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61) 온 가족이 철가도주하다

시조시인 2008. 10. 25. 04:05

(61)

   어머니는 기가 막혔겠지요. ‘기(氣)가 막히다.’는, 글자 그대로 신체의 원동력인 ‘기(氣)가 막혀서 잠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를 이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몹시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을 때’에 흔히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지어지앙을 한탄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어지앙’(池魚之殃)은, 불을 끄기 위해서 ‘못의 물을 퍼내면 못에 있는 고기는 말라 죽는다.’는 뜻으로 ‘다른 데서 생긴 재앙으로, 상관없는 데까지 억울하게 휩쓸려서 화를 당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춘추시대의 일입니다. 송(宋)나라에 사마(司馬)인 ‘환’(桓)이라는 사람이 매우 귀한 보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게 되자, 그는 그 보석을 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보석 이야기를 들은 왕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달아난 환을 잡아들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환은, 도망칠 때에 그 보석을 연못에 던져 버렸다고 했습니다. 왕은 당장에 사람을 풀어서 연못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나 쉽사리 보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연못의 물을 모두 퍼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동원되어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고 바닥을 이를 잡듯이 뒤졌지만, 끝내 보석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러는 바람에 그 연못의 물고기들만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여씨 춘추(呂氏春秋)에 실려 있는 말입니다.

넋두리를 할 사이도 없었습니다. ‘넋두리’는 본래 ‘무당이 죽은 이를 대신하여 하는 말’이었습니다. 즉, ‘무당이 푸닥거리를 할 때에 죽은 이의 혼을 풀어내는 의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고 하소연하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빨리 도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폴레옹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붙잡으려고 쫓아오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입니다. 사면초가이고 위기일발입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형국’이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중국 초나라 패왕(沛王)인 항우(項羽)와 한나라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투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천하장사 초나라 패왕 항우에게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휘하에 있던 범증(范增)이 떠나 버리고 한의 유방에게 눌려서 결국은 한나라와 강화하고 난 후, 그가 동쪽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한나라 명장인 한신(韓信)에게 해하(垓下)에서 포위를 당하였습니다.

병졸은 줄어들고 군량미는 떨어졌습니다. 적군은 이미 여러 겹으로 둘러싸고 있었지요. 그런 어느 날의 밤이었습니다. 사방에서 초나라의 구슬픈 노래가 들려 왔습니다. 그러자, 초나라 병사들은 그 노랫소리에 모두 고향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항복한 초나라의 병졸들을 모아놓고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적진의 계략입니다. 항우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나라 군사가 어찌 초나라 땅을 다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렇게 많단 말인가?”

항우는 이제 끝장임을 예감했습니다. 그는 진중에 마지막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는 800기(騎)의 잔병들을 이끌고 오강(烏江)까지 갔다가 그 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때에 그의 나이는 서른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위기일발’(危機一髮)은 ‘눈앞에 닥친 ’위기의 순간‘을 이르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는 ‘위여일발’(危如一髮)이라고 합니다. ‘일발’은 ‘한 개의 머리털’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위기일발’은 ‘한 가닥 머리털만큼의 여유도 없는 위기’를 뜻하는 겁니다.

문득, 큰 빚을 지고 칠흑 같은 밤에 야반도주를 한 이웃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칠흑(漆黑) 같다.’는 ‘온통 깜깜해서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말은 원래 ‘옻칠을 까맣게 한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옻나무 즙에서 추출한 염료인 옻칠은, 주로 관이나 장롱 등의 겉을 칠하는 데 쓰였습니다. 칠할 때에 보면, 염료 고유의 빛깔이 ‘잿빛’입니다. 그러나 칠하고 나면 ‘거의 검정에 가까운 갈색’을 띠면서 윤이 납니다. 그리고 ‘야반도주’(夜半逃走)는 ‘야간도주’(夜間逃走)와 같은 말이고, 남의 눈을 피하여  ‘밤에 몰래 달아남’을 뜻합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철가도주’가 있습니다. ‘철가도주’(撤家逃走)는 ‘온 가족과 함께 살림살이를 뭉뚱그려 달아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이후로, 그 이웃은 감감소식이었습니다. ‘감감소식(消息)’은, ‘아주 멀어서 아득하다.’는 뜻을 가진 ‘감감하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감감소식’은 ‘소식이 감감하다.’는 뜻으로 ‘대답이나 소식 따위가 전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쓸 때에는 ‘감감소식’보다 ‘감감무소식’을 더 많이 씁니다. 이는, ‘없을 무’(無)를 하나 더 붙임으로써 ‘소식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 모두가 표준어입니다. ‘감감소식’을 한자로 표기하려면, ‘오리무중’이라는 말을 쓰면 되겠군요. ‘오리무중’(五里霧中)은 ‘오리에 걸친 깊은 안개 속’이라는 뜻으로,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막연하거나,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이끌고 험한 산길을 계속해서 걸어갔습니다. 팔자가 기구합니다. ‘기구(崎嶇)하다’는 ‘세상살이에 가탈이 많은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래 ‘기구’라는 말은 ‘산길이 험함’을 뜻합니다. 그 말이 사람살이에 비유되어 ‘험난한 인생살이’를 나타내게 되었답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어렵게 아이들을 키워 왔는데, 이제는 삶의 터전마저 잃은 채로 산길을 도망쳐 가고 있습니다. 마가 끼어도 아주 단단히 끼었습니다. ‘마(魔)가 끼다.’에서 ‘마’는 ‘일이 안 되도록 훼방을 놓는 요사스러운 방해물’을 가리킵니다. 때때로 마귀나 귀신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마가 낀다.’는 말은, ‘일의 진행 중에 나쁜 운이나 훼방꺼리가 끼어들어서 일이 안 되는 쪽으로 상황이 기우는 것’을 말합니다. ‘마’는 불교 용어인 ‘Mara'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마라’는 ’장애물‘ 또는 ‘훼방 놓는 것’이란 뜻의 산스크리트어랍니다.

(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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