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48) 거리마다 난장판이 되다

시조시인 2008. 10. 12. 06:18

(48)

사람들이 난폭해져서 부랑자들과 함께 난동을 부리자, 당황한 왕과 정부는 군인들에게 명령해서 그들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빵을 달라!”

“왕을 잡아라!”

“정부를 무너뜨려라!”

점점 거친 구호가 파리 시내의 이쪽저쪽에서 쉴 새 없이 계속 터져 나왔습니다. 거리마다 난장판이었지요. ‘난장(亂場)판’은 ‘여러 사람이 뒤섞여서 어지러이 떠들어대거나 뒤죽박죽이 된 판’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의 본뜻을 살펴볼까요? 옛날에 과거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선비들이 질서 없이 들끓고 떠들어대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과거 마당의 어지러움을 일컬어서 ‘난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 중에 농성을 벌이는 무리도 있었을 겁니다. ‘농성’(籠城)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집이나 방 또는 자기가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붙박이로 버티며 권리나 주장을 요구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옛날에 성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국가에서는 ‘성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지키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인 성곽을 쌓기도 하고, 그것으로 안심이 되지 않아서 성문 앞에 항아리와 같은 모양의 성을 다시 쌓기도 했습니다. 가장 용감한 병사들이 지키던 이 ‘옹성’이 무너지면, 성 안으로 들어가서 성문을 굳게 잠그고 철저하게 성을 지켰습니다. 그러한 일을 가리켜서 ‘농성’이라고 했답니다.

이렇게 되면, ‘보과습유’는 늦은 듯합니다. ‘보과습유’(補過拾遺)란,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아 고치도록 함’을 말합니다. 너무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사월혁명의 날이 생각납니다. 1960년 4월,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도, 썩은 자유당 정권의 타도를 외치는 군중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무려 11년 8개월의 긴 세월에 걸친 이승만 독재정권 아래에서 저지르게 된 불법과 부정과 부패와 반민주(反民主) 등의 실정(失政)은, 마침내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사월혁명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즉, 사월혁명(四月革命)은, 2.28대구학생 데모를 비롯하여 2차에 걸친 마산 데모와 전국적 규모의 4.19학생의거로 이어졌습니다. 학생들이 주동으로 벌인 이러한 피의 민권쟁취 데모의 결과로, 4월 26일에 이승만 정권은 무너지고 사월혁명은 성취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 땅에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이루었습니다. ‘토착화’(土着化)는, 어떤 제도나 풍습 따위가 ‘완전히 뿌리를 내려서 그 곳에 맞게 동화됨, 또는 동화되게 함’을 말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여러 거리에서는 하루살이 목숨인 부랑자들이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하루살이’는 ‘저녁 무렵에 떼를 지어서 날아다니는 날벌레’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흔히 ‘생활이나 목숨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살이 목숨’은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그날그날을 지내는 생활’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루살이’라는 날벌레를 잘 알고 있습니까? 그러면 ‘하루살이’는 그 이름 그대로 하루만 살까요? 아닙니다. 어린벌레는 물속에서 몇 해 동안 지냅니다. 그러다가 자란벌레가 되어서 여름날 저녁에 공중을 날아다니지요. 자란벌레는, 하루에서 며칠 동안을 산다는군요.

곳곳에서 부랑자들을 향하여 쏘는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격입니다. 그러자, 그들도 이에 질세라 무기를 들고 한데 뭉쳐서 군대와 싸웠습니다. 거리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삽시간’(霎時間)은 ‘아주 짧은 동안’을 가리키고, ‘아수라장’(阿修羅場)은 ‘끊임없이 분단과 싸움이 일어나서 난장판이 된 곳’을 나타냅니다. 줄여서 ‘수라장’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이 말의 본뜻을 살펴볼까요?

고대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아수라왕은, 아주 싸우기를 좋아하는 성품 때문에 툭하면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러하니, 아수라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싸움이 끊이지 않았으며 시끄럽기 짝이 없었겠지요.

그러나 누구에게나 임자는 따로 있습니다. 아수라왕의 호적수라면, 하늘을 다스리는 신인 ‘제석천’(帝釋天)이 있었지요. 제석천은 전쟁터로 나가는 여러 신들을 모아놓고 항상 이렇게 말했답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 그리하면 싸움터가 아수라의 장(場)이 되는 걸 막을 수 있다.”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