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을 밝혀 드는 고마리
김 재 황
9월 19일, 우리 일행은 강화 지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민통선 북방 교동도의 생태조사를 실시하기 위해 차를 몰았습니다. 우리가 강화도 창후 선착장에 도착한 것은 아침 8시 경으로, 우리는 얼마를 기다리지 않아서 교동도 월선포(月仙浦)로 승용차를 배에 싣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교동도에 도착한 것은 8시 30분경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두에 나와서 강화도로 건너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섬 전체가 민북지역인 교동도는, 동쪽은 강화, 서북쪽은 황해도 연백군, 그리고 남쪽은 삼산면인 석모도(席毛島)와 마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차를 달려서 대룡리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길가에서 군락을 이루며 꽃을 피우고 있는 고마리와 만났습니다.
횃불을 들고 있다
자그마하지만 당당한 눈빛
용기 있는 병사들처럼
저무는 들판에
피 끓는 함성이 살아난다
―졸시 ‘고마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고마리의 모습을 보면, 금방이라도 ‘와와’ 함성이 들리 것만 같습니다. 풀잎이 일어서고, 달려가고, 적을 향해 공격합니다. 풀잎 하나하나가 전장에서 용감히 싸우는 병사처럼 당당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항상 무리를 이루어서 자라는, 고마리를 만날 때에 더욱 선명해집니다. 고마리의 줄기는 모가 졌으며, 작은 가시를 숨기고 있습니다. 이 가시는 예사 가시가 아니라, 끝이 날카롭게 꼬부라져 있어서 갈고리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잎은, 밑부분이 날개처럼 벌어져 뾰족하고, 앞부분도 예리하게 창(槍)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막질인 턱잎이 또한 칼집의 형상을 보여 주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초가을, 줄기 끝에 작고 불그스름한 여러 개의 꽃이 둥글게 뭉쳐서 피어나는데, 그 두화(頭花)마저 전쟁터에서 막 혈전을 치른, 병정의 투구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 고마리의 병정들은 어디를 향해 진격하고 있을까요.
나는 불현듯 조선조 효종(孝宗)때의 이완(李浣)장군을 기억해 냅니다.
장군의 자는 징지(澄之)요, 호는 매죽헌(梅竹軒)이요, 시호는 정익(貞翼)이며, 본은 경주로, 병자호란 때에 정방산성(正方山城)의 싸움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효종은 병자호란의 수치와, 몸소 오랫동안 심양(瀋陽)에 볼모되었던 한을 씻고자, 이완 장군을 훈련대장으로 삼아서 청나라를 치는 북벌(北伐)의 일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효종의 승하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크나큰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이 고마리의 군대야말로 천추의 한을 품고 죽은 이완 장군과 그 병졸들이 환생하여, 없어진 지 이미 오랜 청나라를 향해, 지금 이렇게 진격의 나팔을 불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요. 나는 풀잎 가까이 귀를 기울입니다. 멀리 보무도 당당하게 북소리가 들리고, 말울음 소리와 어울려서 말발굽 소리 또한 요란합니다.
고마리 풀 한 포기가 일당백(一當百)의 용사입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으려는 굳은 결의를 몸에 지녔기에 말입니다. 그래서 고마리의 풀잎을 뜯어서 입에 넣고 씹으면, 톡 쏘는 매운 맛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고마리의 군대에게는 패배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승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화살에 맞고 창에 찔려도 피를 흘려서는 안 됩니다. 고마리의 잎을 비벼서 상처에 바르면 지혈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를 침략해 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적들이 많습니다. 아니, 그들은 이미 우리나라도 쳐들어와서 이 강토를 짓밟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만, 무력적 침략이 아니라, 경제적 침략이라는 게 다를 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궂은 일을 싫어하고, 힘든 일을 멀리하고, 또 위태로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래서야 어찌 벌떼처럼 쳐들어오는 적군을 막아 낼 수 있단 말입니까. 이완 장군은 북벌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6년이라는 세월을 피땀 흘려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였습니다.
나는 고마리를 보며, 다시는 그러한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전보다 더욱 자기의 맡은 임무에 충실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