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59) 덤터기를 쓰다

시조시인 2008. 10. 23. 02:33

(59)

   코르시카 사람들은 파오리와 생각을 같이하는 쪽과 나폴레옹과 생각이 같은 쪽으로, 분문열호하여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분문열호’(分門裂戶)는 ‘하나의 친족 등이 패가 갈림’을 이릅니다. 좀 이상합니까? 코르시카 사람은 모두가 한 친족이나 다름이 없으니, 그리 말해 보았습니다.

이 일이 프랑스 정부에게도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촐싹거렸습니다. ‘촐싹거리다.’는 ‘자꾸 촐싹촐싹하다.’는 뜻이고, ‘촐싹촐싹’은 ‘주책없이 수선을 떨며 돌아다니는 모양’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주책없다.’는 ‘일상생활의 어떤 상황에서 그 자리에 적당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할 때’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원말은 한자어인 ‘주착’(主着)에서 나왔습니다. ‘주착’은 ‘일정한 주견이나 줏대’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착없다.’는, 곧 ‘일정한 자기 주견이나 줏대가 없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것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주책없다.’로 소리가 변했습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도 현실음의 변화를 인정하여 ‘주책’을 표준말로 삼았답니다.

“프랑스에 반대하는 파오리를 잡아라!”

참으로 뻔뻔합니다. ‘뻔뻔하다.’는 ‘잘못한 일이 있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예사롭다.’는 말입니다. 결자해지해야 될 당사국이 프랑스인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입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는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함’을 이릅니다. 프랑스가 코르시카를 침략하지 않았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입니다. 또, ‘유분수’(有分數)는 ‘분수가 있다’는 말이고, ‘분수’는 ‘자기의 처지에 마땅한 한도’를 나타냅니다.

이렇게 되면, 나폴레옹이 꼼짝없이 덤터기를 쓰게 됩니다. ‘덤터기’는 ‘남으로부터 넘겨받은 걱정거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뜻 외에 ‘억울한 누명이나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로 더 널리 쓰이고 있지요.

코르시카 사람들은 여전히 파오리를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파오리는 ‘코르시카의 아버지’이고 ‘코르시카의 태산북두’입니다. 태산북두가 무슨 뜻인 줄은 알지요? 그런데 파오리를 잡아가겠다니,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하다’는 ‘천 번 만 번 부당하다.’는 뜻으로 ‘아주 부당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천만부당하다.’ 또는 ‘만만부당하다.’라고도 씁니다.

“파오리를 프랑스에 넘겨 줄 수 없다!”

“우리 모두의 힘으로 파오리를 지키자!”

코르시카 사람들의 분노는 불길처럼 섬 안에 번져 갔습니다. 그런데 그 불길이 나폴레옹에게로 튀었습니다. 중구삭금이란 말이 있듯이,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중구삭금’(衆口鑠金)이란, ‘뭇사람의 입에 오르면 쇠도 녹는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말은 큰 힘이 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와는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는 ‘적훼소골’(積毁銷骨)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악담이 많으면 굳은 뼈라도 녹인다.’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악담이 무섭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파오리를 나쁘다고 한 게 누구냐?”

“누가 프랑스 정부에 이 일을 알렸느냐?”

“나폴레옹이 한 게 틀림없다!”

“그렇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사관이다.”

파오리와 가까운 사람들은, 애꿎은 나폴레옹에게 분풀이를 하고자 했습니다. ‘애꿎다.’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어떤 일을 당하여 억울하다.’는 말이고, ‘분(憤)풀이’는 앙갚음을 하거나 다른 대상에게 분을 터뜨리거나 하여 ‘분한 마음을 풀어 버리는 일’을 말합니다. ‘분풀이’는 한자어로는 ‘해원’(解寃) 또는 ‘설분’(雪憤)이라고도 합니다. 애먼 사람에게 불똥이 튀었습니다. ‘애먼’은 ‘엉뚱하게 딴’이란 뜻이고, ‘불똥이 튀다.’는 ‘사건이나 말썽의 꼬투리가 엉뚱한 사람에게 번지다.’를 나타냅니다.

비슷한 뜻으로 ‘노갑이을’(怒甲移乙)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떤 사람에게 당한 노염을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함’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억하심정으로 나폴레옹만 물고 늘어질까요? ‘억하심정’(抑何心情)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그 심정을 알 수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참으로 터무니가 없는 일입니다. ‘터무니가 없다.’는, ‘내용이 허황되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을 일컬을 때에 쓰는 말입니다. ‘터’는 본래 ‘집이나 건축물을 세운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을 헐어도 주춧돌을 놓았던 자리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 등은 흔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흔적조차 없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 집이 있었는지 어떤 구조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터의 무늬’, 즉 ‘터의 자리’가 없다는 말은, 곧 ‘근거가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