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58) 파오리의 무리한 수

시조시인 2008. 10. 22. 04:37

(58)

   그렇게 조바심하다 보니, ‘무리한 수’를 두게 됩니다. ‘무리(無理)한 수(手)’는 바둑을 둘 때에 많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무리하다.’는 ‘힘에 부치는 일을 억지로 하다.’라거나 ‘이치나 정도에 맞지 아니하며 억지스러움’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수’는 바둑이나 장기 등에서의 ‘두는 기술’을 이르지요.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무리한 방법’이라고 풀이해도 될 듯합니다.

파오리의 그 ‘무리한 수’가 바로, ‘프랑스와 사이가 나쁜 영국에 원조를 청해서 코르시카를 프랑스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려는 생각’입니다. 이는, 이리를 쫓아내기 위해서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바와 같습니다. 영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아주 욕심 많은 나라입니다. 영국의 도움을 받고 나면 결국은 영국이 어부지리를 취하겠지요. ‘어부지리’(漁父之利)는 ‘쌍방이 다투고 있는 사이에 제삼자가 이익을 봄’을 나타냅니다. 여기에도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일입니다. 중국의 동북쪽에 위치한 연(燕)나라는, 조(趙)나라와 제(齊)나라의 위협을 항상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나라에 기근이 든 틈을 타서 조나라가 침략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탐지한 연나라의 왕은, 소대(蘇代)를 조나라 왕에게 보내어서 설득하도록 하였습니다. 소대는 조나라의 왕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이 곳으로 올 때, 역수(易水)를 지나다가 보니, 냇가에서 조개가 입을 벌리고는 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조개를 쪼자, 조개는 입을 황급히 다물어서 황새의 주둥이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다급해진 황새는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 죽으리라.’ 하니, 조개는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지 않으면 너야말로 죽고 말 거다.’ 하였습니다. 이리 다투고 있을 적에 지나가던 어부가 이를 보고, 얼른 둘 모두를 잡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말을 달리, ‘방휼지쟁’(蚌鷸之爭)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남의 도움으로 해방을 맞았기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분단의 슬픔을 안고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나폴레옹은 파오리의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겼을 겁니다. 게다가 독립 후에 이웃나라와의 유대 강화도 생각해 두어야 하고, 그리하려면 홀로 자립할 수 있는 힘도 미리 길러 놓아야 합니다. ‘유대’(紐帶)는 ‘기구나 단체 또는 나라 따위가 서로 인연을 맺은 관계’를 가리킵니다. 나폴레옹도 언제인가는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며, 더구나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각주구검’이란 말이 있습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시세의 변천도 모르고 낡은 방법만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말입니다. 그 말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초(楚)나라 사람들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큰칼 한 자루를 소중히 안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만 실수로 그 칼을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아차, 이를 어쩌지!”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허리춤에서 작은칼을 꺼낸 다음, 칼을 빠뜨린 그 자리의 뱃전에다 금을 그어서 표시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거기에다 금을 그어 놓을까 하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나 한 듯이 말했습니다.

“내 칼을 빠뜨린 곳이 바로 여깁니다. 그러니 이렇게 표시해 두어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배가 드디어 맞은편 나루에 닿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웃통을 훌훌 벗더니 그 표시해 놓은 뱃전 밑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밑에 칼이 있을 리가 없었지요.

코르시카는 매우 좁고 산이 많은 섬입니다. 그러므로 코르시카가 프랑스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얻는다고 해도 당장에는 코르시카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잘 살기 어렵습니다. 파오리의 말처럼 영국의 힘을 빌어서 독립을 한다고 하여도 결국에 가서는 영국의 영지가 되고 말 뿐입니다.  더군다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으므로, 우선은 프랑스와 순치지세를 이루어야 합니다. ‘순치지세’(脣齒之勢)는 입술과 이와의 뗄 수 없는 관계와 같이 ‘서로 의지하고 서로 영향을 끼치는 형세’를 말합니다. 그런 연후에 만년지계로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만년지계’(萬年之計)는 ‘오랜 뒷날의 일까지 헤아려서 세운 계획’을 말합니다. 나폴레옹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겠지요.(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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