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들꽃8

시조시인 2005. 10. 4. 21:08

 

 

                                      깊은 불심을 나타내는 연꽃


                                                           김 재 황

 

  거울같이 맑은 물 위에서 연붉은 빛을 머금고 피어나는 연꽃은 아름답다 못해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연꽃은 일명 ‘만다라화’(曼茶羅花)라고 부른다. 불가(仏家)에서 무척이나 존중하는 꽃이다. ‘뇌지’(雷芝) 또는 ‘연하’(蓮荷)라는 호칭도 지니고 있으며, '장수' '건강' '명예' '행운' '군자' 등을 상징한다. 꽃말은 ‘순결’이고,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연꽃은 붉은 빛깔의 꽃만 있는 게 아니라, 흰 빛깔의 꽃도 있다. 하지만 연꽃이라고 하면 연붉은 빛의 송이가 먼저 떠오른다. 그 빛깔과 그 모습이 더없이 아름다운 반면에, 어쩐지 크나큰 슬픔을 머금고 있는 듯해서 연민의 정을 더한다. 게다가 꽃줄기에 가시가 돋아 있어서 아픔까지 맛보게 한다.

 

  옛날, 먼 아라비아 나라에 마음씨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 당시에 아라비아는 물이 귀했으며, 샘물마다 주인이 있어서 물을 팔고 샀는데, 그 소녀는 푸른 물이 솟아나는 샘물을 가지고 있었다. 소녀의 샘물은 참으로 맑고 시원했으므로, 사막을 건너 온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 샘물을 원했기에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나누어 주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한 젊은이가 와서 물 한 모금을 청했다. 그 행색으로 보아서 물값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았지만, 마음씨 착한 소녀는 친절히 물을 떠서 그에게 건네었다. 젊은이는 물을 맛있게 마시고 나서는 보답의 뜻이라며 몸에 지니고 있던 향수를 물그릇에 부어 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왕자가 왕자비를 구하기 위하여 샘터로 온다는 소식이 널리 퍼졌다. 그 소문을, 그 곳 샘터를 관장하는 성주도 듣게 되었다. 성주는 아주 욕심이 많았으므로, 자기의 딸을 푸른 샘물 앞에 앉혀 놓고는, 마음씨 착한 소녀는 먼 곳으로 쫓아 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왕자 일행이 푸른 물이 솟는 샘터에 도착했다. 성주의 딸은 얌전히 물을 떠서 왕자에게 주었다. 왕자는 물그릇을 받아 들고 자세히 냄새를 맡아 본 뒤에 말했다.

  “이 물그릇이 아니야, 향기가 없단 말이야.”

  왕자는 크게 실망을 하고는, 궁궐로 돌아가 버렸다. 낭패를 본 성주는, 독한 마음을 품었다. 마음씨 착한 소녀를 찾아가서, 향내가 나는 물그릇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끝내 마음씨 착한 소녀를 연못 속에 밀어넣고 말았다. 그 슬픈 소식은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고, 마침내 왕자의 귀에까지 전달되었다. 왕자가 말을 달려서 그 연못으로 찾아갔을 때는, 다만 마음씨 착한 소녀의 모습으로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나 있을 뿐이었다.

 

 연꽃은 7월에서 8월에 걸쳐서 꽃을 보인다. 꽃줄기 끝에 한 송이씩 달리고 꽃받침은 녹색인데 일찍 떨어진다. 꽃잎은 거꾸로 된 달걀꼴이다. 한낮에 오므리는 모습이 수줍음을 나타낸다.

  연꽃은 여러해살이 물풀이다. 뿌리줄기는 흰 빛을 띠고 굵으며 마디가 있다. 원기둥꼴이며 가로 뻗는데, 가을철에는 특히 끝부분이 굵어진다. 연꽃은 꽃도 꽃이려니와, 그 잎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 모습과 그 마음이 모두 전설 속의 그 아름다운 아라비아 소녀를 떠올리게 만든다. 연잎은 뿌리줄기에서 돋아 나와 물 위에 가볍게 뜨는데, 물에 잘 젖지 않고, 둥그런 방패 모양에 사방으로 퍼진 잎맥을 내보인다. 그러므로 누구나 만나면 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잎자루에는 짧은 가시가 있어서 엄한 기운이 감돈다.

  땅속줄기는 예전부터 식용으로 사용해 왔다. 즉, '저냐' '죽' '정과' 따위를 만들어서 먹었다. 또한 어린잎을 데쳐서 쌈으로 먹기도 했다. 사실, 연꽃은 이용가치가 매우 높은 식물이다.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모든 부분이 약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연잎은 복통을 멎게 하고, 산모를 안태(安胎)하게 하여 오혈을 없애 준다고 한다. 특히 연잎으로 만든 연죽은, 정력을 증진시키는 데에 아주 놀라운 효력이 있다고 전한다.

  중국 청나라 말기에 홍수전(洪秀全)이라는 사람이 이 연죽을 상용하였는데, 수백이나 되는 여인들을 거느리고 살았다고 한다. 그밖에도 중국 역대의 풍류 황제들 중에는 이 연죽을 먹고 쇠약해진 정력을 되찾은 이들이 많다고도 한다.

  연뿌리는 단백질과 전분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요리로서 활용가치가 클 뿐더러 차를 만들어서 복용하기도 했다. 차는 여자들의 대하증 치료의 효과가 높을 뿐만 아니라, 미용보품(美容補品)으로 얼굴과 살결의 색깔이 좋아지고 여드름과 주근깨 등을 없애는 효능을 지녔다고 한다.

  꽃은 꽃망울과 꽃수술까지 약재로 쓰는데, 심장을 진정시키고 몸을 경쾌하게 하며 안색을 곱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연꽃의 종자인 연실(蓮実)은, 기력을 길러 주고, 백 가지 병을 없애 주는 특효가 있다고 한다. 즉, 오장을 보하고 갈증을 없애며 이질을 다스린다. 또한 심신을 편하게 하고, 많이 먹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러나 날것으로 먹으면 헛배가 부르게 되므로 반드시 쪄서 먹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방에서는 연실의 딱딱한 과피를 벗겨 버리고 나서 달여서 마시도록 한다. '신체허약' '설사병' '몽정' '자양강장제' '보음양혈제' 등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연실은 아주 수명이 길어서 1천 년 이상이나 수명을 유지한다고 하며, 그 발아율도 높아서 거의 100%에 가깝다고 한다. 그만큼 껍질이 단단하고, 함수량이 적어서 저호흡을 할 수 있다. 이는, 그만큼 단백질의 내구력이 높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되고 있다. 연실은 일명 ‘연밥’이라 하고, 혹은 ‘연자’(蓮子)라고도 부른다.

  연즙(蓮汁)은 각혈이나 토혈을 멎게 하고, 밀과 함께 섞어서 먹으면 살이 찐다고 하며, 기생충 예방의 효력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보아서 아름답고 먹어서 우리 몸에 좋은, 연꽃을 이 땅에 많이 심어야 하겠다. 

'들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꽃10  (0) 2005.10.07
들꽃9  (0) 2005.10.07
들꽃7  (0) 2005.09.27
들꽃6  (0) 2005.09.26
들꽃5  (0) 2005.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