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주름진 비비추
김 재 황
우리집 정원에는 비비추가 그득합니다. 씨가 바람에 날려서 왔는지, 처음에는 비비추 몇 포기가 화단 가에서 얼굴을 삐죽이 내밀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애지중지 가꾸었더니, 한두 해 동안에 온 화단을 덮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겨울 동안 내내,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던 화단에서 봄이 오자마자 쑥쑥 얼굴을 내미는 비비추를 만날 때마다, 나는 생명의 신비를 느낍니다. 얼마나 땅 속에서 기다려 왔던 봄이기에, 비비추는 그처럼 성급히 싹을 내밀까요. 그것은 아마도 비비추가 그만큼 긍정적인 삶을 살기 때문일 겁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옥잠화와 비비추를 곧잘 혼동하고, 게다가 어떤 사람은 산옥잠화를 가리켜서 비비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둘은 아주 다른 품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산옥잠화와 비비추 모두가 7월에서 8월까지 사이에 꽃을 피우고, 더군다나 꽃의 생김새마저 흡사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잎사귀의 모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산옥잠화는 보통으로 잎의 길이가 길고 폭이 좁은 반면에, 비비추는 잎의 길이가 산옥잠화보다 일반적으로 짧고 폭은 넓습니다.
또 어느 사람은 산옥잠화를 가리켜서 주걱비비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주걱비비추는, 비비추보다도 폭이 2배나 넓을 뿐만 아니라, 꽃들이 한 쪽을 향해 피며, 꽃의 끝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비비추는 종류가 많아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일일이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그 이름을 열거해 보면, 참비비추를 비롯하여 '비비추' '주걱비비추' '이삭비비추' '좀비비추' '흰비비추' '방울비비추' 등이 있습니다.
더위를 먹으며 피어난
꿈을 본다
이 땅에서 목숨을 얻고
이 땅을 노래하다가
이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늘로 모여 앉은 목숨들
나는 안다
서로 몸을 비비며
살고 싶은 소망을 안다
한 무더기로 돋아난
그 꿈의 가슴을 안다
―졸시 ‘비비추’
비비추는 산의 계곡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년초로서 뿌리에 모여 난 난형의 잎이 곱습니다. 잎에는 여덟 개 내외의 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을 보이기 때문에 힘찬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화관이 6개로 갈라진 연한 자색의 꽃에서는, 여인의 파란 심상을 만납니다.
옛날, 신라 율리(栗里)에 설씨녀(薛氏女)가 있었습니다. 민간 여자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문벌이 없는 외로운 집안에 태어났지만, 모습이 단정하고 지조와 행실이 아름다웠습니다.
진평왕(眞平王) 때, 설씨녀의 아버지가 정곡(正谷)을 지키는 당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설씨녀는 늙고 병든 아버지를 차마 멀리 보낼 수가 없었기에 수심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때, 설씨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사량부(沙梁部)에 사는 가실(嘉實)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가실은 설씨녀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원컨대, 불초한 몸이지만, 아버님의 병역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설씨녀는 기뻐하며, 이를 아버지께 알렸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도 감격했습니다.
“기쁘고도 송구하네. 자네의 은혜를 갚고 싶네. 내 어린 딸을 아내로 맞음이 어떠하겠나?”
설씨녀가 가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방어하는 곳으로 갔다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택일하여 성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가실은 6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에 이미 아흔을 넘긴 설씨녀의 아버지는, 딸을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안 설씨녀는 굳게 거절했습니다.
“이제 와서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 어찌 사람의 정의(情誼)라고 하겠습니까?”
도망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설씨녀 앞에 극적으로 가실이 돌아왔으니, 이는 하늘의 도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