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42) 군에서 휴가를 얻다

시조시인 2008. 10. 6. 05:55

(42)

  어느 날이었습니다. 코르시카에 있는 어머니에게서 나폴레옹에게로 한 통의 편지가 달려왔습니다. 그 편지인즉, 집안 살림이 몹시 어려우니 와서 좀 도와주면 좋겠다는 내용입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군인의 신분인 나폴레옹에게 그런 도움을 청했겠습니까? 여러분도 초미지급의 사정인 줄을 짐작했겠지요. ‘초미지급’(焦眉之急)은 ‘눈썹이 타는 것과 같이 매우 위급한 경우’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소미지급’(燒眉之急)이라고도 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을 기르는 데에 온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여자의 몸입니다. 그렇기에 불가항력일 경우도 많았을 겁니다. ‘불가항력’(不可抗力)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우발사고(偶發事故) 따위와 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힘이나 사태’를 가리킵니다. ‘천재지변’은 ‘자연현상으로 일어나는 재앙이나 괴변’을 말하고, ‘우발사고’는 ‘뜻밖에 발생한 사고’를 말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를 생각하며, 편지를 읽고 있는 나폴레옹의 눈에서 어느새 소리 없이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망연자실’(茫然自失)은 ‘넋이 나간 듯이 멍함’을 나타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의려지정이 가슴에 닿아서 늘 콧등이 시큰해 오던 나폴레옹이었지요. ‘의려지정’(倚閭之情)이란, ‘자녀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어머니 마음’을 가리킵니다. 다른 말로는 ‘의려지망’(倚閭之望) 또는 ‘의문이망’(倚門而望)이라고도 합니다. 중국의 전국책(戰國策)에 씌어 있는 말입니다.

‘가엾은 어머니, 제가 곧 코르시카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가 힘껏 일해서 어머니의 어려움을 덜어 드리겠습니다.’ 

출천지효를 지닌 나폴레옹은, 등온하정을 굳게 다짐했습니다. ‘출천지효’(出天之孝)는 ‘하늘이 낸 효자’란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이르는 말이고, 동온하정‘(冬溫夏凊)은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그리고 더운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린다.’는 뜻으로, ‘부모를 잘 모시어 섬기는 도리’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를 줄여서 ‘온정’ 또는 ‘동정’이라고도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망운지정인가요. ‘망운지정’(望雲之情)은 ‘멀리 구름을 바라보며 어버이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자식이 객지에서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는, 다시 글자를 바꾸어서 ‘망운지회’(望雲之懷)라고도 합니다.

나폴레옹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합니다. ‘지극(至極)하다.’는 ‘어떠한 정도나 상태 따위가 극도에 이르러서 더할 나위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효도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수백 번을 말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이렇듯 어머니에게 지극한 효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유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나관중의 삼국지 주인공인 바로 그 ‘유비’입니다.

유비(劉備)의 자(字)는 현덕(玄德)입니다. 탁현(涿縣) 사람으로, 중산정왕 유승(中山靖王劉勝)의 후예입니다. 그의 인품과 면모에 대하여 박종화의 삼국지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말이 적고, 성정이 화하고 너그러웠다. 기쁜 일이 있으나 역겨운 일이 있으나, 겉으로 얼굴에 빛을 나타내지 아니했다. 뜻이 항상 커서 천하의 호걸 사귀기를 좋아하는데, 키는 팔 척이나 되고 귀는 커서 어깨까지 내려왔으며, 팔이 길어서 손이 무릎을 지났다. 눈이 크니 자신의 귀를 볼 수 있고, 얼굴은 관옥같이 흰데, 입술은 윤이 나서 기름을 바른 듯했다.’

그의 아버지 유홍(劉弘)이 효렴(孝廉)으로 뽑히어서 아전이 되었으나 일찍 죽었으니, 현덕은 어려서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지성으로 섬겼으므로 효자라는 칭송을 들었지요. 아직 그가 어렸을 때, 하루는 어머니가 혼잣말로 ‘차를 마시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현덕은 불원천리하고 좋은 차의 고장까지 달려가서 가장 좋은 차를 구해다가 드렸습니다. ‘불원천리’(不遠千里)는, ‘천 리도 멀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 길을 열심히 달려가는 것’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내친 김에, 차(茶) 이야기를 조금 더해 볼까요? 차는 7세기 전반의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생활에 쓰이게 된 것은, 흥덕왕 3년인 828년에 김대겸(金大兼)이 당나라로부터 차나무 종자를 가지고 와서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이후의 일이라는군요. 그 때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과 호남 지방은,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답니다.

나폴레옹은 결심을 실행하려고 군에서 휴가를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코르시카를 향하여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10년 만에 그토록 그리던 코르시카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마냥 가볍기만 했습니다. 그가 떠난 지, 무척이나 긴 세월이 흘렀군요. 참으로 유수와 같은 세월입니다. 다 알고 있듯이 ‘유수’(流水)는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그것도 그냥 흐르는 물이 아니라, 굽이치는 강물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는데, 코르시카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고시조(古時調) 한 장(章)이 생각납니다. ‘의구(依舊)하다.’는 ‘옛날 그대로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