, 개체수는 적으나, 비교적 풍부한 종 분포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대마리의 한 작은 웅덩이에 도착했다. 물이 괸 웅덩이는 눈을 감고 깊은 수심에 잠겼는데, 물 속을 들여다보니, 내가 어렸을 적에 논에서 자주 만났던 우렁이들이 아주 많았다. 아, ‘우렁이 각시’ 이야기가 생각나는 그 우렁이. 동글동글한 그 모습이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웠다. 그 날, 우리는 그 웅덩이에서 버들치와 묵납자루, 그리고 모래무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철원 지역은 물고기에 비해 식생(植生)은 빈약한 편이다. 한국전쟁의 피해로 임상(林相)이 파괴되어 침엽수의 비중이 극히 적으며 그 축적량도 전국 평균에 미달된다. 즉, 1헥타당 축적량은 1979년에 13.19세제곱킬로미터로, 전국평균 16.8세제곱킬로미터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비교적 식생이 나은 곳은 금학산으로,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발 260미터에는 '신갈나무' '소나무' '개옻나무' '생강나무' '참싸리' 등 41종이, 해발 270미터에는 '참피나무' '물푸레나무' '매자나무' 등 모두 55종이, 해발 340미터에는 '산벚나무' '느릅나무' '생강나무' 등이, 그리고 해발 370미터에는 '귀룽나무' '고로쇠나무' '고광나무' '국수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다 한다. 그 날, 웅덩이 가에 갯버들이 버들강아지를 내밀고 있는 귀여운 모습을 만나, 우리는 어느 정도 위안을 받았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학 저수지’를 향해 다시 차를 달리기 시작했다. 철원 평야는 현재 남한 지역에서 귀중한 두루미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두루미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남한지역이 약 160마리, 북한지역이 약 210마리 정도가 월동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는데, 이는 지구상 생존집단의 약 23퍼센트에 해당된다고 한다. 잘 보호해야만 한다.

  얼마를 달렸을까.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작은 수로에서 다정히 노닐고 있는 원앙이 한 쌍을 발견하였다. 멀찍이 차를 세우고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지만, 원앙이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맑은 물이 졸졸 노래하며 흐르는 도랑의 징검돌 위에는 다만 소루쟁이 한 포기가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울까. 소루쟁이는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잎이 넓은 버들잎을 닮았다. 옛날에는 시골에서 흔히 보던 풀이다. 꽃은 6월 경에 피는데, 연둣빛 잔꽃이 많이 원추 꽃차례를 이룬다. 이 풀 또한 습지에 많이 나며,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한참을 더 달려서 우리는 ‘학 저수지’에 도착하였다. 푸른 물이 맑게 고여 거울같이 닦였는데, 학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작은 무리의 청둥오리와 몇 마리의 흰뺨검둥오리가 날아들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차를 달려, 동쪽으로 향했다. 철원읍의 동쪽에는 동송읍(東松邑)이 있고, 그 곳에는 동송저수지가 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4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맑게 고인 저수지 수면은 거울같이 맑았다. 그 가에 갯버들이 무리를 이루어 그 귀엽기 이를 데 없는 버들강아지를 내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버들강아지를 만나, 벌거벗고 개울에 들어가 물장구치던 어린 시절을 한동안 그렸다. 이 버들강아지야말로 아직껏 자연으로 남아 있는 우리들 사랑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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