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하여

베품을 위하여

시조시인 2005. 12. 31. 00:12
 

     환한 모란



                        김 재 황



앞을 못 보시는 할머니

오히려 마음의 눈이 뜨이시어

온 세상이 환하다.


맑은 햇빛 날아드는 소리 들으시려고

날마다 창을 닦으시고

밝은 얼굴로 오는 발걸음 맞으시려고

마루를 열심히 닦으신다.


줄곧 비탈진 텃밭에

더듬어서 심어 놓으신 고추 몇 포기

매운 세상살이처럼

벌겋게 익은 열매 힘껏 달고 있건만,


마을로 흐르는 길

다시 거슬러 올라 머무는 마당 어귀

남에게 예쁘게 보이라고

수줍은 맨드라미 고운 머리 빗기신다.


불 안 켜신 채로 한 땀 한 땀

꿰매어 오신 삯바느질

그 팔십 평생이 내 어둔 마음밭에

환한 모란으로 피어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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