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모란
김 재 황
앞을 못 보시는 할머니
오히려 마음의 눈이 뜨이시어
온 세상이 환하다.
맑은 햇빛 날아드는 소리 들으시려고
날마다 창을 닦으시고
밝은 얼굴로 오는 발걸음 맞으시려고
마루를 열심히 닦으신다.
줄곧 비탈진 텃밭에
더듬어서 심어 놓으신 고추 몇 포기
매운 세상살이처럼
벌겋게 익은 열매 힘껏 달고 있건만,
마을로 흐르는 길
다시 거슬러 올라 머무는 마당 어귀
남에게 예쁘게 보이라고
수줍은 맨드라미 고운 머리 빗기신다.
불 안 켜신 채로 한 땀 한 땀
꿰매어 오신 삯바느질
그 팔십 평생이 내 어둔 마음밭에
환한 모란으로 피어나신다.
'빛을 향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끗함을 위하여 (0) | 2006.01.02 |
---|---|
일하는 손을 위하여 (0) | 2006.01.01 |
조용한 한때를 위하여 (0) | 2005.12.30 |
고향을 그리며 (0) | 2005.12.28 |
한 해를 보내며 (0) | 2005.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